[김동철의 아동 청소년 심리 교육] 사랑을 주는 교육과 사랑을 소통하는 교육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3.03.15 14:05
  • 나는 사랑을 주며 행복을 느끼는 걸까? 나는 사랑을 받으며 행복을 느끼는 걸까?

    우리의 사랑은 주는 것이던, 받는 것이든, 그 느낌이 자신에게 행복감을 준다면  우리는 사랑을 한다라고 생각하며 행복감을 느끼며 산다.

    사랑을 한다? 이것은 당연히 서로에게 소통이 되고 교감이 이뤄져야 만이 가능한 것이며 여기에서 지나친 종속이나 집착의 문제가 생긴다면 소통과는 무관하게 사랑은 무의미해지고 행복의 가치는 상쇄하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종속이 되고, 집착 또는 상황에 따른 강요성을 요구 한다면 개인적 요인과 이기심으로 사랑은 처참하게 깨지고 말 것이다. 이렇듯 사랑은 요구 속에서 생성되는 느낌이 아니라 절대적인 순수잉여에서 생겨나며 바라거나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연인들과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아이를 대하는 보모들 역시 사랑의 모양과 틀은 같으며, 파트너로서의 강력한 의미 또한 함께 엮어가고 있다. 아이만의 행복을 위해 사랑을 주는 것인지? 나의 행복을 위해 사랑을 주는 것인지? 우리들은 사랑 감성이 있는 한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적으로 서로의 교차적 사랑이 아닌 본인스스로가 행복하기 위하여 우리 아이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사회의 틀 속에 경쟁으로 살아남기만을 확인시켜주며 그 훈련의 과정을 잘 수행하면 착한아이 혹은, 사랑스런 아이라고 생각하는지 우리는 잘 보아야 한다. 일방적인 사랑은 언젠가 깨지고 틈이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학습을 통해 사회성을 일깨워주고, 철학을 심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런 학습이 자본사회에서 경쟁의 구도로 또래사회의 순위 부담을 가중시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이들은 꽤 우리 부모를 사랑해 주고 따르며, 부모가 주위에 없을 때는 불안감마저 느낀다. 마치 둥지에서 입만 벌린, 벌레에 만족하는 아기 새처럼.

    우리는 이런 아이들에게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며 권위적으로 사랑을 강요 할 때도 있다. 부모의 모든 결정이 옳고 그 결정에 잘 따르면 부모는 행복해지고, 아이들은 부모들의 1차적인 자본적 보상에 믿음과 더불어 사랑을 유린당한다. 또한 어른들의 결정에 우리아이들은 절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또한 부모의 믿음으로 낙인효과를 갖고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또래 정보를 공유하고, 또래 사회성이 무르익어지는 시점에서는 부모의 강요가 그 개인의 집착이든지 부모 자신만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아이들 자신을 도구로만 쓰고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면, 그 사태는 가족구성원의 부담을 넘어 상실적 박탈감과 불안감이 몰려 올 수도 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실질적으로 부모와의 소통이 힘들어지고 또래의 정보에 의지하는 경향이 두드려지며, 부모와의 갈등구조가 발생되는 일이 잦은 것은 아마 사랑의 소통구조가 상생이 아닌, 교차가 아닌 일방적 운영이었기에 문제는 더욱 확산될 수 있다.

    사회적 매력은, 구매력을 갖고 탐내는 상품이라면 사랑은, 소통으로 교차하는 실천적 마음이다. 우리는 우리아이들을 그 시대의 유행에 흔들리는 진열장 속에 갇힌 매력적 아이만을 원하는 것이냐? 아니면 소통하며, 과장하지 않고 서로의 순수잉여로 대답하는 사랑으로 볼 것이냐? 는 지금 사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다.

    사랑은 자연이며 자연은 자연스러움이다. 또한, 자연스러움은 소통이다. 우리의 아이를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려놓는다면 우리의 아이는 가면 속 얼굴로 자기 자신도 모르는 체 살지는 않을 것이며, 진정한 사랑의 소통에 대하여 느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아이의 사랑스런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아청소년, 성인 심리센터] 헬로스마일  대표원장 / 힐링 스터디 교육심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