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의 아동 청소년 심리 교육] 공감이 통하는 교육과 착한 공부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2.10.04 13:59
  • 공부 잘하는 아이, 똑똑한 아이, 착한아이 이 모든 수식어는 지금 우리들의 부모가 원하는 우리아이의 모습일 것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잘 쓰는 말 중에 ‘착한’ 이라는 의미를 두고 그 사용의 폭이 다양하게 재미있고 넓게 사용되고 있다. 가령 품질은 좋은데 가격이 싼 물건을 '착한가격' 이라고 부른다던지 좋은 음식이지만 맛에 비하여 가격이 싼 집을 착한식당 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본디 착한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어 일컬어지는 말이지만, 지금 말하는 ’착한’의 뜻은 상황적 관계들 사이의 교감, 소통에 대한 관계를 만들어 가기위한 사회성, 그리고 骨幹골간(기본적이며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에서 나오는 새로운 의미의 신조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기분 좋은 교감을 공감이라고 말하며 ‘착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통용하며 전파하여 다수의 공감을 얻어낸다.

    공감은 이렇게 사람 대 사람의 사회적 보편성이며, 훌륭한 가치를 담아내는 과정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착한 교육과 착한 공부’가 주는 진정서와 의미는 무엇일까? 

    항상 고민의 굴레를 돌고 돌아 발전해온 우리의 교육과 어른들이 바라는 우리 아이들의 공부와 미래... 진정, 착하다는 수식어가 따라 붙을 수 있을만큼 긍정적일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DNA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모든 인류 존재의 혼합체를 품은 것은 자기 자신이며, 우리아이들의 모습이며, 현재의 나의 모습이며 미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성공은 현재를 기반하여 잘 보아야 한다. 이는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임과 동시에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문제가 없다면 현재는 바르게 돌아갈 것이며 그 현재는 미래를 반듯하게 연결하여 통 하므로, 미래는 과거, 현재를 모두 합하는 소통의 공감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의 DNA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 일까?

    그것은 우리의 삶에 과거를 고스란히 달고 지금에 이르렀다. 공부를 잘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가 잘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인 내가 공부에 대한 기분 좋은 생각이 있다면 아이는 반드시 잘 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우리가 얘기하는 우리아이의 성공 진리의 종착역은 지금의 나이며 자신이다. 유학에서는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한자로는 “爲己之學(위기지학)” 이라는 말이 있고 고대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한다. 이는 본인을 알아야 해결될 수 있다는 근원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며, 미래를 성공시키려 아이를 바꾸려 하지 말고 부모 자신의 근본적 생각에 대한 의미를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아이에게 잘못 치우쳐진 생각을 고쳐야지 행동을 고치려 하지 말라. 인간 자신은 하나의 자연적 원리가 퍼져나가 생각적 융합이 만들어지는 통합적 존재이다. 이 통합적 존재는 개인으로만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여러 존재가 모여 합해져야만 완성된 사회의 융합이며 공감이다.

    이 공감은 보편이 되고 우리는 그 보편으로 가장 안정된 것을 만들어 내곤 한다.

    현재의 학습법은 억압적 행위만이 강요되고 행위의 내용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근대이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의식의 철학이 나오면서 착한 품성이 사라진 교육의 문제가 발생 되었다.

    이윤이 극대화되는 직업을 위해 교육을 해야 하며 그 교육이 극대화되려면 막대한 공식적 학습을 위한 돈의 비용이 넘쳐나게 된다. 이러한 극대화가  행복을 담보로 엄청난 도박을 하는 것이다.

    공감이 안 되면서 소통을 하자고 하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자아실현이란 자신의 능력을 완벽히 하려는 생각을 현실화 시켜며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은 누가 아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앞 다투어 그 질문의 답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며 내가 아닌 이들과 비교하는 순간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는 마치 부러워 하는것이 행복인양 착각하고 경쟁한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부러워 하지 않는다. 부러워하는 것은 부모이다. 즉, 부모의 잣대로 생각하며 아이들을 경쟁 사회로 몰아가고 있다. 비교는 무한에서 유한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부러움은 끝이 없다. 부러움을 행복의 원동력으로 보는 시각은 나쁜 시각. 진정한 교육의 철학은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재능의 진정성이 갖는 경쟁이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다.

    ‘충만’ 은 우리가 모두 갖춰야 할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충만’을 느끼지 못한다면 박탈과 결핍이 일어나며 부러움이라는 문제를 달고 온다. 억지 논리에서 오는 문제는 독재자의 모습이라고들 한다.

    우리의 부모는 억지 논리로 공감이 부재하는 일방적 소통의 교육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개인의 행복을 향한 공감과 쌍방향의 소통의 활로를 찾는 것이야 말로 사회적 행복이 존재할 수 있는 근본이 될 것이다.

    헬로 닥터브레인 센터장/ ND케어 클리닉 부원장/허그맘/힐링스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