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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만난 한 학생의 자기소개서의 구절 중 이런 부분이 있었다. “OO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고, ㅁㅁ박사님의 연구가 인상적이었다.” 하나의 주제 안에서 등장 인물이 많이 나오는 경우는 3명씩이나 되었다. 이 학생은 학교 생활기록부에 등장하는 여러 강사진들의 이름을 자기소개서에 기록했다. 학교에서 진로체험을 통해 외부 강연이나 활동 등에 참여하고 그걸 기재해주는데 그런 기록을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제3자로서 이런 글을 읽어본 바, 그다지 추천하고 싶은 글쓰기는 아니다.
학생부 기재에 대해 여러 변화가 있을 예정이지만, 아무래도 다같이 활동을 했던 경험은 그 내용이 획일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특별히 자신이 수행했던 활동들이 없을 때는 이마저도 활용을 해야겠지만, 이렇게 작성한 글 대부분은 인상적일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느낀점이나 배운점도 무척 단편적이고 깊이가 없었다. 덧붙여서 유명 인사들이 등장한다고 그게 꼭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 의미는 내가 찾고, 내가 만들어가야만 한다.
때로는 정말 특강 덕분에 깨달음을 얻고 인생의 길을 찾아 열심히 노력했던 친구도 있다. 모두 다 함께 들었던 강의와 내용이었음에도 개성을 담아 의미를 찾아 쓴 자기소개서의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 학생은 꿈은 법조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변호사인데, 이것도 아직은 변호사와 검사 둘 중 어느 쪽이 더 맞을 지 몰라 그 중 하나의 길을 가고 싶다고 하였다. 가능하면 말이다. 그런데 학생 스스로가 이런 꿈을 갖게 된 것은 한 특강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실제 법조계의 인사가 와서 했던 강의를 인상 깊게 보았던 그 학생은 그 강의의 내용을 통해 느꼈던 감정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자세히 서술했다. 또 당시 자신이 했던 질문과 그분의 답변을 인용해서 사실성을 강조하며 진로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이후의 활동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관련 책도 읽고, 독서나 기타 활동에 반영했던 흔적들이 보였다. 그리고 강의 내용에서 언급되었던 점들과 이런 활동들을 연계시키려 했다. 당시 학생 스스로가 가장 큰 궁금증을 갖고 있던 것은 변호사가 지켜야 할 양심의 범위였다. 구체적으로 '의뢰인의 부정을 어디까지 감싸야 하는 것일까?' 라는 고민이 컸다. 그래서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관련 법과 책, 기사와 영화 등을 일관성 있게 찾았다. 그리고 이를 인용해 자신이라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이 학생의 진로 활동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우수하거나 뛰어나지는 않았다. 언급했던 활동도 학교에서 단체로 참여했던 강의를 들었던 진로체험활동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그냥 넘기는 것과 여기에서 발전시켜서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 것은 그 결과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다 준다. 모든 아이들이 다 적극적으로 동아리를 개설하고, 동아리 장이 되거나 회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자신의 분야에 대한 논문을 유려하게 쓸 수는 없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친구들도 분명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활동을 하라고 종용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학교에서 하는 단체활동에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고, 발전시키려는 작은 노력이 나를 소개하는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것도 무척 잘 다듬어진 형태로. 아이들에게 학교 활동에서도 의미찾기를 해보라고 하고 싶다. 새로운 활동을 찾아 채우는 것보다 일단 있는 것에서.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더 빠르고 맞을 수 있다.
[윤의정의 쉽게 쓰는 자기소개서] OO교수님의 강의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