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의 진로∙진학 컨설팅] 그래도 굳이 고르라고?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7.05.04 09:39
  •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A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이 친구는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했는데, 자기소개서도 쓰고 면접도 봐야했던 전형을 당당히 통과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무척 성실한 학생이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단점이라면 꽤나 산만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아이의 관심사가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하게 해온 활동들 역시 일관되지 않은 상태였다. 진로희망란에 쓴 희망직군이 1학년 때는 검사, 2학년 때는 의사였으니 말이다. 궁금함이 일어 널뛰는 진로희망 변화의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이 참 천진난만한 아이다운 말이었다. ‘드라마 때문에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이가 1학년일 무렵 법조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유행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의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또 유행했었다. 드라마 속에서 멋있어 보이는 직업이 그 아이에겐 새로운 꿈이 되어 온 것이었다. 어이없어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사례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아이들이 인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는 지극히 한정적이며 그 직업들 중에서도 나름 멋있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손에 꼽는다.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통해 멋있게 비춰지는 직업에 관심과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아이 자신의 진로를 설계한 이야기들을 풀어 써야 하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만 했고, 무엇이든 명확히 결정해야만 되는 시점에 도달했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부터 정리해야만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지 구체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그럼 ‘지금’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물론 명확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당장은 마음에 드는 직업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없단다. 사극이나 판타지가 가미된 드라마가 유행하던 시기라 그런지 몰라도 특별히 아이의 관심을 사로잡는 직업이 없었나 보다.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 이라 종용하긴 했는데, 이런 말을 하면서 필자도 모르게 ‘왜?’ 라는 물음과 함께 좀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진로를 정할 때 가장 필요한 것들이 ‘나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다. ‘직업’과 ‘직업을 갖기 위한 경로’를 아는 것에 앞서 우선은 세상과 나를 이해해야만 하는데 아직 그것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중학생에게 ‘굳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종용할 수밖에 없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어리다는 것은 그만큼 수많은 가능성에 길이 열려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직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 안에서 불확실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런 마음 속 깊은 이해와는 별개로 어쨌든 아이로 하여금 융복합적인 장래가 촉망받는 직군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나 자신의 내면적 목소리와는 다른 현실적인 판단으로 말이다. 결국 아이는 합격했다. 말 그대로 멋있는 융복합적 직업에 대한 자신의 꿈을 밝힘으로써. 물론 이 또한 앞으로 다양한 경험 속에서 변해갈 것이지만 말이다.

    필자는 어려서 버킷리스트처럼 이루고 싶은 꿈을 한 가득 적어두었었다. 공부가 하기 싫어 힘들 때마다 무엇이든 끄적여 두었던 것 같다. 당시 꿈꾸었던 수많은 직업들이 다 말이 되는 것들은 아니었다. 실현 가능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았던 것들도 꽤나 있었다. 그 중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우주인’이다. 당시에 언젠가 꼭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하리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실현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그 꿈을 꾸는 시간만큼은 자유로운 상상을 하며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꿈을 고르라고 하는 것이 자유로움을 제약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아직은 여러 가능성에 문을 열어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현실과 이상의 차이겠지만 무엇이 더 나은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나에게도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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