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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명문 사학에 합격한 특목고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꿈도 명확했고 그 꿈과 연계된 좋은 활동도 많이 하고 있었다. 다만 한가지 문제점이라면 수능에서 내신보다 나은 성적을 받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수시로 합격을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는 점이다. 아이는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학과보다는 경쟁률과 합격 가능성을 따져 그 중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큰 곳들을 중심으로 수시를 지원하려고 했다. 덕분에 지원 학과와 진로적성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 친구는 자기소개서를 여러 타입으로 새롭게 다시 써야만 했다. 경제학과, 행정학과, 정치외교학과. 이렇게 3가지 종류의 학과별로 자신의 활동을 정리해서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학생부종합의 취지에 의하면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비일비재하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모든 학과가 학교마다 다 있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에 어떻게든 입학하려면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기도 하다. 매번 자기소개서 작성 기간에 만난 많은 아이들이 이런 유사 문제를 갖고 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과별로 활동을 맞춰야 할까? 모든 학과가 다 똑같은 내용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우선 이런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엔 비슷한 학과를 고르라고 한다. 지원하려는 학과들이 전혀 다르면 기존에 했던 활동을 조합해서 기술하기도 어렵고 논리적으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비해 비슷한 학과끼리는 내용을 크게 고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적다. 그래서 앞의 학생에게는 행정학과와 경제학과로 한정하여 지원하자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지원하고자 하는 학과에 미련이 있어 결국 세 종류의 학과에 모두 지원하게 되었다.
각기 다른 세 학과에 대한 글을 준비하며 학생은 무척 힘들어 했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기 전에, 필자는 무조건 하나의 학과에 집중하여 써보라고 한다. 2번 항목인, '의미 있었던 활동'은 내용이 똑같아도 무리가 없다. 물론 모든 항목에 학과 특성을 살려 쓰는 것을 추천하지만, 자신이 해온 활동은 바뀌지 않는 요소니 그대로 활용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수 있다. 3번 항목의 '배려, 나눔, 협력, 갈등관리'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원하게 될 학과의 성격이나 특성이 크게 반영되는 1번 항목의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경험'인 경우가 많다. 즉, 신경을 써서 바꿔야 하는 항목은 1번 항목으로 국한될 확률이 높다.
앞에서 언급한 학생은 가장 가고 싶었던 학과가 경제학과라 경제학과 관련된 학습 경험 위주로 글을 먼저 써두었다. 그 다음에 다른 학과를 작성할 때, 1번 항목은 학과를 바꾸어 새롭게 작성했다. 예를 들어 행정학과에 지원하는 경우 경제학에 국한되었던 이야기에 행정에 대한 생각을 보태었다. 즉, 재정기획부나 금융감독원 등의 경제관련 업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 썼다. 나머지 2번과 3번에선 큰 변화없이 정리했다.
아이는 결국 정치외교학과를 제외하고 자신이 원하던 경제학과와 행정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맥락을 보듯이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게 서술된 학과에서만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억지로 내용을 끼워맞춘 학과인, 정치외교학과에서는 불합격이었다. 분명 정치외교학에 맞춰 2번 항목을 수정하긴 했지만 이미 전체적인 얼개가 어긋나 완성본의 내용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는 억지로 쓸 수 없는 것 같다. 논리가 맞고 일관된 스토리가 있어야만 한다. 과를 비슷하게라도 아니, 논리적으로 이야기가 맞도록 선택하라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수시 기간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원서를 쓰며 지원 학과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왠만하면 같은 학과로 일관성을 유지하길 바란다. 혹시 그렇지 못하다면, 차선책으로는 필자의 말처럼 유사한 학과들을 잘 선택하도록 하자.
[윤의정의 쉽게 쓰는 자기소개서] 다른 학과라면, 비슷하게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