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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를 앞두고 있거나 시험을 시행중인 시기이다. 덕분에 아이들이 마음이 급해졌다. 평상시보다 공부 양도 시간도 부쩍 늘었다. 이런 와중에 몇 가지 공통적인 양상들이 보인다. 몇몇 학생들은 남의 필기를 베끼기에 여념이 없다. 또 최근 만난 한 학생은 이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필기를 빌려 달래서 빌려줬는데, 반 애들이 거의 다 본 것 같아요. 저는 열심히 들었는데, 막판에 빌려가니 좀 억울해요!” 학생의 푸념을 들어주며, 자신의 필기니 본인이 더 잘 알지 않겠냐며 달래주었다. 그래도 이런 친구들은 학교 시험을 위한 기본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학교 수업을 중심으로 공부하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와 달리, 공부를 편하게 하려 조금 엉뚱한 길을 가는 아이들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 중에, 시험 기간에 기출 문제를 열심히 찾아서 쌓아놓고 푸는 아이들이 있다. 특정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커뮤니티에서 자료를 구하기도 한다. 아니면 기출문제를 모아둔 자료를 실제 구매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시험 전 자신의 실력을 체크해보기 위해 기출 자료들을 풀어보는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지를 알아보고, 실전 감각 테스트에도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던가, 지나친 경우가 문제가 된다. 즉, 공부도 안 하고 기출 문제만 주구장창 푸는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친구들에게 묻고 싶다. “시험을 누가 출제하시니?”
족보나 기출 문제의 출제자가 나의 수업을 진행해주신 학교 담당 선생님은 아니시다. 따라서 어떤 개념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서 문제로 출제될지는 시중의 자료만으로는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학교 시험을 잘 보려면, 당연히 학교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이 기반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걸 정리하고 익힌 후에나 문제를 풀면서 연습을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문제만 푸는 것은 생각보다 큰 도움이 안 된다. 아무리 중심 내용이 같다 하더라도 해석의 관점이나 중요하다고 여긴 포인트들이 모두 다 같을 수 없다. 그리고 미세한 예시 등에서는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내신 시험에서는 기출이나 다른 프린트들이 독이 되기도 한다. 가끔 시중 자료 중에 오개념도 있다는 것은 문제를 몇 번 풀어봤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에 만났던 한 학생이 있었다. 이 친구는 전교에서 수석을 유지하며, 고교 3년간 내신 성적을 우수하게 유지했다. 그리고 최고의 명문대에 당당히 수시로 합격했다. 이런 결과를 낳을 수 있던 이유는 학생의 공부 습관을 바꾼 것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 전에 내신 시험을 앞두고 주로 문제집을 쌓아두고 풀고 채점하고 한번 보는 정도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내신 문제집은 거의 풀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필기를 한 것을 중심으로 본인 스스로 노트 정리를 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예상 문제들을 만들어 풀어보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되려 틀리는 문제가 줄어들고 더 큰 효과를 보자 이 학생은 자신이 쓴 필기와 만든 문제들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수업 시간의 내용 공부를 성실히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족보 등의 기출 문제보다는 아무래도 지금 수업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필기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너무 당연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족보 풀게요.”라 말한다. 시험은 족보보단 내 노트에서 나온다는 사실, 너무 쉽지만 참 실천하기 어려운 논리인가보다.
[윤의정의 우리 공부합시다] 중간고사, 족보를 풀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