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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는 수능만 팔려고요. 이미 내신은 망했는데요. 뭐.” 가끔 천연덕스럽게 웃는 얼굴로 말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곤 한다. 뭐라 대구를 하고는 싶은데, 아이가 너무 순수한 표정으로 말을 하니 할말이 없게 되는 상황도 종종 겪는다. 벌써 스스로 마음을 굳힌 상태라,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아둔 ‘아직 학교 공부를 포기하기 이르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잔소리처럼 들리게 될 것 같다. 덕분에 되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말들은 아이들 귀에 너무 교과서적인 뻔한 말로 들리는 것 같다. 잔소리가 늘어가면 아이들과의 거리감이 많아진다. 그러면 상담하는 사람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이와의 일정한 친밀감과 거리감의 경계에서 잘 자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필자의 의도와는 달리 아이를 지지해주는 경우도 생기게 되긴 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속으론 내신을 더 열심히, 성실히 도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학생부종합 전형이나, 학생부교과 전형 등의 수시가 많아지면서 학교 공부에 자신이 없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내신 공부를 접는 것 같다. 그리고 학교 공부와 무관한 수능 모의고사, 기출 문제집, EBS 등의 외부 문제집을 사서 공부한다. 내일 모레 중간고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에 또 따라붙는 말은 이러하다. “어차피 수능 100%라서 내신 안 들어 간데요.” 많이 들은 입시 정보가 마치 독처럼 느껴진다. 공부에 전략이 필요하긴 하지만 꼼수는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과연 학교 생활을 무시하고 수능 공부만 한다는 것이 아이의 인생을 길게 봤을 때도 맞는 것일까? 수능은 결과이고 학교 생활은 과정과 같은데 말이다.
입시 전략을 잘 짜서 자신에게 맞는 대로 준비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학부모님들도 그런 효율적인 선택을 원하신다. 그렇지만 공부는 꼭 결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그 자체가 수단이고 목적이 될 수도 있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학교생활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맞는 입시전략에 지금의 공부가 도움이 안 된다 할지라도 학교 시험에는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그리고 누군가는 동의하진 못하겠지만, 여전히 필자는 수능과 학교 내신 공부가 별개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교과 과정 안에서 다 언급되었던 내용들이 총체적으로 나오는 것이 수능 시험이지 않던가.
학교 시험이 중간중간 있어서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 단기 목표를 정확히 정해서 시험을 치르며, 아이들의 실력이 짧은 시간에 생각보다 쑥쑥 오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성적 변화를 바로 접할 수 있는 기회도 학교 시험을 통해서이다. 전에 언급했듯이 가장 큰 동기부여는 단 1점이라도 오르는 성적이다. ‘공부를 하니, 이만큼 발전했다.’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보람과 성취감을 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이다. 지금 학생들이 수능만 공부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라고 권해주길 바란다. 포기부터 배우기엔 아직 젊고, 갈 길이 많지 않는다. 끝까지 참고 최선을 다 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윤의정의 우리 공부합시다] 내신을 이미 망해서 포기하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