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경찰관의 '요즘자녀學']부모에게도 말할 수 없는 ‘몸캠피싱’
기사입력 2021.06.23 09:46
  • 새벽 무렵 한 지구대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지구대에 와서는 한 시간째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더군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기만 해서 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모든 경찰관이 합세해 지구대를 찾은 이유를 캐물었지만, 아이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합니다. 아이의 행세와 표정을 봐서는 분명 무슨 일이 있긴 한데 도통 말을 안 하니 지구대에서도 답답했겠죠. 다행히 아이가 제 연락처를 알려줘서 통화가 됐고, 저는 전화를 끊고 냉큼 지구대로 달려가 아이를 만났습니다. 돈을 송금했냐는 저의 질문에 아이는 돈이 없어서 경찰관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더군요. 그러니까 협박을 받아 지구대에 신고하러 간 게 아니라 경찰관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고 하니 저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습니다.

    우리 사회에 ‘몸캠피싱’이라는 범죄가 등장한 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갓 결혼한 신부가 자신의 새신랑이 몸캠피싱을 당해 범인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며 남편의 영상을 보지 말고 삭제해 달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의연하게 “평생 남편을 가르치며 살겠습니다.”라고 글을 올려 네티즌들로부터 박수 댓글을 받기도 했지요. 그렇게 등장한 몸캠피싱은 2015년부터 우리 사회에 ‘보이스피싱’과 맞먹는 규모로 확산되었습니다. 한 유명 동영상 유포 차단업체의 통계에 따르면, 몸캠피싱을 당한 피해자들이 업체에 문의한 건수는 2015년 875건에서 2016년 1,570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으며, 2017년 2,345건, 2018년 3,764건으로 증가하다 2019년에는 3,997건까지 증가했다고 하더군요. 4년 만에 5배 가까이 급증한 셈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몸캠피싱이 심상치 않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부모의 관심이 밀착되면서 잠잠하던 몸캠피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몸캠피싱’은 아이들이 즐겨 찾는 ‘랜덤채팅’이나 ‘소셜 메신저’를 통해 범죄자가 여성의 자극적인 행동을 앞세워 아이들에게 접근합니다.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화를 통해 음란한 행위를 유도하도록 만드는 성 착취 범죄이자 아이의 영상물을 가지고 협박하여 금전을 갈취하는 공갈범죄입니다. 범죄자는 아이와 화상 대화 과정에서 악성코드를 심어 아이의 스마트폰에 담긴 모든 정보를 빼 오죠. 그러니까 원하는 돈을 주지 않으면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실제 협박용으로 해킹한 연락처를 가지고 아이 친구 몇 명을 초대해 영상을 올리는 사례도 있습니다. 결국, 아이가 몸캠피싱을 당하게 되면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고, 더구나 자신의 은밀한 신체 부위가 얼굴과 함께 버젓이 노출돼 유포될 걸 생각하면 아찔하기 짝이 없죠. 부모에게는 더더욱 말 못 할 상황이 됩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아이의 몸캠피싱을 눈치채기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상황에서 고민만 해보지만 쉽게 방법이 떠오르지 않죠. 결국, 범인은 계속해서 압박하고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게 몸캠피싱입니다. 일단 부모는 아이의 행동 패턴을 눈여겨 봐주세요. 아이가 극도로 긴장하면 아무래도 작은 티를 보이는 법입니다. 평소와는 달리 긴장한 표정이 이어진다든지 특히, 예고 없이 갑자기 집을 나서는 행동은 몸캠피싱이 보이는 징후 중 하나입니다. 또, 큰돈을 요구하는 행동도 몸캠피싱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더라도 성급하게 아이를 다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말하지 않으면 부모로서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죠.

    혹시라도 아이가 몸캠피싱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일단 아이의 상처를 보듬어주세요. 특히, 부모의 잘못된 언어와 뉘앙스는 아이를 더 힘들게 할 수 있으니 절대 다그치거나 비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아이의 피해 내용을 확인한 후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 사이버수사팀을 방문해 신고하는 게 최선책입니다. 단, 경찰 신고를 위해 아이가 범죄자와 나눈 대화 내용과 범인의 계좌 정보 등은 미리 캡처하여 보관하는 게 좋습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동영상 유출을 우려해 범죄자와 타협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어차피 범인에게 돈을 보내도 협박은 이어질 것이고, 영상물을 완전히 삭제한다는 건 더더욱 믿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경찰 신고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회복’이죠. 아이가 괴로운 건 돈이 아니라 자신의 영상물이 유포되어 자신을 알아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의 영상물을 보고도 아이와 닮지 않았다고 강조해주세요. 설령 부모가 영상물에서 아이를 알아볼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알아볼 수 없을 거라고 확신을 심어주세요. 그래야 아이의 일상이 온전히 돌아올 수 있습니다.

    최근 아이를 향한 디지털 범죄를 보면, 아이들의 성을 착취하고, 인격을 착취하다가 어느새 금전까지 갈취합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아이의 개인정보와 위치정보까지 노리고 있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얼마 전에는 20대 한 남성이 인터넷에서 여성인 척 행세하며 9년 동안 1,200여 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몸캠피싱을 저질러오다 구속됐습니다. 경찰 발표를 보니, 이 남성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남성 1,300여 명과 영상통화를 하며 피해자들의 음란 행위 등을 녹화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더군요. 더구나 피해 남성 중에는 아동·청소년이 37명이나 있었고, 이 남성의 컴퓨터에서 압수한 몸캠 영상만 27,000여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특히, 주목할 건, 이 과정에서 일반 몸캠피싱과는 달리 영상 유포를 빌미로 피해자들에게 현금이나 추가 영상을 요구한 정황은 없었다고 하더군요. 다시 말해, 이번 사건은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몸캠피싱과는 거리가 있는 ‘남성 n번방’ 사건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 게 기분 탓만은 아닐 겁니다. 사회가 약속했던 최소한의 도덕과 규범은 찾기 힘들어졌고, 어떻게 해서든 보호해야 할 아이마저 성 착취와 돈벌이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몸캠피싱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 중학생 남자아이가 안타깝게 생명을 잃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비통한 소식이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지 못하는 게 더 안타깝습니다. 그만큼 디지털 범죄가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가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의 저자 존 M. 렉터 교수는 인간이 잔인해지는 이유를 ‘대상화’에서 찾습니다. 그의 주장을 보면, 인간이 인간을 사물로 취급하는 대상화 과정에는 일상적 무관심에서 시작해 타인을 단지 나의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유도체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거쳐 ‘비인간화’라는 스펙트럼을 거친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는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일상적 무관심’을 붙잡아야 하고, ‘사회적 둔감성’이 범죄자에게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글을 통해 몸캠피싱만은 꼭 아이에게 교육해주셨으면 하고 당부드립니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이토록 무서울 수 있다는 걸 가르치고, 가정에서 시작해 일상적 관심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