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수능이 끝났습니다. 하필이면 수능에 이르러 코로나 상황도 나빠져 부모나 아이의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들었죠. 논술과 면접을 앞둔 수능생은 준비물을 갖출 기회를 잃어버렸고, 학교를 등교해야 할 아이는 내심 미소를 지으며 집에서 게임과 채팅할 상상을 하느라 부모의 걱정이 더 커졌습니다. 학교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학부모에게 “죄송합니다”라는 ‘가정통신문’만 보내고 있고, 정작 부모의 최대 걱정거리인 ‘돌봄’에 대한 설명은 나서서 뾰족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숨이 나온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아이와 부모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아노미’ 상태를 겪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수도권 전역에 코로나 방역 지침 단계가 ‘2.5단계’로 올랐습니다. 우리는 지난 1년여 동안 방역 단계가 올라갈수록 아이의 위험 수준도 함께 올라간다는 걸 몸소 체험했죠. 코로나로 인해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뉴스를 시청한 적이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도, 덕분에 아이와 관련한 문제를 자주 접하는 기회가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언론이 코로나로 인한 아이의 문제를 부모들에게 발 빠르게 전달하다 보니, 부모의 의식 수준도 예전에 비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부모가 뉴스를 통해 놓쳐서는 안 될 게 바로 ‘연관성’입니다. 뉴스에서 알게 된 아이 문제를 소비만으로는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의 주제는 상황이 안 좋아지는 코로나 환경 속에서 자녀에게 갈수록 노출되고 있는 ‘온라인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루밍’은 부모님들이 뉴스에서 흔히 들어 봄 직한 ‘범죄용어’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그루밍’과 관련한 수많은 뉴스를 접하면서도 대부분 “당장 우리 자녀와는 상관없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부터 저는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파른 코로나 상승세로 인해 아이의 칩거 시간이 늘었고 또, 아이가 스마트폰을 이용해 채팅할 시간이 늘어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더 ‘그루밍’이라는 위험천만한 범죄를 단순히 뉴스만으로는 그치지 말고, 우리 자녀의 안전과 연결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초등학생을 유인해 성폭행한 온라인 방송 진행자(BJ)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초등학생을 모텔로 유인해 여러 차례 성폭행한 인터넷 방송 BJ가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요. 그나마 다행인 건, 뒤늦게 아이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부모의 신고로 BJ를 입건하고 아이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만, 아이가 겪었을 피해와 충격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가시질 않습니다. 또 지난 6월에는 학교를 그만둔 고등학생이 여중생 3명에게 접근하여 친분을 쌓고 선물로 호의를 베푼 후 성 착취물 영상을 찍게 하여 중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범인은 여중생에게 접근해 호의를 베풀며 신뢰를 쌓은 후 신체 사진을 전송받아 약점을 잡고, 성적 영상물을 촬영하지 않으면 “부모와 친구들에게 전송하겠다”라며 협박해 총 58건의 성 착취물을 촬영했습니다. 또 그것도 모자라 영상을 판매해 80만 원 상당의 수익을 챙긴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듣기에도 불편한 두 사건은 부모님들도 잘 알고 있는 전형적인 ‘그루밍’ 범죄 수법입니다. 판단력이 부족하고 호의를 쫓는 아이의 심리를 악용하여 범죄자가 피해자를 지능적으로 길들인 후 성을 착취하는 ‘그루밍(Grooming)’ 범죄 수법이죠. ‘그루밍’은 2014년부터 등장하여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숱하게 등장한 범죄입니다. 지난달, 여성가족부에서 ‘그루밍’ 수법이 만연했던 ‘랜덤채팅’을 ‘청소년 유해 매체’로 고시해 이제 좀 안심이 되나 싶었는데 이제는 아예 공인 신분을 가장하여 아이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성을 착취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루밍’이라는 용어가 피해자 입장에서 ‘범죄용어’로 타당한지 묻게 됩니다. “길들이다”라는 용어 자체가 사회적으로 효과 있는 단어라고 생각 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피해당한 아이를 생각하면, ‘그루밍’이라는 범죄 수법을 저지르는 성범죄자는 ‘성 약탈자’ 내지 ‘성 포식자’라는 동물적인 용어를 써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됩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루밍’에서 눈여겨볼 핵심은 ‘속이기’와 ‘성 착취’입니다. 다시 말해, 판단력이 없는 아이를 대상으로 아이의 정서를 이용하여 철저하게 아이를 속이고 범죄자를 따르도록 만든 후 최종적으로는 아이의 성을 착취하는 것이 바로 ‘그루밍’의 전형이죠. 부모가 ‘그루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속임수’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루밍’은 부모의 수준에서 해석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철저하게 아이의 수준에서 바라보고 특히, 소극적이고 외로운 아이 즉, 표현을 잘 안 하는 아이일수록 ‘그루밍’ 수법에 속아 넘어가기 쉬우며 특히, 속이는 단계에서 아이가 선호하는 주제를 가지고 공감해주는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많은 ‘그루밍’ 피해 아이들이 자신이 피해를 보고도 오히려 범죄자를 두둔하며 범죄자를 범죄자가 아닌 ‘좋은 사람’이라고 진술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루밍’ 예방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그럼, 부모는 아이가 ‘그루밍’ 범죄에 노출된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루밍’을 발견한 부모나 형제자매의 진술을 들어보면, ‘그루밍’ 피해를 본 아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징후가 있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스마트폰을 할 때 채팅 대화 상대를 물으면 얼버무리거나 ‘친구’라는 모호한 호칭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보통은 친구의 이름을 알려주는 데 반해 ‘그루밍’ 피해 아이들은 뭉뚱그려 ‘친구’라는 호칭을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두 번째는 아이가 스마트폰을 할 때 두리번거리거나 주변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아이가 스마트폰을 할 때 자주 표정이 바뀐다든지 평소 행동에서 기분 변화가 심하다고 합니다. 네 번째는 아이의 물건에서 부모가 모르는 고가의 물건이나 돈이 발견된다고 하더군요. 또 마지막 다섯 번째는 아이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집착하고 또, 누가 스마트폰을 만지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징후는 아이가 어릴수록 반응 형태가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부모가 주목해야 할 건, 부모의 태도입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혹시라도 부모가 아이의 ‘그루밍’ 피해를 발견한다면, 먼저 아이를 비난하거나 야단치는 행동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특히,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설명해주는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껏 ‘그루밍’ 범죄가 아이들 사이에서 유지될 수 있었던 건, 범죄자가 교묘하게 아이의 ‘성도덕’을 악용하여 ‘그루밍’ 행위가 마치 도박처럼 아이의 잘못으로 책임을 돌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루밍’은 범죄자에게 속아 아이가 성적인 대화나 생각을 표현하는 순간 범죄자가 이를 도덕적으로 악용하여 아이를 난처하게 만든다는 데 있죠.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증가하면서 인터넷이 점점 아이들을 먹잇감으로 만드는 ‘동물의 왕국’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감출 수 없습니다. 사회 제도나 정책이 하루빨리 고쳐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이번 글을 통해 부모님들이 상황을 직면하고, 아이들이 즐겨 찾는 스마트폰 공간이 코로나 이전보다 더 위험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부모의 세심한 관찰과 이해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부모가 ‘온라인 그루밍’을 모르면 안 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