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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n번방’ 사건은 ‘사람 교육의 실패’라는 결론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사람 존중의 부재’가 머릿속에 맴돕니다. 수십만 명이 ‘n번방’을 들락거렸지만, 그 안에 ‘사람’은 없었고, 대신 여성과 아동의 성(性)을 마치 물건처럼 사고파는 악마들만 존재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아이들이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게 우리 사회가 놓쳤던 ‘사람 교육’의 실종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고민이 됩니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사람을 배우는 교육이 계속해서 뒤로 밀려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역사와 윤리, 사회와 같은 ‘사람을 이해하는 교과목’은 높은 점수를 획득하기 위한 눈치 과목에 불과했죠. 게다가 성교육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기술·과정 과목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쩌면 ‘사람 교육’은 당장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니 ‘잠정적 보류’로 인식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n번방’ 사건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잠정적 보류’로 여겨졌던 눈치 과목은 ‘전면적 실행’으로 바뀌었고 결국, 성교육은 다급한 교육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순서로 따지자면, 성교육이 성 인지 감수성 교육보다 선행되어야 마땅합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성 인지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은 미래 사회에서 정당한 ‘성원’으로 환대받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요즘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학교마다 성교육이 한창입니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말들도 많죠. 최근에는 한 고등학교에서 ‘바나나에 콘돔 끼우기’라는 성교육이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의 성교육을 위해 바나나를 가지고 오게 했다가 부모의 거센 비난에 부딪혀 수업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해당 교사는 아이들 정서에 맞는 성교육을 고민했다고 하지만 부모는 하나같이 ‘성행위를 조장하는 부적절한 교육’이라며 교사의 의도를 딱 잘라 버렸습니다. 이에 관련 댓글의 찬반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이번 사례가 세간에 이슈가 되다 보니 대부분 학교는 아이들의 성교육에 대한 방식을 또다시 원점에서 모색하게 생겼습니다. 아이들의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위험해지고, ‘n번방’ 사건 같은 추악한 성범죄들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 또한 성교육을 흐지부지 미룰 수 있는 입장도 못 됩니다. 하지만 성교육만큼 부모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교육도 없습니다. 오히려 학교는 성교육 때마다 ‘아이들의 성행위를 조장한다’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부모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합니다. 이러다 보니 어떤 학교에서는 성교육 강사에게 “학생들이 성교육을 받고 집에 갔을 때, 부모님에게 그 어떤 감흥도 주지 않는 성교육을 해 달라”라는 웃지 못할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학교와 입장이 다릅니다. 부모가 학교의 성교육을 문제 삼은 데는 성교육 때마다 학교의 성교육 소재와 방식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모 또한 예전과 달리 교육적 수준이 향상된 점도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부모가 ‘바나나에 콘돔 씌우기’를 동의하지 않았던 건 정말 아이들을 위한 성교육에서 ‘바나나’가 최선이었는지를 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수업이 한창이던 지난 5월에는 교사가 여자아이들에게 사랑의 유형을 묻는 설문 조사를 진행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이들에게 제공했던 설문지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처음 키스하거나 볼을 비볐을 때 나는 성기에 뚜렷한 반응이 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가 좋아서 키스했다」 등 다소 납득하기 힘든 설문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교사가 제공한 설문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테리 핫코프’ 교수가 연구한 『사랑의 기술 50가지』라는 설문이었고, 사실 설문 대상도 ‘사랑을 하고 있거나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을 특정하여 제작한 설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 경험이 비교적 적은 아이들에게는 적합한 설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교육에 있어서 아이들의 집중은 교육의 핵심입니다. 특히, 성교육은 그 어떤 교육보다 ‘진지함’을 갖춰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성은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교육의 소재와 설정이 아이들에게 웃고 떠들고 장난칠 수 있는 거리가 된다면 그 교육은 위험한 교육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육부, 여가부의 발표처럼 바나나보다는 실물을 본떠 만든 모형이 교육 소재로서 더 진지했을 거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교육에 필요한 진지한 미장센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바나나가 생식기의 모습으로 연상된다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부모는 학교의 성교육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뿐입니다. 부모는 학교가 고민했다고 하지만 바나나가 성교육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보기 어렵고, 또 과학적 방법이라고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잘못된 성교육이 아이에게 어떻게 전이될지를 생각하면 부모로서 더더욱 깐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렇게 되면 성교육에 대한 부모의 불신이 과연 부모의 잘못된 관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성교육 방식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성교육은 보건영역에 속합니다. 그래서 초·중·고교에서 학년 당 의무적으로 연간 15시간 정도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육부 등 관련 부처가 2018년 청소년 6만 4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제14차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살로 조사됐습니다. 문제는 성교육이 보건영역에 있는 것이 맞는지와 또 외부 강사에 의존하는 지금의 교육 설계가 정당한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매번 수업 때마다 지루한 난자, 정자 이야기로 10시간가량을 채우는 깊이 없는 성교육에 대한 반성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성교육은 단순히 성의 단면만을 배우는 교육이 아닙니다. 어쩌면 ‘성교육’은 아이들에게 강한 ‘자아’를 갖도록 지원하는 한 인간의 가치관 교육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성교육’은 사람을 이해하는 교육이자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념까지 갖도록 도와주는 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교육’이 부족한 아이가 일반적으로 ‘자아 정체성’도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결국, 성교육이 올바르게 완성되기 위해서는 해외사례처럼 별도의 보건교육으로 지정될 것이 아니라 교육 이수 과정에 필수과목으로 통합하고, 기존의 기술·가정 과목의 중요성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보건교육의 이름으로 학교 교사가 아닌 외부 강사에 의존하는 특강 체계도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죠. 수십 명의 교육학을 전공한 교사가 있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외부 강사에 의존하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번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 성교육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성교육은 ‘최우선적인 공공의 의무’임에도 그 교육을 진행하는 데 제대로 된 기본 소품 하나 없다는 것이 여실히 밝혀졌습니다. 부모의 지적처럼 콘돔을 끼울 수 있는 생식기 모형 하나 없는 대한민국 성교육을 부모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지를 다 같이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때입니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부모가 신뢰할 수 있는 ‘성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