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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부모가 자녀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그걸 듣게 된다면 학부모들은 깜짝 놀랄지도 모릅니다. 그 목소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불안하고, 초조하며 마치 깊은 바닥에 가라앉은듯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렇지. 날 반기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 그냥 나는 공부만 하라는 거지. 열심히 하는데도 안 되는 걸 어떡해. 나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야.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내 기분 좀 맞춰주면 안 돼? 나 요즘 힘들다고.”
논리적으로 보면, 저는 동화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7년째 매일 새벽 2시까지 청소년들과 이야기하며 그들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까요.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한 가지 연관 검색어가 등장합니다. 준 사람은 없는 데 받은 사람만 있다는 ‘스트레스’입니다. 호르몬의 영향 때문에 청소년들은 원하지 않는 성장통을 겪습니다. 사춘기를 겪지 않은 인류는 없습니다만 요즘에는 ‘삼춘기’와 ‘오춘기’까지 등장해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부모는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의 해답을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해답과 관련한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한 강연에서 부모님들에게도 낸 적이 있는 문제인데요. 아쉽게도 이 문제를 맞힌 부모님은 없었습니다.
이는 제가 말하는 소양이 무엇인지 맞히는 문제입니다. 이 소양은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며 자녀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완벽한 소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마법 같은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이에 이 소양이 있다면 절대 헤어질 수 없습니다. 이 소양을 가진 부모가 있다면 자녀는 행복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이 소양을 가진 자녀가 있다면 부모는 행복 그 자체입니다. 특히 이 소양은 사회 계층 중 10대 자녀들이 많이 갖고 있습니다. 과연 제가 말하는 소양은 무엇일까요?
힌트를 하나 더 드리자면 ‘세 글자’에 ‘외래어’입니다. 당시 강연에서 이렇게 힌트를 드렸더니 한 어머니께서 다급하게 손을 들며 “유우머”라고 외쳐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유머’가 정답인 것 같은 데 세 글자라고 하니 “유우머”라고 본인도 모르게 정답을 외쳐서 강연장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아쉽게도 정답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례를 통해 결정적인 힌트를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제 아들이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면 저는 쉽게 잠에 들지 못합니다. 아이의 수고를 함께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다 아들이 현관문 비밀번호 키를 누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 앞으로 잽싸게 달려가 두 손을 벌린 채 손뼉을 칠 준비를 합니다. 힘없이 들어오는 아들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쳐 줍니다.
“와, 대박! 우리 아들 이렇게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진짜 진짜 수고했어. 우리 아들 최고다!”
새벽 1시인데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까불어 댑니다. 그럼 아들은 손사래를 치며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죠.
“쉿! 조용히 좀 해 아빠. 지금이 몇 시인데~ 사람들 다 깨잖아~.”
하지만 아들은 좋아할까요, 좋아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엿볼 수 있는 소양이 제가 말하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정답은 바로 ‘리액션(Reaction)’입니다. 리액션은 학부모들이 자녀와 소통하는 방법을 듣기 위해 찾은 강연장이나 유튜브 또는 책을 통해 수없이 들었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중 하나입니다. 소통에 있어서 언어의 기술은 7%에 불과하고 표정과 목소리, 제스처와 같은 비언어적 기술이 93%를 차지한다는 ‘메라비언 법칙(The Law of Mehrabian)’의 결정판이자 최근 교육계에서 강조되고 있는 ‘소프트 스킬(Softskill)’의 최신 버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녀는 “사랑해”라는 말을 어색해합니다. “와, 오늘 멋진데’라는 말이 자녀에게는 “사랑해”입니다. 힘들어하는 자녀에게 “힘들어?”라고 물어보는 것보다 등을 살짝 한두 번 토닥여주면 어깨에 남겨진 부모의 손자국에 자녀는 더욱 고마움을 느낍니다. 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리는 손하트까지 꺼내 보여줘 보세요. 손사래를 치긴 해도 학교로 걸어가는 자녀의 표정은 분명히 웃고 있을 겁니다.
자녀는 부모의 리액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계를 돌려보면, 부모는 자녀가 영아였을 때 또 유아였을 때 수많은 리액션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리액션을 보며 안심을 했고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리액션을 그만둔 것일까요? 점점 ‘말’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자녀는 다시 그 어릴 적 부모의 리액션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리액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리액션을 갖춘 자녀가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자녀의 리액션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리액션은 자녀의 내면에 있는 목소리를 밖으로 보내는 신호입니다. 리액션이 있는 자녀는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불안하면 의논합니다. 힘들면 방법을 찾습니다. 지난 7년간 학교 현장에서 리액션이 있는 학생이 학교폭력이나 비행에 가담한 사안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겁니다. 리액션의 메시지는 ‘표현하는 자녀는 안전하다’라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소중한 진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자녀를 위해 이보다 더 완벽한 ‘소양’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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