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우의 에듀테크 트렌드 따라잡기] 암기의 누명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8.12.18 13:35
  •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만 붙어있으면 그 책은 1쇄는 팔려요.'

    출판사 관계자분께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한국에서 뜨거운 관심이었다는 말이겠지요.

    이는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교육으로는 달라지는 사회를 대비할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흔합니다. 직업이 바뀌니 당연히 배움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주장은 대개 '과거의 교육은 지식이지만, 지식은 이미 암기할 필요가 없으니 창의성 교육 등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런 말이 사실일까요? 우선 의심이 듭니다.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IT 회사는 대부분 우수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인재를 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벌을 보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아마존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명문대에만 골라서 졸업생 설명회를 여는 방식으로 엘리트 위주로 학생을 선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다수 지원자는 코딩뿐 아니라 영어, 수학, 과학 등 '기초 지식'이 잘 단련된 사람들입니다. 정말 암기가 필요 없다면, 왜 암기 성적이 훌륭했던 학생을 선별하는 걸까요?

  • 창의력에 암기가 필요 없는지 또한 의문이 듭니다. 최근에 교육계를 강타한 책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에는 암기를 통해 창의력을 꽃피운 사례가 나옵니다. 역사상 가장 창의적이고 뛰어난 글쟁이였던 셰익스피어. 그는 당시 영국의 단순 암기식 교육을 배웠습니다. 초기에 셰익스피어의 극본은 매우 패턴화되어 있었고, 정확하고 규칙적인 운율에 따라 글을 썼습니다. 탄탄한 기본기에 경험이 쌓이면서 최고의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지요.

    역대 최고의 연설가 중 하나로 꼽히는 처칠 또한 암기식 교육에 혜택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지독한 말썽쟁이였고 열등생이였습니다. 제대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학년을 올라가지 못하고 기초 영어 수업을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 암기식 문법 수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기초를 튼튼하게 다진 처칠은 이후 역사상 최고의 연설가가 됩니다.

    인지 심리학자 대니얼 윌링햄은 암기한 지식이 마치 '벽돌'과 같다고 말합니다. 벽돌이 있어야 건물을 지을 수 있듯, 지식이 있어야 창의력을 발휘할 재료가 생긴다는 거지요. 전문적 지식이 없이 창의 교육을 한다는 건 벽돌 없이 건물을 짓겠다는 생각과 같다는 주장입니다.

    그렇다고 과거 교육과 미래 교육이 전혀 다를 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마존은 회의 때 직원에게 장문의 글을 쓰게 합니다. 파워포인트가 아닌 글을 읽고 회의를 합니다. 직원에게 탄탄한 구성의 글을 쓸 수 있는 '작문 실력'을 요구하는 겁니다. 기존의 교육에는 있기 어렵지요.

    요즘 미국에서 고연봉에 상징처럼 되어가고 있는 코딩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딩지식은 쉴 새없이 바뀝니다. 그 트렌드를 스스로 찾아내고,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다만 수학,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코딩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영어 실력'이 우선 필수일 겁니다. 미래 교육은 과거 교육에 부정이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 가까운 셈입니다.

    암기와 창의력 교육. 둘은 제로섬 관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튼튼한 암기와 지식의 기초 위에 자라는 나무에 가까운 건 아닐까요? '암기식 교육, 과거식 교육이 창의력을 죽인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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