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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파브르 곤충기’를 좋아했다. 곤충기와 파브르에 인생 이야기를 같이 풀어놓은 책이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파브르의 학창시절 이야기였다. 파브르는 가난해서 초등학교 졸업 이후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노력 끝에 간신이 고등 교육기관에 합격한다. 그리고 특권을 누리듯 즐겁게 공부했다. 당시만 해도 학교는 즐거운 곳이었다.
내가 있던 현실의 학교는 달랐다. 모두가 학교를 지겹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즐겁게 다니는 학생은 드물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현재 한국 학교 시스템은 일본에서 수입되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 유럽 각국의 장점을 모아 자신의 제도를 만들었다. 교육 제도는 독일을 많이 참조했다. 제조업과 군사 강국이었던 프로이센은 일본과 많이 닮아 있었다. 일본은 산업화 시절 자신과 가장 닮은 선진국의 교육 제도를 모방한 셈이다.
이런 방식의 교육은 지금껏 유용했다. 한국은 50년대 세상에서 가장 학력이 낮았다. 지금은 일본을 넘어서 핀란드와 함께 세계 최고의 교육 강국이다. 교육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 10위 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인력, 나아가 교육의 승리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 제도가 앞으로도 유용할까?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모방과 창조에 대한 사설을 실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문제를 제시하고 가만히 내버려 둘 때도 스스로 어른의 행동을 모방하고, 이를 적절하게 창조해서 자신만의 해답을 만들었다. 정말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 사설은 모방이 곧 창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어른들이 직접 아이들에게 정답을 알려주면 아이들은 어른의 행동을 모방만 했다. 이를 바꾸고, 개선하려 하지 않았다.
이 실험 결과는 산업화 시절에 만들어진 교육 제도에 한계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정답을 외우면 충분했다. 지금은 정답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답이 있는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은 너무 많다. 그보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공부의 기본은 여전히 모방과 암기다. 하지만 어른이 정답을 ‘떠먹여 주기’ 시작하면 아이는 모방과 암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재미있는 정보가 많아지기도 했다. 파브르가 학교에 다니던 1800년대 유럽에서 학교는 최신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었다. 교사는 누구보다 똑똑했다. 교과서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깊고 넓은 지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누구나 세계 최고의 강사와 최신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교육을 바꾸기 위해 사기업들이 나서고 있다. 특히 IT 기업들이 그렇다. 이들은 학생이 스스로 인터넷에서 자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찾아 공부하는 방식을 전파한다. MOOC는 대학의 동영상을 올려 이를 통해 교육한다. 메가스터디 등의 사교육 E 러닝 업체들도 등장했다. 구글은 칸 아카데미 등의 업체에 투자해서 교육을 바꾸고 있다. 아마존 또한 교육 콘텐츠 사업에 나섰다.
사기업이 공공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특징이다. 검색 엔진은 어쩌면 수도관만큼 공적인 서비스다. 과거 패러다임으로 보면 정부가 운영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정부는 검색엔진 같은 복잡한 IT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할 능력이 없다. 그 사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네이버 등의 거대 IT 기업은 공공성을 가진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학교도 그 연장선에 있을지 모른다. 과거의 교육은 현재 학생들의 필요성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그 자리를 거대 IT 기업들의 서비스가 노리고 있다. 학교도 대체될지 모른다. 지금부터 미래 교육, 미래 학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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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우의 에듀테크 트렌드 따라잡기] 학교의 진화, 혹은 학교의 사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