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우의 에듀테크 트렌드 따라잡기] 4차 산업혁명 대비에 앞서 우선은 기본부터.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7.02.14 16:14
  • 1901년 초여름, 파리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19세 젊은 화가의 전시회였다. 그는 3개월간 온 힘을 짜내 6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뛰어난 기술을 가졌지만 아쉽게도 독창성이 없었다. 어떤 그림은 고야를, 다른 그림은 벨라스케스나 엘 그레코를 베꼈다. 그의 그림은 다양한 화가의 그림을 베낀 종합판 모작에 가까웠다.

    이 청년 화가의 이름은 파블로 피카소였다.

    피카소는 왜 다양한 작가의 그림을 베꼈을까? 그에게는 모방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양한 작가의 그림 스타일을 베낀 다음 그들의 스타일을 뒤섞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들의 기술을 훔친 다음에야 비로소 그는 자신만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창의력이 화제다. 4차 산업혁명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의 값싼 노동력과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한다. 인공지능이 더 잘하는 직업은 필연적으로 인공지능에 빼앗기게 되어있다. 체스와 바둑에서 인간이 패배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계가 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오간다.

    하지만 창의력에는 문제가 있다. 창의력을 대체 어떻게 키운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창의력 논의는 근거 없이 당위만 있는 빈 주장이 되기 쉽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앨버트 로센버그는 평생에 걸쳐 인간의 창조성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창조성이 호모 스페이셜(homospatial)한 사고라고 말한다. 두 개의 별개의 개념을 합쳐서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만드는 생각이다.

    두 개를 합치려면 우선 합칠 수 있는 개념을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 아는 게 많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모방과 암기가 필요한 이유다.

    다른 개념을 잘 합치려면 암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완벽하게 분해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전혀 다른 두 요소로 새로운 요소를 만들 수 있다. 기술이 필요하다.

    파블로 피카소로 돌아가 보자. 피카소는 모방작으로 전시회를 연 후 고작 1달 뒤에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한다. 그는 고흐의 표현주의와 로트레크의 주제와 드가의 표현법과 고갱의 채색법을 혼합했다. 다양한 화가의 그림을 암기하고, 그들의 그림을 완벽하게 베낄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술과 암기의 힘이 필요했던 셈이다.

    여기에 피카소는 자신만의 느낌을 넣었다. 당시, 그의 친한 친구였던 카사헤마스가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그는 자신의 우울한 느낌을 푸른색으로 표현했다. 이 시기가 바로 피카소의 첫 번째 화풍 시기인 ‘청색시대’다.

  •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대표하는 그림 ‘늙은 기타리스트’ (이미지 출처: flickr.com)
    ▲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대표하는 그림 ‘늙은 기타리스트’ (이미지 출처: flickr.com)
    인공지능과 맞서 싸우는 법은 결국 간단하다. 역설적으로 인공지능이 잘하는 일인 암기와 단순 반복을 게을리 하지 않는거다. 그러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쌓는다. 그리고 지식과 기술이 쌓이면 여기에 나만의 색깔을 담아 나만의 창의성을 만든다. 나만의 색깔이 쌓이면 비로소 기술을 활용해서 기존보다 더 편하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컴퓨터를 체스로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과 컴퓨터가 함께 두면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컴퓨터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모두가 인공지능을 갖게 되면 결국 인간이 중요해진다.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창의력이 중요하다. 그 창의력을 단련하는 방법은 ‘영감’만이 아니다. 암기와 기술을 통한 훈련이다. 훈련된 사람만이 자신의 창의성을 실현할 수 있다.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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