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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이를 낳고 한동안 우울감에 시달렸습니다. 아이를 나 혼자 낳았나요? 아무리 회사 일이 바쁘고 여유가 없다고 해도 육아에 나 몰라라 하는 남편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평일엔 회식이다 접대다 밤 늦게 들어오니 얼굴 한번 제대로 보기 힘들고, 쉬는 날에는 피곤하다고 소파와 한몸이 되어 있는 남편.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아이도 아빠를 찾지 않고, 저 또한 남편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체념하고 아이와 저만의 질서를 만들어간 것이죠.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자기 주장도 강해지고,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자 남편이 아이를 심하게 몰아세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 나이 또래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말로 잘 타이르면 될 일입니다. 본인은 훈육이라고 하지만 처음에는 화를 내고 마지막에는 잔소리로 끝내는 모습을 보면 저 또한 화가 납니다. 아이 앞에서 남편의 위신을 세워주고 싶지만, 아이를 심하게 꾸짖는 모습을 보면 못 참고 남편을 몰아세우게 되네요. 남자 아이라 아빠 손길이 더 필요해지는데, 점점 아빠를 멀리하게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남편과 합심해야 될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2학년 남아를 키우는 30대 전업주부)
A. 보내주신 사연처럼 아이를 대하는 태도나 육아에 대한 가치관에서 이견을 보여 다투는 부부가 많습니다. 엄마들끼리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말하죠. “어디서 시어머니 아들이 내 새끼에게 지적질이야.”
외벌이 가정이든 맞벌이 가정이든 육아의 대부분을 엄마가 책임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아이와의 유대감 또한 아빠보다는 상대적으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있는 엄마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빠들은 아무래도 질적이든 양적이든 아이와 보내는 시간 자체가 부족하니까요.
아이가 어릴 때는 육아 문제로 많이 다투다 어느 순간 체념도 하고 익숙해지기도 하면서 나름의 질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서 육아가 아닌 교육의 문제로 넘어갈 때 또 한 차례 고비가 찾아옵니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습니다. 아이를 끼고 키워온 엄마는 그 상황의 이면과 앞으로 벌어질 일들까지 종합하여 내 아이의 입장을 고려한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빠는 아주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합니다. 어떻게 보면 보편타당하고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거기엔 내 아이의 입장이 없습니다.
당연히 아빠의 이런 말이나 행동을 훈육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나 엄마는 별로 없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키워놨더니, 아이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하고 싶은 말 다 내뱉는 남편이 미워죽겠을 지경입니다. ‘옆집 아저씨 자식’도 아니고 함께 낳아 기르는 자식인데, 왜 저렇게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야단만 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무방비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 기릅니다. 어디에서고 제대로 된 부모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나마 육아의 대부분을 도맡아하는 엄마들은 좋든 싫든 아이와 함께 어떻게든 적응해나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깨지고 넘어지면서 하나 하나 아이 키우는 지혜와 노하우를 배워나갑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30,40대 가장인 남편들은 아이와 함께 물리적인 시간을 함께하기도 힘들고, 또 경험이 쌓이지 않으니 노하우나 지식이 생기기도 어렵습니다.
아빠 입장에서는 어쩌다 가끔씩(!) 아이들을 봅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자기 생각처럼 딱딱 맞춰서 행동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맘에 들지 않는 행동만 하는지... 그러다보니 아내의 육아 방식이나 교육 가치관에 태클을 걸기도 합니다. 흔히 직장에서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대한 문제점들을 본인의 객관적인 입장과 시각에서 이야기하곤 합니다. 자기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대한 자기만의 표현 방식으로 말이죠.
반복된 육아와 일상에 지친 아내들은 이때가 가장 서럽고 외롭습니다. 아이 키우는 일에 객관적인 입장과 시각이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요? 혼자 따박따박 옳은 소리만 하는 것을 보자니, 역시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이쯤 되면 남편에게 좋은 소리가 나가기 어렵습니다. 남편이 아이에게 한마디 할라치면 내 입에서는 두 마디 세 마디가 나옵니다. 아이 앞에서 남편의 위신을 살려주고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워줘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만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면 남편은 아이를 나무라고, 그 모습이 보기 힘든 아내는 다시 남편을 나무랍니다. 어떻게 보면 악순환이죠.
그러다보니 가정 분위기가 험악해집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가정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빠에게 지적을 당하니 주눅이 듭니다.
아이가 제대로 된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 있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면서 한 인격체로 커나가기 위해서는 엄마만의 노력, 혹은 아빠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한팀’이 되어 한 목소리와 한 사인으로 아이를 키워야 합니다.
이래저래 진퇴양난, 아이 키우는 일에서 도무지 손발이 맞지 않는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내 아이의 행복’이다
남편에게 더 서운하고 화가 나는 이유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노력하는 만큼 내 기대에도 부응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의 기대에 맞춰서 변화하길 바란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누군가 내가 변하길 바란다고 해서 내가 내 행동이나 가치관을 변화시킬 이유가 없듯이, 상대방도 바뀔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변화하지 않는 상대에게 기대하고 서운해 하고 분노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훨씬 좋은 일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바란다고 해서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대신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아이의 행복’.
육아와 교육에 남편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싶다면, 원망하고 탓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선 남편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때로는 ‘굳이 그런 것까지 치사하게 말로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내 아이와 나 그리고 남편,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처음부터 좋은 아빠 노릇을 할 수 있는 남자는 매우 드뭅니다. 게다가 지금 30,40대 성인의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집중할 시간이 없는 세대였습니다. 나 자신도 내 부모로부터 감정을 케어받고 조절하고 표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 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동안 서운했던 것들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자신을 공격한다고 방어 모드로 돌입할 수도 있습니다. 되도록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남편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요구합니다. 그 다음 내 마음에는 다 차지 않겠지만 남편이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반드시 말로 고마움을 표현해야 합니다. 많이 원망스럽고 많이 미흡해도 남편을 몰아세우고 원망하고 화내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사실 한 두 번 해서 변화할 거란 기대도 버려야 합니다. 우린 다 알고 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한 두 번 해보고 지치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 맘처럼 잘 따라오지 않는 남편을 위해서는 부모 교육을 받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요즈음에는 비싼 교육료를 내지 않더라도 교회나 수련관 등 여러 단체들에서 부모교육 세미나를 많이 진행합니다. 남편이 내 아이의 인생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생각해볼 기회를 갖는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의 참여를 끌어내려면....
1. 남편에게도 칭찬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칭찬과 격려는 남편도 춤추게 합니다. 원망하고 탓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부부 사이가 나빠지면 무엇보다도 아이가 고통받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싸우면 자신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내가 남편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평소 꼭 말로 해야 압니다. 그래서 아빠의 ‘인정 욕구’가 활활 살아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2. 요구 사항은 한 번에 하나씩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이런 것까지 꼭 말로 해야 아냐’고 하지만, 말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남편과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아내들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 불쾌감을 표시하는 ‘수동공격성 방어기제’를 많이 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남편들은 그 사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무언가 요구를 할 때는 한 번에 하나씩, 구체적으로 말해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3. 아이 앞에서 남편을 폄하하거나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사연의 경우처럼 남편이 아이를 몰아세우면 아내들은 남편을 더 몰아세우게 됩니다. 은연 중 알게 모르게 아이 앞에서 남편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이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배워 어느새 아빠를 만만하게 보고 무시하게 됩니다. 권위적인 아빠는 필요없지만 아빠의 권위는 필요합니다. 아이의 사춘기 때 적절하게 써먹기 위해서라도 아빠의 권위는 반드시 지켜줘야 합니다.
4. 남편에게 역할 분담을 제안합니다.
주말에 한 아이씩 데리고 외출을 한다거나, 한 달에 한번 서로 육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아내도 아내만의 시간이, 남편도 남편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꼭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야 의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맞벌이 주부는 평일에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주말에 몰아서 모든 것을 해내려고 하니, 몸과 마음이 더 지게 됩니다. 완전히 소진되기 전에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역할을 나눠야 합니다.
5. 육아가 어렵고 힘든 것만이 아니라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경험을 공유합니다.
아이와 놀아준다고 생각하면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노는 겁니다. 아빠들은 엄마들보다 몸으로 노는 등 아이와 함께 다양하게 놀 수 있습니다. 이때 남편의 취미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남편에게는 아이를 데리고 최신 오락실에 가서 마음껏 게임을 즐기게 하는 식이죠.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 육아라는 것이 꼭 어렵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남편도 알게 됩니다.
에디터맘 송미진(도서출판 센추리원 대표)/ 중학교 1학년 아들, 초등 2학년 딸을 키우며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첫아이를 낳고 5살 터울로 둘째를 낳아 기르며 생기는 무수히 많은 육아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의 심리에서부터 엄마의 학습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육아서를 기획했다. 덕분에 대한민국 최고의 육아 전문가들로부터 1대1 멘토링을 통해 두 아이를 키우는 지혜를 얻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이런저런 고민들을 ssongmj71@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 사연이 채택되신 분께는 정성껏 만든 육아 단행본을 보내드립니다.
카카오스토리 쏭언니의 소통육아 https://story.kakao.com/ch/mommind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에디터맘 쏭언니’의 내 아이는 아는 만큼 지킨다] “아이를 심하게 대하는 남편이 밉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