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고수 태선생의 국어 잘하는 뇌로 거듭나기 학습법] 수능 국어 안정적 1등급 만들기 프로젝트 네번째 : 현대 소설 문학 제대로 읽기 1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6.02.11 09:34
  • "현대 소설은 정말 쉬운 이야기일까?"

    소설은 쉽다. 아니,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소설이 읽기 쉽다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비교적 우리의 삶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들이어서 쉽다고 여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소설을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오락거리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현대 소설을 그렇게나마 친근하게 여기는 것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학생들이 소설을 공부해야 할 것으로 여기기 이전에 즐겨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물어보자. 소설은 그렇게 쉽고 재밌기만 한 것일까? 당연하게도 모든 소설이 쉽고 재밌지는 않다. 현대 소설 중에는 비참하고 어두우며 심각한 소설들이 훨씬 많다. 물론, 그런 소설조차 재미만으로 읽겠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재미'가 어떤 재미인가를 한 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그 '재미'가 그저 익숙한 이야기에서 오는 재미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재미를 얻어야 하는 것이 굳이 현대 소설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오락 영화를 보거나 텔레비젼 드라마를 보는 것으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소설에서 찾는 것은 어쩌면 시간 낭비일 수도 있다.

    수능 국어 시험에서 현대 소설이 갖는 성격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상당히 많은 수의 학생들이 소설을 비교적 쉬운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수능 시험에서 출제되는 소설들은 단지 '재미'로만 읽기에는 좀 무겁거나 정교한 독해 실력을 요구하는 작품들이다. 즉, 수능 국어 수준에서 다루는 현대 소설들은 결코 재미만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니다. 현대시를 포기한 학생들이 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면 현대 소설에서 힘겨움을 겪는 학생들은 그 반대로 소설을 그저 이야기로만 생각해서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현대 소설을 잘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설=이야기'라는 등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대소설은 읽기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치밀한 분석을 요구하는 정교한 언어 예술이다"

    실제로 고3 후반기에 국어 슬럼프에 빠지는 학생들의 상당수는 현대소설을 만만하게 여겼던 학생들이다. 말하자면 현대 소설은 입시 생활 후반기에 복병처럼 등장해서 입시생들을 괴롭히는 영역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학생들은 왜 슬럼프에 빠지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현대 소설에 대한 안이한 독해 습관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소설에서 제일 주목해 봐야 할 것이 무엇이지?' 라고 물으면 대부분 '주제'라고 답한다. 그러면 그 주제는 어떻게 알 수 있지? 라고 물으면 또 대부분 '사건'이라고 말한다. 소설을 몇 개의 사건이 엮여서 어떤 주제를 드러내는 글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학생들에게 수능에 출제되었던 오정희 작가의 [중국인 거리]나 김승옥 작가의 [역사]와 같은 작품들은 정말 읽기 힘든 작품이었을 것이다. 두 작품에서는 별다른 사건도 없고, 따라서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수능 국어에 출제되는 현대 소설은 일정한 수준 이상의 독해 실력을 요구한다. 적어도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라면 우리 소설이 가진 문학적 가치를 충분히 즐겨가면서 소설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러한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이야기를 읽던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등학교의 소설을 읽으려고 하면 결국 낭패를 당하게 된다. 수능 국어에서 다루는 현대 소설은 천편일률적인 상업적 이야기들과는 달리 삶과 세계에 대한 작가의 신중하고도 오래 갈고 닦은 생각을 펼쳐 보이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국어 교육에서는 그러한 소설을 자유롭게 읽되, 작가가 문제 삼고 있는 것들을 함께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는 지적 능력을 키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설을 그렇게 분석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우선 소설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현대 서사 문학은 세계와 자아 간의 대립과 갈등을 다루는 문학 형식이다"

    이 정의는 수 백번을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현대 소설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은 위의 정의를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러 문학 교과서의 현대 소설 도입부분에서 자주 사용하는 정의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은 이를 무시하고 넘어간다.  왜그럴까? 많은 학생들이 현대 소설을 자구해석이나 주제 암기와 같이 주로 문제 풀이에 한정된 학습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위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하는 그런 공부는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의에 바탕을 둔 소설 감상법을 충분히 익혀야 주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제멋대로 소설을 이해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정의가 뜻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소설을 치밀하게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까? 이제부터 그것들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우선 위의 말 뜻부터 살펴보자.

    위의 정의 문장을 좀 간단하게 풀어 쓰면 '소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물이 경험하는 갈등과 혼란, 충돌 따위를 펼쳐 놓는 문학'이라는 말 정도가 될 것이다. 갈등은 한자로 보면 칡과 등나무를 뜻한다. 그런데, 이 두 덩쿨 식물은 꼬여 올라가는 방향이 반대라고 한다. 따라서 칡과 등나무를 섞어 놓으면 아주 혼란스럽게 꼬여 있는 모습이 된다. 따라서, 갈등이라는 말을 통해 현대 소설문학의 본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소설은 한 인물이 어떻게 험난한 고난을 겪으면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했는가를 담은 이야기가 결코 아닌 것이다. 성공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것은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현대 소설은 그런 '성공'에 오히려 의문을 던지는 문학이다. 현대 소설은 성공담보다는 실패담, 영웅보다는 찌질한 사람들에 더 관심이 많은 문학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소설은 왜 그런 인물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일까? 왜냐하면 불행한 인물들, 고뇌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속한 '세계'의 실상과 문제점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세계가 행복과 풍요, 그리고 평화로 가득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교만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세계는 종교에서나 가능한 세계일 뿐이다. 종교는 구원의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현재의 고통과 불행을 잠시 잊을 수 있는 힘을 주는 방식으로 위안을 준다. 그러나, 문학은 구원과 내세를 말하지 않는다. 문학은 오히려 그 고통과 불행을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이 세계 안에서 가치 있는 삶을 꾸려 나가려고 한다. 현대 소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현재의 고통과 불행을 응시하고 문제로 삼는 일을 하는 언어 예술인 셈이다.

    따라서, 소설을 읽으면서 인물에게 본받을 만한 점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것은 제대로 된 감상이 아니다. 오히려 인물이 처한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은 운명의 힘이 지배하는 현실일 수도 있고, 식민지배의 억압이나 전쟁, 또는 산업화가 펼쳐지는 사회일 수도 있다. 어떤 선생님들은 소설을 인물 중심으로 읽으라고 하시는데,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말도 아니다. 소설에서 인물의 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인물이 처한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 소설을 충실하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현대사의 여러 고난의 시기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역사 공부나 사회 공부가 전제되어야 현대 소설은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소설의 정의를 이용해서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인물을 둘러싼 부정적인 현실을 살펴보자.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인물의 태도를 보자"

    [다음 시간부터는 위의 정의를 활용해서 소설을 치밀하게 읽어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