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고수 태선생의 국어 잘하는 뇌로 거듭나기 학습법] 수능 국어 안정적 1등급 만들기 프로젝트 세번째 : 시문학 제대로 읽기 3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6.02.02 15:04
  • 자, 그러면 이제부터 수능에서 고난도로 출제되었던 문제들을 사례로 들면서 시포자에서 벗어나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들을 하나씩 확인해 보자. 이전 시간에는 시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 화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시적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음 시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자.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간간이자유를 말하는데(1)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그대의 말을(2)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마음에 들지 않어라~


  • 위의 시는 김수영의 [사령]으로 2008년 수능에 출제되었던 시의 한 부분이다. 위의 시에서 화자가 처한 상황의 단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으면 일단 부정적인 상황일 만한 것을 찾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당연히 (1) 나의 영이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구가 눈에 들어 올 것이다. 이 시구를 보고 어떤 뜻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것이 상승의 이미지인지 하강의 이미지인지만 생각해보자. 당연히 하강의 이미지이다. '죽음'이 흥겹고 신나는 일일리는 없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다고? 그러면 (1)이 긍정적인 상황인지 부정적인 상황인지만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면 누구나 부정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가지고 문제를 어떻게 물어봤을까? 문제에서는 (2)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태도를 '이상을 묵묵히 실천하는 태도'라고 해석한 선택지가 나왔다. 이 선택지는 맞는 해석일까?  어떤 시구나 시어, 그리고 화자의 태도이든지 항상 화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관련해서 의미를 추측해야 한다고 이전 칼럼에서 강조했었다. 이것을 잘 명심해보면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실천하는 태도'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아니다'. (1)에서 화자는 자신의 영이 죽어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개를 숙이고 듣는다'는 것은 (1)과 같은 상황과 관련해 보면 어떤 실천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적 상황', 즉 화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하는 것은 모든 시어와 시구, 그리고 화자의 태도를 이해하고 기본적인 단서가 된다.

    "시포자들이여, 시어와 시구, 화자의 태도를 해석하기 전에 시속의 상황을 먼저 파악하라!"

    그러면.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너무 쉬워서 어리둥절할지도 모르지만 도대체 '누가' 행동을 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말귀를 알아듣는 첫번째 자세는 말을 하는 자는 누구고, 그 말 속에서 행동을 하는자는 누구인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이 분별을 잘 하지 못하면, 즉 '말하는 자'와 '행동하는 자'를 잘 분별하지 못하면 시 감상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이 지극히 당연하고도 쉬운 감상법을 수능에서는 어떻게 물어봤을까? 수능 시험은 결코 화려한 기술을 요구하거나 기기묘묘하고 난해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 실력을 잘 갖추고 있는지는 철저하게 확인하는 시험이다. 시구를 어떻게 해석하건 시 감상의 기본을 잘 알고 있는지를 확인했던 문제 중에 2004년에 출제된 문제가 가장 잘 다듬어진 문제이다. 다음 시구를 먼저 한번 읽어보자.


  •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3)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사라지고 있었다.

    위의 작품은 김수영의 [내가 만난 이중섭]이다. 김수영 시인은 자신의 시를 '무의미시'라고 말했는데, 이는 자신의 시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김수영 시인은 시의 의미가 시인으로부터 독자에게 전달되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시로부터 자유롭게 끌어내는 것이며,  시인들은 그것을 보다 풍부하게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즉, '무의미시'란 독자들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서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끔 쓴 시인 셈이다. 위의 시를 가지고 출제한 문제는 그러한 김수영 시인의 시 세계를 잘 보여준 문제였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단서로 해서 왜 (3)의 시구를 자유롭게 이해할 수 있는가를 묻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는 것을 얼마나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을까?  만일 '바다'를 무거운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학생이라면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는 시구에서 아주 힘겨운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 '바다'를 탁트인 넓고 푸른 광장으로 받아들였다면 (3)에서 희망과 이상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시구를 잘못 이해한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3)의 시구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는 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 위의 문장은 (3)의 문장을 잘못 이해한 답지로 제시되었던 것을 좀 더 간단하게 압축한 것이다. 이 답지가 왜 답이 되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만일 바다를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머리 속의 어지러운 상태를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다'는 것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담아냈다고 하는 해석이 전혀 틀린 해석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선생님들은 이 부분이 틀렸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사실 아내가 오기를 바라는 갈망과 아내가 오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가 이 시구에 담겨 있지 않다고 말할 근거는 전혀 없다. 따라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없기 때문에 위의 선택지가 틀린 게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이상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시인의 마음'을 담아냈다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시에서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는' 사람은 '이중섭'이지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는'것을 무엇이라고 해석하든지 그것은 이중섭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시인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닌 것이다. 즉, 이 문제는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시를 감상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명확하게 묻는 문제였던 셈이다. '말하는 자'는 누구이고 '행동하는 자는 누구'인지를 분명히 구별하라! 이것이 이 아름다운 문제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시포자들이여! 해석하려 하기 이전에 누가 말하고 누가 행동하는가를 분별하라!"

    자, 이제 어느덧 현대시를 감상하는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방법에까지 다 왔다. 화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리고 화자의 태도나 행동을 시 속의 다른 행위자들과 분별해서 읽어낼 줄 안다면 이제 어떤 작품이든지 쉽고 정확하게 독해하는데 필요한 공식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면, 수능 기출 문제 중에서 높은 오답률을 기록했던 문제를 가지고 그 공식이 무엇인지를 확인해 보자. 먼저 아래의 보기를 차분하게 읽어보자.


    ~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

    위의 시는 2003년 수능 시험에서 출제되었던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의 한 부분이다. 2003년 수능에서는 위의 밑줄 친 ㉠ 과 시적 정조가 가장 가까운 것을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시포자들은 흔히 '정조'와 같은 말에 주눅이 든다. '정조?' 남자나 여자가 지켜야 하는 절개같은 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조차 있다.  실제로 '정조'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라서 틀린 학생도 있었다. '정조'라는 말을 완전하게 같은 뜻은 아닐지라도 '정서의 흐름'처럼 좀 쉽게  바꾸어 주었다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학생들조차 '정조'라는 말뜻에 주눅이 들어서 틀린 것은 아주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은 두 가지다. 수능에 나올 만한 개념을 찾아서 빠짐없이 익히든지, 아니면 그 개념의 정확한 뜻은 모를지라도 답을 찾을 수 있는 감각을 키우든지 해야 한다.

    물론, 보다 바람직한 것은 문학 개념어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 개념어를 어떻게 쉽게 정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칼럼에서 심도있게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문학 개념어를 정확하게 모를지라도 답을 정확하게 찾는 일반적인 방법에 대해서 알아 보자. 그런데, 학생들 중에는 문학 개념을 몰라도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문학을 꽤 깊게 전공한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문학은 개념을 잘 몰라도 얼마든지 풀 수 있는 교과 영역이다. 물론, 그렇다고 개념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개념에만 전적으로 의지해서 풀어도 안되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따라서 개념에 주눅들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문학에서 '개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의미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위의 수능 문제는 문학이 가진 그런 특징을 아주 잘 보여주는 문제이다.

    "시포자들이여! 개념에 주눅들지 말고 의미가 만들어지는 맥락을 보자"

    위의 밑줄 친 부분의 정조가 무엇이건 분명한 것은 '뼈'가 '불타는 것'을 쓰다듬는다는 맥락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 때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던 학생들은 거의가 다  '숯이 된 뼈'의 이미지나 의미를 생각하거나 '세상의 불타는 것들'의 의미를 생각해보려 애썼던 학생들이다. 즉, '뼈'가 '불타는 것'을 쓰다듬는다는 맥락을 보지 않고 각각의 시어들이 갖는 이미지를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답을 찾았다면 정답을 찾기 어려웠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이었을까?  김종삼 시인이 지은 '묵화'라는 시의 한 부분인 "  물 먹는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졌다./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가 답이었다. ㉠을 '현대문명의 폐허 이미지'가 어떻다는 둥, 현대 사회의 소외와 파괴된 자연이 어떻다는 둥 해석된 것을 암기한 학생들은 아마도 매우 당혹스러운 문제였을 것이다. 답지 어디에도 그렇게 해석할 만한 답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종삼 시인의 시구가 답이 되는 까닭은 '뼈가 불타는 것을 쓰다듬는다'는 맥락이 '할머니께서 소를 쓰다듬는다'는 답지의 맥락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에서는 현대 사회를 고단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듯한 '정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종삼 시인의 시는 그런 점에서 ㉠의 정조와 일치하는 답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부족한 대로 시를 치밀하고 풍부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감상하기 위한 방법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화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자
    둘째, 누가 말하고 누가 행동하는지를 분별하자
    셋째, 낱낱의 시어보다는 맥락을 보자.


    이 세 가지 기본 방법은 사실 시 읽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능 시험에서 아무리 어려운 문제일지라도 결국은 이 기본을 묻는 문제였을 뿐이다. 온갖 화려한 의미들과 현란한 개념에 주눅들 필요도 없고 그것을 암기하는데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다. 수능 국어 문제는 학생들이 틀리도록 만든 문제가 아니라 기본기를 잘 갈고 닦았으면 누구든 정확하게 답할 수 있게끔 다듬어진 문제들이다. 그러니 시를 포기하고 싶거나 이미 포기한 친구들이여! 결코 좌절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시도해보기 바란다.  다음 칼럼부터는 현대 소설을 어떻게 읽고 공부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