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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수험생들이 자신의 진로나 학습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가장 어렵게 맞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방향 설정이다. 진로 분야부터 목표 학교나 학과의 설정, 수시·정시 등의 입시 전략이나 공부법, 각종 활동의 계획 수립도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책 한 권을 읽으려 해도 아무것이나 하나 선뜻 집어 들기가 쉽지 않다. 시간은 제한적이고 어떤 선택에도 불확실성은 반드시 동반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컫는 급격한 사회 변화와 현재의 고등학생들이 치르게 될 학생부종합전형 중심의 대입은 이런 방향 설정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수험생 대부분이 온종일 공교육과 사교육을 오가고 있지만 정작 이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해줄 현실적 제언과 도움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그 원인과 주변에서 해줄 수 있는 도움은 무엇일까? 교육 현장에서 만난 학생 사례를 통해 알아봤다.
선생님은 많지만 멘토가 없다?
진학 문제로 일전에 잠시 상담을 받았던 A군은 인천 일반고에 재학중인 남학생이다. 과학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이과 성향의 학생으로 지난 1년간 학교생활에 매우 충실했다. 내신도 나쁘지 않아 2등급이 대다수에 몇몇 과목에선 1등급을 받기도 했다. 학기 중에도 진로나 공부 방향과 관련하여 간간이 질문을 해오던 A군의 문자가 1학년 기말고사를 마치고부터 부쩍 잦아졌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1학년 학교생활기록부 마감 때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다가올 2학년 공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 중에서도 A군이 최근에 가장 크게 고민이 된다고 말한 부분은 과학 공부에 관해서였다. 과학중점학교라 올해부터 물화생지 과목이 본격 시작되는데 겨울방학동안 미리 무엇을 해두어야 할지 막막하다는 내용이었다. 과학을 가장 좋아하고 잘했던 학생이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의외였다. 더군다나 A군은 이미 해당 과정을 중학교 때 선행학습으로 상당 부분 훑어본 상태였다. 기본 개념은 한 번씩 접해본 내용들인데 무엇이 걱정이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더 의외였다. 그 동안 국영수 공부를 모두 학원과 과외에만 의존한 탓에 처음으로 스스로 공부하려니 아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과탐만큼은 혼자서 공부해보겠다는 의지가 가져온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고민이었다.
이처럼 아주 간단할 거 같은 공부 접근 방식조차도 어떤 학생들은 매우 어려워할 수 있다. 진로 탐색 등의 비교과 활동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런 난관은 특히 출발점에서 자주 발생한다. 대개는 목표나 방향 설정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여기에는 자기진단의 부재도 크게 한몫한다. A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막연히 과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자기 장·단점에 대한 분석이나 목표 진로가 명확하지 않았고 그저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에만 억눌려 있었다. 또한 학교, 학원, 과외, 인강 등 언제나 선생님들께 둘러싸여 있었지만 문제풀이 이외의 다른 고민들에 대해서는 막상 도움 받기가 여의찮았다. 이른바 ‘큰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조언이 아쉬웠던 셈이다.
학생에겐 어렵지만 어른에겐 쉬운 것
친구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맡았던 신화 속 원조 ‘멘토(르)’는 그의 제자에게 교사이자 상담자이며 아버지이자 친구의 역할까지 함께 해줬다. 이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던 텔레마코스가 당당하고 용감한 젊은이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현실 속에서 이런 역할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 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 설정이라도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수학이나 영어 멘토, 내신이나 수능 멘토는 조금만 노력하면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소극적인 모습을 적극적인 모습으로, 수동적인 자세를 능동적인 자세로 바꿔줄 멘토 역할은 과연 누가 하고 있는 것일까? 학종과 같은 입시 준비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적성과 진로, 더 나아가 삶의 목표에 대해 고민할 방법과 그 방향 설정을 도와줄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직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수험생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역할자’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 또는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이라고 못해 줄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개별 문제 하나를 풀어주기보다 학생이 처한 전체 상황을 조망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학생의 필요나 변화에 따라 유기적으로 반응해 줄 조언자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거창한 이야기 같지만 학창 시절을 보냈던 어른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갖고 노력해 도울 수 있는 일이다. 때때로 아이들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 어른들에겐 매우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대화와 공감은 필수 불가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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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형의 진학 이야기] 우리 아이에겐 멘토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