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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다가왔다. 고3 수험생들에겐 사실상의 마지막 내신 만회 기회다. 내신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수시가 시작된다. 학생부종합전형, 학생부교과전형, 특기자전형, 논술, 적성고사 등 크게 다섯 종류의 전형을 통해 최대 6번의 지원이 가능하지만 막상 원서를 쓰려 하면 만만한 전형이 하나도 없다. 일찍부터 한두 개 전형에 전략적으로 몰입해온 수험생도 있지만 상당수의 평범한 고3들은 오로지 ‘성적바라기’로 지난 고교 생활을 버텨왔을 뿐이다. 문제는 수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내신이 뜻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그나마 없었던 대입 전략이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만다는 점이다. 특히 중상위권 수험생들의 학종 도전 여부와 지원 전략은 이 시기 가장 큰 고민거리 중의 하나다. 실제 이런 고민에 빠진 수험생 사례를 통해 남은 기간 학종 대비 전략에 대해 알아봤다.
2년 반, 내신에만 매달렸는데...
경기도 일반고에 재학중인 A양은 성실한 고3이다. 1~2학년 내신은 평균 2등급 중반대로 비교적 나쁘지 않았다. 구체적인 진로 계획이나 목표 대학은 따로 없었지만 내신을 조금만 더 끌어올리면 상위권대 진입이 가능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에 게으름 없이 공부했다. 새벽 2~3시 넘어 취침은 예사였고 특히 시험 기간에는 계획을 지키기 위해 철저한 자기 관리에 주력했다. 그야말로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한 고교 생활이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성적’에만 전념한 생활이었다. 소폭이긴 하지만 1학년 때보다 2학년 성적이 다소 나아지는 상승 추세도 보였다. 이런 흐름이 3학년 1학기까지 계속된다면 나름 선전한 내신으로 평가받을 만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중간고사 성적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아직 기말고사가 남았지만 이대로라면 일부 과목은 4등급까지 내려갈 가능성도 있었다. 1~2학년 때보다 더 열심히 했음에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심지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탐구 과목에서 낭패를 본 것은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이었다. 모의고사 또한 재수생 일부가 유입된 6월에는 고전을 면치 못해 4월보다 다소 하락했다.
수시 전형의 흐름을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내신에만 올인(?)했던 A양. 교과 성적을 올리기만도 벅찼기에 동아리, 독서, 수상실적 등 기타 활동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했다. 얼마 전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도 수시보다는 정시에 집중하라는 입시 전략을 추천 받았다. 그간 학생부 관리에 특별한 신경을 못써왔던 만큼 남은 기간 자소서·면접 등에 괜한 노력을 분산시키기보다는 수능에 집중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막상 여섯 장의 수시 카드를 포기하자니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제부터라도 논술을 준비해야 할지 A양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는 고교 내내 오로지 ‘시험공부’에만 매진해온 우리나라 대다수 고3 수험생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내신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생각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 때, 남은 기간 A양이 할 수 있는 선택과 노력은 과연 무엇일까?
학종, 계륵일까 기회일까?
A양에게 가장 큰 고민은 학생부종합전형이다. 자신의 눈높이에 둔 대학들 대부분이 수시 전형에서 학종을 중심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논술 또한 아직은 비중 있게 선발하는 곳이 많지만 높은 경쟁률이 부담스럽다. 결국 학종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런데 결심과 동시에 2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첫째는 관리되지 않은 학생부이고 둘째는 시작부터가 막막한 자소서 작성이다. 기말고사를 앞둔 이 시기의 학생부 보완은 어차피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만큼 차라리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자소서는 달랐다. 부실한 학생부를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밀려왔다. 일찍부터 학종을 준비해온 주변 친구들의 진척된 자소서도 신경 쓰였다. 무엇을 써야 할지도 걱정이지만 더 큰 고민은 시간의 할애였다. 아직은 정시에서의 선전 가능성을 더 기대하기에, 담임선생님의 충고처럼 자소서 작성 등에 쏟는 노력이 수능 점수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A양이 하고 있는 고민의 대부분은 학종에 대한 몇 가지 오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첫 번째는 학생부와 자소서를 관리와 작위(作爲)의 대상으로 본 탓이다. 학종에서 자기 역량의 확대나 포장을 의도한다면 당연히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기록된 학생부 내용을 토대로 고교 생활을 집약하고 정리해보는 과정이라면 의외로 큰 부담 없는 준비도 가능하다. 물론 기본 전제는 지난 학교 생활에 대한 진정성과 자긍심이다. A양은 누가 보더라도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었지만 수상실적, 임원활동, 동아리활동 등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학종 부적격자’로 단정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양의 지난 고교 생활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부신 장면이 적지 않았다. 타고난 예체능 자질로 학교의 다양한 행사에서 활약했고 꾸준한 봉사활동은 200시간에 육박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공부했던 열정과 눈물이 있었다. 그것이 소논문이나 수상실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무의미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학종은 여러 명의 입학사정관들이 각각의 대학에서 정한 기준에 맞춰 다양한 인재들을 찾는 과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갈수록 진화되어가는 사정관들의 눈높이에는 언제나 참신하고 진실한 이야기들이 그립다. 전략적으로 관리된 학생부나 잘 기획된 틀에 박힌 자소서가 이제는 식상해보일 때도 많아졌다. 때문에 자기만의 개성과 진정성으로 담백하게 접근한 수험생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생활에 충실했고 지난 3년간 무언가를 위해 노력했다면 학종은 기회로 다가올 확률이 높다. 기말고사 이후 투박하지만 진솔하게 써 내려갈 A양의 ‘난생처음’ 자소서가 은근히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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