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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인 입시 변화를 앞둔 학생과 학부모들의 ‘바닥민심’이 어지럽다. 표면적으로는 잦은 제도 변화와 평가에 대한 불신, 사교육 피로도가 원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불확실한 미래 비전과 자기 경쟁력에 대한 의심이 더 큰 문제다. 이러한 불안감은 진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단순한 ‘전략’의 문제로 격하시키는 부작용도 낳는다. 제도가 혼란스러울수록 전체 그림을 보고 자기만의 실력을 쌓아가는 뚝심과 지혜가 절실하다.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아도 과거와 현재의 입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흐름이 보이고 그 속에서 자신이 추구해야 할 진짜 경쟁력도 윤곽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곧 적용될 새 교육과정과 2021학년도 이후의 대학 가는 길 앞에서 수험생들이 꼭 확인해야 할 진학 이정표 몇 개를 미리 읽어봤다.
‘상대평가 시대’의 뒤안길
새 정부의 구체적인 입시 정책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대선 공약 등을 통해 드러난 방향성은 명확하다. 상대평가 시대의 종언이 그 핵심이다. 시행 시기에 완급 조절이 있겠지만 내신도 수능도 절대평가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다. 많은 입시전문가와 학교 관계자들이 급진적(?) 변화에 대한 우려와 기대를 쏟아내고 있지만 실상은 오래된 흐름이고 어느 정도 예견된 변화이다. 절대평가제는 「2009개정교육과정」부터 강조된 ‘창의·인성 교육’의 필연적 귀결이다. 2011년 12월 당시 교과부가 발표한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에도 구체적인 절대평가 도입 방안이 이미 언급된 바 있다. 2012학년도 중학교 1학년 학생부터 시작된 중학교 내신 절대평가제는 아직까지 이어져 고교 입시에 실제 적용되고 있다. 해당 방안에는 2014학년도부터 고교 내신의 절대평가 적용도 함께 포함되었으나 현실 여건에 부딪혀 두 차례 유예된 상태였다. 새 정부가 그 돌파구로 삼은 것은 고교학점제다. 학생마다 각자 원하는 과목을 수강 신청해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감으로써 절대평가 적용의 현실성과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고교학점제 또한 완전히 새로운 정책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추진해왔던 교과교실제나 집중이수제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교육 틀 안에 모두 포함 되는 같은 색깔의 정책들이다.
해결해야 할 여러 난제들이 있지만 지필고사를 중심으로 한 일제평가, 정량평가의 힘을 빼고 과정평가, 정성평가에 더욱 힘을 싣는 모습은 역력하다. 어찌 보면 최근의 대입 변화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향이다. 수능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2017학년도 대입부터 한국사 절대평가가 적용됐고 올해는 영어 절대평가 첫 시행이 예정되었다. 애초 절대평가 도입의 목적인 ‘과잉 경쟁 방지’와 ‘실질 실력 향상’은 새 정부의 교육철학과도 어긋나지 않아 절대평가의 확대는 장기적으로 불가피할 전망이다. 세부적인 적용 방안과 범위, 시행 시기에 따라 수험생 개개인이 피부로 느끼는 충격은 다를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예측과 대비가 가능한 변화로 볼 수 있다.
변하지 않는 두 가지 경쟁력
모두가 형식 변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 변화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교육과 미래 사회가 추구하는 인재상이 무엇이냐가 문제이다. 그 내용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2015개정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이다. 해당 교육과정은 2018년 중·고교 신입생부터 본격 적용되어 2021학년도 대입 정책의 근간을 이룰 예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창의융합형’ 인재다. 내신반영비율이나 비교과스펙, 수능최저학력기준 등에 더 민감한 수험생 입장에서는 매우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인재상이다. 이런 인재가 갖춰야 할 역량으로 제시된 여섯 가지는 그나마 좀 더 구체적이다. ‘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또한 실제 입시 준비에 와 닿지는 않지만 정량평가가 불가능한 요소들이 다수 포함된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다행히 고교학점제·절대평가제로 대표되는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2015개정교육과정」의 공통분모는 비교적 뚜렷하다. 양쪽 모두 획일화된 기준에서의 경쟁·순위·점수보다는 다양한 의미에서의 협력·개성·독창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지금도 강조되고 있는 ‘가치관 중심의 관심 분야 설정’과 ‘자기주도적인 학습 활동’은 그 중요성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진로 탐색 역량과 문제풀이 이상의 탐구 활동을 다가올 입시에서의 핵심 경쟁력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고교학점제에서의 수강 과목 선택은 그 조합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로 평가될 수 있다. 진로에 대한 자신의 명확한 로드맵을 요구하는 정책이다. 절대평가제로 약화되는 점수 변별력은 학생부 등 제출서류에 기재되는 다양한 활동들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스스로 계획을 세워 능동적으로 공부하고 활동하는 것만이 다가올 입시에서의 유일한 정공법인 셈이다.
이런 변화를 앞둔 2017년 현재의 고1 학생 중에는 자퇴 후 수능 ‘올인’ 전략을 고민하는 수험생들도 적지 않다. 복잡하고 불가역적인 학생부 관리 부담과 이른바 ‘2020 수능 재수불가론’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고민해야 할 것은 미래 사회가 원하는 인재 역량에 자신이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다가가고 있느냐이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그것이 높은 수능 점수의 획득이라면 나무랄 수 없는 선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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