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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게임이나 문자 대화, SNS 등에 몰두했다가 글을 읽기가 힘들어진 한 학생의 사례를 알려드리려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두 해가 지났고 다시 수능 준비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대입 모의고사 성적은 5등급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와 이후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고, '문자만 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핸드폰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세여서 그런지 지금 인상은 많이 차분하고 진지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먼저 만나기 전에 저에게 보낸 쪽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학생 :
문과구요 다른 과목은 이번 수능을 준비하면서 공부를 거의 처음 해보는 거라 성적이 많이 낮습니다. ㅜㅜ 국어는...정보가 많은 지문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거나 손도 못대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다른 비문학 지문들은 문단간의 호응과 흐름을 나름 파악하며 읽는데 과학 지문은 그게 안되다 보니 읽고 나면 머릿속엔 마지막 문단만 남아 있어서 문제 풀 땐 항상 다시 지문으로 돌아가서 하나하나씩 다시 읽고 찾아내는 식으로 풉니다.
문학은 해석자체가 잘 되지 않아서 선지를 읽으면서 파악하는데 이것도 선지에 휘둘려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해석으로 문제를 풀구요ㅜㅜ 문제에서 뭘 묻는지 제대로 파악을 못해서 같은 지문, 선지, 발문을 몇 번이고 다시 읽습니다. 시간도 많이 뺏길 뿐만 아니라 실수도 많이 합니다.
위 학생은 본인도 몰랐지만 글을 읽을 때 시선이 위쪽을 바라보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자조합의 시각적인 정보를 받아들여서 언어 정보로 해석하는 과정이 원활하지가 않았습니다. 예전에 눈동자의 움직임을 적외선 카메라와 컴퓨터로 기록하는 실험을 할 때 글을 매우 잘 읽는 사람에 비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눈동자가 문장 위쪽에 있는 경향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의미가 원활하게 떠오를 수 있도록 글 중심에서 시각 정보를 정확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읽는 훈련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시선이 정확히 글줄의 중심에 오도록 조정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많이 읽게 했습니다. 한편으로 읽기에 대한 자신감이 매우 떨어져 있어서 위축된 마음으로 글을 대하게 되었으므로 자신이 읽을 것을 자신이 직접 결정하고 가급적 흥미를 느끼는 것을 읽게 하여 ‘주도적 읽기’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신문을 펼쳐서 마음이 가는 기사를 읽기 시작하고 그 다음으로 마음이 끌리는 기사를 읽고, 이렇게 기사를 모두 읽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글자를 제대로 보고 글자의 소리값을 불러내는 작업을 하도록 기사를 소리내서 읽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답장을 받았습니다.
학생 :
안녕하세요~
덕분에 너무나 많은걸 알고 깨닫고 배워갔습니다. 글 읽는게 단순히 눈 똑바로 뜨고 정신만 똑바로 차려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 안에서의 단어 하나하나에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고 흐름이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근본적인 저의 문제점을 알게 되어 좌절은커녕 오히려 너무너무 기쁩니다. 단순히 수능이 아니라 저의 생활에 있어서 예전보다 나은 삶을 살고 좀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로 정말로 행복합니다.
조언해 주신 대로 글을 소리 내어 읽고 있는데 어제는 시간이 너무 늦어 신문을 3기사만 보고 잠을 잤고 오늘은 기사21지문(3장)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글의 위쪽을 보며 읽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의식하며 글자의 중간을 보면서 읽었습니다.
필자 :
쪽지 보내줘서 고맙네요. 곧바로 열심히 잘 했어요. 분량은 충분한 것 같아요. 만약 3장 정도를 못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매일 조금이라도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읽는 것의 목적과 기대 효과는 여러가지지만 당사자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소리내어 읽다가 가끔씩 눈으로 읽으려 했을 때 눈이 자연스럽게 글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고 내용이 편안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입니다. 늘 글을 조급하지 않게 읽으려 하고 마치 체질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해보세요.
문장을 읽는다는 건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1. 글자를 본다
2. 글자의 소리값을 떠올린다
3. 몇 글자의 소리값을 모아서 단어와 연결시킨다
4. 단어의 의미를 떠올린다
5. 단어의 통사적 의미(격)와 상황에 따른 의미를 떠올린다
6. 단어의 적절한 의미(통사론적, 화용론적)를 파악하고 문장 의미를 구성한다.
위 학생이 어려워하는 것은 위의 모든 것 중에서 특히 1과 2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3이후의 것을 잘 하지 못합니다. 단어의 모든 글자를 소리값으로 변환시킨 다음 어떤 단어인지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단어 중에서 몇 글자만을 보고 어떤 단어인지를 파악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글자를 봐야 하고, 본 글자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단어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글자를 제대로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는 단어라 하더라도 말로 들은 경험은 많되(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부족하겠지만) 글로 만난 경험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글을 보면서 단어를 인식하는 능력도 늦지만 어떤 단어인지 제대로 보지를 않고 있습니다. (악순환이지요. 제대로 보지 않으면 인식하는 능력도 부족해집니다)
문자로 대화하는 주제가 얼마나 다양할까요? 그런 주제를 다루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은 얼마나 다양할까요? 즉, 문자와 카톡으로 쓰고 읽는 표현은 얼마나 다양할까요? 충분한 독서와 충분한 학습에서 접하는 단어와 표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아는 단어의 양이 적고, 아는 단어를 경험한 빈도수도 적습니다. 그래서 아는 단어라도 눈으로 읽는 것이 더디고(매우 미세한 차이지만) 그 단어를 읽어낸 다음 의미를 생각하기도 더딥니다. 그리고 이런 미세한 더딤이 문장의 의미를 마음속에 구성하는 데 실패하게 만듭니다. 참 ‘미세한’ 문제이지만 그만큼 남들은 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자나 컴퓨터 게임에 시간을 바친 학생들은 언어 이해 및 산출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해집니다. 만약 ‘당신의 숨쉬기는 당신의 건강을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이 학생에게 준 방법은 특별히 한 사람의 문제에 맞춘 것이고 당사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일 것이라 판단하셔서 자녀에게 신문을 보라, 읽으라 하시면 원하는 결과(반응)를 얻지 못하실 수 있습니다.
글 이해를 하기 위해 잘 보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시선이 글에 닿는 위치가 과도한 문자나 SNS, 게임 등에 의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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