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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생각하는 과정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사진을 가져와서 그 사진 속의 한 남자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나에게는 형제도, 자매도 없다. 이 남자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의 아들이다”
일단 ‘사진 속의 남자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을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지만 남자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누군지를 설명하는 말 ‘내 아버지의 아들’이 생각하기에 부담을 줍니다. ‘내 아버지의 아들’은 그저 자신이거나 자신의 형제자매인데 ‘이 남자의 아버지’라는 어렵지 않은 말을 같이 생각하자니 이건 마치 왼손으로 찻잔이 떨어지지 않도록 찻잔을 조심스레 들고 있으면서 오른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티스푼을 주워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말과 ‘나에게는 형제도, 자매도 없다’를 합하면 내 아버지의 아들은 오직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이 남자의 아버지’는 사진을 가져온 사람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사진 속 남자는 자신의 아들입니다.
위의 퀴즈는 추론을 마치 능숙하게 저글링을 하듯 할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공으로 저글링을 할 때 시선은 공 하나만을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던져 올리는 공이 공중에서 정점에 도달하는 위치 정도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공이 정점에 도달하기 전, 후의 방향과 속도를 보고 시선을 벗어났을 때 어느 위치에 있을지 기계적으로 추측하고 손을 갖다 놓습니다. 손에 공이 닿으면 잡고, 그 공이 도달했던 정점의 위치로 적절한 힘을 주어 앞 공과 일정한 시간 간격 사이를 유지하도록 던져 올립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렇게 던지면 이렇게 공이 올라가고 여기로 손을 내밀고 있으면 공이 내려오겠지라는 예상이 모여 원활하게 돌아가는 공과 손의 회전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머릿속에서 최고 정점, 낙하 속도와 지점 등을 예상하는 것은 글을 읽으며 단어의 의미, 추가적인 지식, 비추어 생각할 수 있는 경험 등을 연상하고 이것들을 서로 통합하는 것과 같습니다. 간단히 시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는 일반적인 진술을 이해하는 심리적 과정을 확연히 보여줍니다. 유치환 시인의 <깃발>입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첫 행을 읽고 ‘소리없는 아우성은 뭘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저 ‘뭘까?’에서 그치지 않고 ‘말이 안되잖아...’라는 생각을 자각하셨다면 매우 바람직한 반응입니다. 어떤 점에서 말이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아우성’이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비롯됩니다. 아우성의 의미 ‘떠들썩하게 기세를 올려 지르는 소리’를 연상했기 때문에 ‘소리없는 소리’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침착하게 ‘소리’에만 집중하지 말고 ‘떠들썩하게 기세를 올려 지르는’이라는 의미를 잠시 동안이라도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마지막 행에서 ‘노스텔지어’의 의미와 만나 무엇이 그렇게 떠들썩한 기세를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향수 즉, 과거에 대한 동경, 회고의 정이 아우성치듯 강렬하지만 고요하다’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행의 ‘흔드는’은 ‘아우성치는듯한 노스텔지어의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설명적인 글을 이해하는 과정도 시의 감상 과정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시는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멀리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진술을 쉽다고 생각없이 또는 문자 그대로 읽으려 해서 올바르게 이해하는 과정을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창훈 | 서울대 인문대학원 협동과정 인지과학전공 이학석사/리딩 &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전 을지대학교 외래교수 eganet@naver.com
[조창훈의 독서 컨설팅 ‘심리학이 밝혀주는 독해력의 비밀’] 독해의 심리적 과정(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