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사 홍성수의 “바른 공부”] 내가 공부를 제일 잘하는데, 내가 제일 열심히 한다
기사입력 2020.03.02 07:00
  •  “독서실에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를 한다. 참 웃기는 일이었다. 분명 내가 제일 공부를 잘하는데, 내가 제일 열심히 한다.” -서울대 의예과 수석합격자의 글 중-
  • 얼마 전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읽었던 문구다. 그 출처를 찾고 싶었지만 인터넷만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저런 문구가 실제로 서울대 의예과 수석합격자의 글 중에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누군가가 그냥 꾸며낸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누군가 저런 생각을 실제로 했을 법하다.’ 라고 생각하고, 아마도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한 학생들 중 상당수는 가장 마지막까지 공부하는 사람들이었지 않았을까 라고도 생각한다.

    최근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코비 브라이언트는 NBA 우승을 5차례 하고, 올스타 팀에 무려 18회나 뽑힐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뽐낸 선수였다. 그런데 이 코비 브라이언트가 엄청난 노력파였다고 한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농구 전설인 마이클 조던을 모두 지도했던 필 잭슨 감독은 ‘노력(work ethic)’에 관해서는 코비가 조던을 능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대 의예과 수석합격자의 말처럼 인터넷에 떠도는 코비의 훈련량을 살펴보면 새벽 4시 기상 이후 트랙운동을 하고, 5시 30분부터 체육관 내 각각 5개의 장소에서 200개씩의 슛을 던지고, 또 같은 장소에서 페이드어웨이슛을 100개씩을 던졌다고 한다. (들어가는 것만 카운트했다고 한다.) 여기 까지가 코비의 ‘기상 훈련’이다. 이후에 팀 훈련을 하고, 팀 훈련을 마치고 나면 다시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떠도는 훈련량일 뿐이야, 말이 돼?’ 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동료 선수들이나 구단 직원들의 코멘트가 엄청나게 많다.

    그러니까, 이 글을 보는 학생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고가 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고 원하는 대학에도 갈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 해보려 했는지를 다시 짚어볼 필요는 있다.

    얼마 전 올해 고2가 될 학생들을 상담했었다. 학생들은 모두 다 높은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누구나 꿈꿀 만한 대학들을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럼 지금 너가 목표하는 데 있어서 현재 가장 부족한 게 어떤 것인 것 같아?” 라고 물었을 때에는, 단 한 명도 제외하지 않고 모두 “성적이요.” 라는 대답을 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랬다. 성적 외 다른 활동들 중에도 부족한 부분들이 보였지만, 가장 부족한 부분은 성적인 것 같았다. “그래, 그렇구나. 그럼 어때, 왜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니?”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답이 나왔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냥 조금만 해도 성적이 잘 나와서, 그런 습관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서 공부하다 보니까, 공부량이 충분치 않았던 것 같아요.”, “여자 친구가 생겨서 공부에 조금 소홀했던 것 같아요.” 여러가지 답이었지만, 결국은 공부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식으로 귀결되었다.

    아마, 필자가 상담한 학생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물론 어떤 학생은 스스로 만족할 만큼 노력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새벽 4시부터 공부해야 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공부를 한다면, 성적 역시 이를 뒤 따라올 가능성이 높다. 설혹 다음 시험에서 또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에도 그저 ‘열심히 안 해서 그렇지 뭐.’라는 결론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에 좀 더 많이 공부하면 돼.’ 라는 수준의 해결책에 머무르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찾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나 당연한 말이어서 미안한 말이지만, 열심히 공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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