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주의 열정스토리] 학생부종합전형 백서 Ⅰ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11.30 10:33
  • 미국의 SAT는 독해와 작문 수학 각 800점씩 2400점 만점인 SAT1과 우리의 탐구영역에 해당하는 SAT2로 나뉘고 대부분의 학생은 각 과목당 800점 만점인 SAT2를 2-3과목 정도 치른다.

    모두 SAT나 ACT만 알고 있지만 미국 대학전형은 모두 입학사정관제가 기본이고 우리의 수능에 해당하는 SAT성적 하나를 정량화해서 대학에 지원하는 제도는 없고, 학생의 내신성적인 GPA와 SAT성적 및 AP점수에 더하여(Numerical Index), 학생의 비교과 활동을 자기소개서 추천서는 물론 학생의 외부 수상실적(Personal Rating)까지 모두 다 그대로 반영해서 사정 평가한다.

    스탠퍼드나 하버드는 SAT1 기준 2400-2200점 정도면 합격권이지만, 2400점만점이어도 의미있는 활동이 없으면 불합격되고, 그보다 낮은 2200점이라도 전공과 적합한 비교과활동으로 평가받으면 합격한다.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도 마찬가지.

  • 미국정부는 우리나라 교육부처럼 학생부 작성 항목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지시하지도 않거니와, 모든 전형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 물론 대학당국도 50여페이지나 되는 요강을 만들거나 선발방법을 명시할리 없다. 합격자는 개인 메일로 합격을 통보받는데 그때 왜 자신이 합격되었는지 입학사정관이 칭찬겸 코멘트 해줄 뿐이다. 아무튼 미국 5AT도 2016 년부터 변경되서 1600점 만점으로 작문이 선택이 된다고 한다.

    미국도 상위권 입시는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지만 전 국민이 목숨 걸지는 않는다. 그것은 서글프게도 역사와 경제 구조와 그 사회의 문화와도 관계가 있으니 간단하게 이렇다 저렇다 쉽게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과거의 DNA를 바꾸자

    대대로 하도 가난하게 살아서 대학에 가는 것만이 이 사회에서 명함 내밀고 살아갈 수 있는 입신양명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온 우리 국민의 DNA (우골탑으로 상징되는)는 지금도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입시학원의 캐치프레이즈)”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이 마치 우리 자식의 미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가진 자로부터 기부받아 수백명의 학생을 ‘학자금 대출’이나 ‘돼지갈비집’ 아르바이트에서 해방시켜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기여입학제’도 반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정함’에 대한 집착은 ‘대학입학’에선, 아니 특목자사고, 아니 국제중학교 입시에서 나타났던 재벌자녀에 대한 응징에서도 증명된다. 아직도 대학이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이자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국가로 하여금 대입전형을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선거철 당선을 좌우하는 표밭인 서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매 정권마다 벗어나지 못한 정치인의 포퓰리즘이다. 수월성 교육과 보편적 교육의 대립은 진보와 보수의 자유와 평등 무엇이 우선인가 하는 케케묵은 논쟁의 연속선 상에 있다. 특목고나 대학의 특기자 전형을 반대하는 논리만큼이나 보수 정권의 교육정책 또한 정체성을 상실했다. 모순이다. 무슨 말이냐고?

    수월성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엘리트가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이나 진보보수정권을 막론하고 공통된 생각일 수 있다. 물론 진보진영에서는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정권도 서민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사교육’적 요소나 ‘귀족’에게 우선권 특혜를 줄 수는 없다는 강박관념에 매여 있다. 그게 모순을 만든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부모들은 공대나 의대 일부를 제외하고, 특히 문과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소질이나 꿈과는 상관없이 (아니..스무살까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런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국가도 아니었으니까) 부모가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자신의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 그나마 70년대엔 본고사라도 있어서 예비고사를 거쳐 대학이 자신이 원하는 학생을 비롯 점수로나마 평가해 선발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퇴보한 선발방식이었다.

    IMF를 겪기전까지 우리 사회는 성장률이 10%가까이 되는 아시아의 4마리 용 중에 하나였고, 일자리 수요가 대학졸업자보다 훨씬 많은 사회였다. 학과에 상관없이 대학에 진학해 OJT를 돌고, 몇 개월씩 수습교육을 받고 투입되는 그런 여유있는 사회로 기록된다.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부모는 왠지 죄를 진 것 같고, 월급은 물론 사회의 열등한 낙오자로서 심지어 결혼할 때에도 여기저기서 ‘대학도 못 나왔어?’라는 눈총을 받게 되는 그런 사회였기 때문이다.

  • 대학은 명확한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학업역량과 진로관련 활동을 열정과 꾸준함으로 노력한 사람을 서류와 면접으로 평가해 선발한다. 대학도, 고등학교도 서류와 면접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삼성을 비롯한 대학이, 구글같은 외국기업이, 방송사같은 언론기관이 모두 더 이상 시험이 아니라 서류와 면접으로 인재를 선발하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학생부종합전형이 교내활동 즉, 동아리활동이나 봉사활동, 자기주도학습을 활성화시키고 학교를 변화시키고 있고, 이러한 변혁은 시간을 두고 차츰 제도로서 정착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전형의 특성과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비교과 활동목록에 외부활동이나 자기주도학습마저도 학생부에 기재할 수 없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끼를 바탕으로 설정된 진로를 위해 자기주도적으로 꾸준히 노력해 온 학생을 선발하겠다면서, 공인어학점수나 외부수상실적은 기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사교육을 받거나 돈 있는 집의 자녀만 어학점수가 나오고 외부대회에서 수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선교사를 따라 다니며 영어를 배운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나올 수 없다. 또  학원을 다녀서 올린 내신이나 수능점수는 국가가 감시하여 무효로 해야 할 것이다.

    교육부를 제외한 정부부처 예산으로 자기주도적인 학생을 선발해 활동하게 하는 대회나 캠프 활동도 학생부는 물론, 자소서에 적을 수 없게 하는 나라. 심지어 교육부가 밝힌 ‘학생부기재가능’한 기관인 도서관 독서와 토론 프로그램 역시 학교장이 단체로 승인해야만 하고, 실제 활동한 학생에게 학교에서는 도서관 공문을 만들어 오라고 하는 나라.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무료로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대 교수를 불러 학술토론과 강연을 할 때 지적호기심의 열정에 넘쳐 수강을 하고 열띤 질문을 한 학생들의 활동을 어떤 학교는 기재하고, 어떤 학교는 기재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가? 제도는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정치인도 교사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학생의 학업역량은 물론 인성과 자기주도성, 전공적합성까지 키울 수 있는 전형을 만들어 놓고도 언론과 국민의 눈치를 본다. 

    이처럼 사교육기관이 아니라, 큰 돈을 들인 것이 아니라 신문을 읽고, 인터넷을 통해 영어를 익히고, 논문을 보고, 이렇게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고 열심히 활동한 학생의 노력조차도 평가받을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교육이 아니다.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요, 학생을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을 장님으로 만들어 코끼리 뒷다리 만지게 하는 꼴이다. 코끼리를 기둥이라고 오해하게 만드는 꼴이다. 

    이제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선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60년대 냉전시대 논리에 사로잡힌 정치인들과,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가난했던 과거의 DNA를 버리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끌려 다니고 있다.

    우리 아이가 지원할 수 있는 원서는 수시정시 9개 이내인데 전형이 복잡하다고?

    어떤 칼럼이나 뉴스에서는 대입이 복잡하다, 전형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형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199개 대학이 있기 때문에 많아 보인다. 우리 아이에게는 수시 6번, 정시 3번의 기회가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은 어차피 수시 6번, 정시 3번, 9개 이내다. 그런데도 2,000개 전형이라 헷갈린다고 아우성이다. 그 대학의 전형은 수시 4개 이내이고, 정부의 방침은 대학별고사의 축소 또는 폐지로 천명되고 있고, 고려대 논술폐지의 경우에서 보듯이 대학은 수시는 학생부, 정시는 수능 방침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빅마우스들은 교육정책의 전반을 모르면서 불공정하다느니, 전형이 복잡하다느니 이야기한다. 과연 그들은 다양성 시대를 만족시키는 전형의 의도를 알고나 있는지 안타깝다.

    - 12월 7일 월요일자에 ‘학생부종합전형 백서’시리즈가 이어집니다. 허락 없는 무단전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