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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이제 본격적인 수시 준비에 들어갈 시점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이하 종합전형)의 지원으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수험생들은 자기소개서 작성을 서둘러야 할 때이기도 하다. 종합전형에서 자기소개서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으나, 대입 자기소개서가 학생부에 자세하게 드러나지 않은 자신만의 장점을 소명할 좋은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이번 호에서는 자연계 수험생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 1번 문항 작성요령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대교협 자소서 1번 문항은 ‘학업능력의 향상 및 배우고 느낀 점’을 쓰는 란이다. 자기소개서 작성의 첫 걸음이니만큼 학생들로서는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큰 문항이기도 하다. 관찰 실험 등 교과 관련 활동이 많은 자연계 학생들이라면 소재가 풍부하니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글감 선택이나 구성을 힘들어 하기도 한다. 1번 문항에서는 수상실적이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등을 중심으로 교과 관련 활동을 훑어보면서 치열하게 공부했던 기억을 되살려 보는 것이 좋다.
다음은 필자가 지도한 자연계 학생들의 자소서 1번 문항 사례들이다. 자기소개서의 작성패턴이 너무 정형화되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대체적으로 수업에서 소재를 발굴하고 확장해나가는 경향을 띠고 있다. 자기소개서 강의를 하면서 필자가 강조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고교생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있다면 뭐니 해도 수업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수업현장에서 학생은 장차 공부에 필요한 소양을 갖추게 되고, 지적 성장을 이루어 나간다. 선생님의 가르침과 물음에서 새로운 앎을 깨우치고, 친구들과의 경쟁과 협업을 통하여 자극을 받고, 탐구심에 점화 플러그를 꼽게 된다. 1번 문항을 쓰기 어려워하는 자연계 수험생들에게 고한다.
“수업을 소재로 시작하여 디테일을 살려라”
# 서울대 치의예과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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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2를 배우면서 분자구조가 복잡할수록 엔트로피가 큰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교과서와 줌달의 일반화학에도 정확한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 않았는데, 물리시간에 기체분자 평균운동에너지와 온도 사이의 관계에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KE=3/2kT에서 3이 에너지 등분배 법칙에 따른 기체 분자의 자유도를 의미하고, 분자의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자유도가 커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자유도와 엔트로피 사이에 유사성이 있을 것 같아 하이탑을 찾아봤더니 볼츠만이 엔트로피를 확률적으로 정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분자구조가 복잡할수록 배열 가능한 경우의 수가 많아져 엔트로피가 커진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엔트로피를 확률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자유에너지도 계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엔트로피의 정의를 G=H-TS에 대입하여 자유에너지와 평형 상수간에 로그함수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질문 덕분에 대학 때 보던 책을 다시 보게 되셨다며 기특해 하셨고, 저도 시험에 국한된 공부가 아닌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공부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원리를 스스로 찾아보려는 저의 시도에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배움이 곧 즐거움이란 것을 체감했고, 덕분에 학업능력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서울대 산업공학과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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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미적분학을 공부하며 ‘절대 수렴하는 수열의 재배열 수열 또한 절대 수렴하며 그 수렴값은 같다.’라는 명제의 증명을 몰랐던 적이 있습니다. 수업교재인 ⌜00⌟에도 증명내용이 없어 질문을 했고, 선생님께서 토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하나의 수열을 재배열한 수열을 어떻게 표현하여야 하는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재배열 수열을 기존 수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하였고, 증명에서 쓰인 입실론-델타 방법에서 델타를 입실론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정의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같은 조 친구와 함께 증명을 완성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좀 더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스스로 공부하고 저의 생각을 덧붙여 리포트로 정리하거나, 재미있는 문제들도 풀어보는 적극적인 습관이 생겼습니다.
# 00대 의예과 사례
뇌과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교과를 유기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뇌과학 원서 'Neuroscience'를 읽고 영어 말하기 활동에 참여하여 뇌 구조와 기능에 대한 UCC를 제작하고 물리시간에 뇌영상 장치 MRI의 전자기 유도 원리를 조사하여 발표하는 등 관심을 점차 탐구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Neuroscience'를 접했을 때 생소했지만 꾸준히 2,3 쪽씩 읽고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등 카테고리 별로 분류한 후 모르는 단어들은 위키피디아 영어사전을 활용하여 뇌과학 용어정리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원문을 해석하는 과정은 고되었지만 새로운 지식을 더해간다는 생각에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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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을 탐구하기 위해 교과 공부를 하면서 학습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가 3년간 교과에서 좋은 결실을 거두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종환의 주간 교육통신 ‘입시 큐’] 자연계 대입 자기소개서, “수업을 소재로 디테일을 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