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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인문계 논술에 대한 선택과 이해를 돕기 위해, 논구술 전문가인 이정태 선생(이슈& 논술 . 대치이강학원 강사)의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 쓰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인터넷, 스마트폰이 바로 옆에 있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데 익숙한 요즈음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고문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는 것이다.
함께 ‘논’(論)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대학의 시초라는 영국 옥스포드에서도 처음 공부를 한 사람들은 수사들이었다. 수사집단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책읽고 토론하고 노동하고 하면서 본격적인 학문하는 집단이 형성된 것이다. 탈무드로 유명한 유태인들은 두 사람만 모여도 ‘왜(why)“를 가지고 토론하는 문화로 유명하다. 프랑스 고교생들은 철학수업을 2년 이상 들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나간다. 우리 교육은 그런 문화가 매우 약한 편이다.
물론 엄청난 교육열로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도 결코 뒤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입시 위주, 시험 위주의 경쟁만 우선시하는 학교 문화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생각의 씨앗을 키워나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학교 교사나 학부모들도 비슷하거나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해왔기 때문에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지만 그런 형태로 실천하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집에서 아이와 ‘정의’에 대해, 혹은 ‘삶의 의미’에 대해 잠깐이라도 얘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논술을 잘하는 학생이 되려면 어쩌면 보통 사람들이 정상적이라고 알고 있는 태도나 행동으로부터 ‘일탈’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학부모들은 그런 걸 두려워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것을 인생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몸과 마음이 커져버리고 어느덧 대학 준비를 해야 할 나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의 근육’이 현재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따로 점검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 글쓰기는 훈련임을 명심하라
결국 이것저것 많은 걸 따지더라도 논술시험은 글쓰기다. 물론 일기처럼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라 자신 또는 글쓴이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글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글 솜씨도 타고 나는 측면이 있다. 노래와 춤, 그림 솜씨 등과 마찬가지이다. 편견이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글을 잘 쓰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표현능력이 좀 더 빨리 계발되는 측면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여학생이 남학생들보다 생물학적으로 조금 일찍 성숙해지는 면과도 연관성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공격성을 가진 남성 호르몬이 넘치는 남자애들이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기를 바라는 게 오히려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보기도 한다.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개인적인 성향 상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논술에 좀 유리한 측면이 있다. 이들을 빼고는 일반 학생들이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것도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닌,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닌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글을 써내야 하는 건 더더욱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도 꾸준하게. 하다보면 늘게 되고 늘게 되면 재미도 붙게 되는 것이다.
몇 해 전 잡지에서 본 글이 기억난다. 캐나다에서 간 한 한국 학부모가 현지 초등학교에 자신의 아이를 보내고 감동받은 내용을 소개한 글이다. 1년 내내 자신의 아이가 써서 낸 글에 대해서 학기 초부터 학기말까지 변함없이 진정성 있게 읽고 수정해주고 코멘트를 일일이 달아주었다는 내용이었다. 1년 내내 누군가가 자신의 글을 진심으로 봐준다면 어느 누구나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에게 그런 환경은 제공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그렇게 되기까지 혼자 노력하라고 얘기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족이지만, 논술 능력은 대학입시로만 끝나지 않는다. 논술을 잘하게 되면, 즉 생각의 근육을 키워나갈 줄 알게 되면, 그건 대학 입학 이후에 학업을 수행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논술은 많은 생각을 자신의 바늘로 잘 짜서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생각을 ‘구조화’하는 작업이다. 100~200자 이내의 문자메시지로는 결코 할 수 없다. 대학에 가서 높은 수준의 배움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이다. 인생을 가치 있게 잘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기초기술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이 논술 시험의 진정한 존재이유이다.
[이종환의 주간 교육통신 ‘입시 큐’] 인문계 논술,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