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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부로 올해 자기소개서 수업을 마감했다. 일부 미완성인 학생들의 자기소개서 지도가 남아있긴 하지만 수강생 중 90% 이상의 대입자기소개서를 마무리했다. 수업과 상담 시간 이외 자기소개서 지도를 하다 보니, 자소서를 들여다보느라 밤을 꼬박 새운 것도 며칠 째다. 수험가에서 자기소개서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이유는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인증시험이나 대외 수상 실적을 거의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특기자 전형에서도 자기소개서에 대외 활동이나 실적은 쓸 수 있지만 증빙자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어, 자기소개서의 효율적인 작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 에피소드 하나- ‘부모님의 눈’으로 보지 마세요.
수년 전 일이다. 자기소개서 지도를 받던 학생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약간 흥분된 목소리였다. 그 학생의 꿈은 국회의원이었다. 그런데 자기소개서 진로계획 문항에 ‘로스쿨을 가서 검사가 된 후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써서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줬다. 로스쿨을 가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무슨 문제겠냐마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경로로 검사직을 택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어머님 왈 “ 검사를 한 후에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요지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 문제로 30분가량 설전이 오갔다. 전화기가 뜨거워질 무렵 먼저 말을 꺼냈다.
“어머님, 정 그렇게 쓰기를 원하신다면, 저는 오늘 부로 자소서 지도를 그만두겠습니다.”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다. 판검사 하다가 국회의원 하는 분들이 부지기수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막 대학을 들어가서 공부하겠다는 신입생이 검사가 된 후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인생 코스를 밟겠다고 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일일까?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조인의 최종 목표가 정치인이라고 공언하는 것을 반기는 교수는 몇이나 될까? 자기소개서 지도를 하다 보면, 학생이 써야 할 자기소개서 내용을 학부모가 일일이 간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 마음이야 백분 이해한다지만, 고3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어른의 눈으로 지켜보아왔던 세상이 판박이는 아닐 것이다. 지금도 혹시 아이의 자기 소개서를 보며 진땀을 흘리고 계실 학부모들께 드리는 말씀 하나.
“ 자기소개서만큼은 부모님의 눈으로 보지 마세요.”
# 에피소드 둘- 서울대 ‘웹진 아로리 자기소개서’ 유감
서울대 웹진 아로리는 입시생들에게는 고마운 존재다. 그동안 수험생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정보를 속 시원하게 공개해주었다. 수시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의 교내외 활동과 내신 성적, 자기소개서까지 투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입시 정보의 투명성에 일조했다.
그런데 아로리에 공개된 자기소개서를 보고 한숨만 나온다는 수험생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다양한 활동과 유려한 글쓰기에 기가 죽어, 오히려 보면 볼수록 힘만 빠진다고 하소연들이다. 웹진 아로리 1호에 비해, 2호에 나온 자기소개서들을 보면 필자가 보아도 ‘합격생들이 참 다양한 활동을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보통의 학생들로서는 시쳇말로 넘사벽(어마어마한 차이.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의 준말)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자기소개서는 지금의 대교협 자기소개서 양식의 원전이라 할 수 있다. 대교협이 2014학년도 서울대 자기소개서 양식 1번과 2번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공통양식 1번 문항에 ‘지적호기심’이라는 항목이 빠졌고, 문항별 자수만 각각 줄이는 것으로 조정되었을 뿐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꼭 서울대를 지망하는 수험생이 아니어도 아로리에 올린 자기소개서를 많이 참조하는 편이다. 입학사정관실의 애초의 의도와 달리 학생들은 ‘발군의 자기소개서’를 보고 좌절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 필자의 단기 처방은 서울대 일반전형에 합격한 1,670여명의 합격생 중에 3명 일 뿐이니 실망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상대적으로 평범한 합격생의 자소서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장기처방의 책임은 학생들에게 좌절감(?)의 원인을 제공한 웹진 아로리에 있는 듯하다. 자기소개서의 모범 샘플을 제공한다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학생들의 의욕을 꺾는다면 교육적으로도 그리 좋지 않을 성 싶다. 웹진 아로리에게 드리는 말씀 하나.
“평범한 학생들의 마음도 헤아려 주세요.”
[이종환의 주간 교육통신 ‘입시 큐’] 자기소개서 에피소드- ‘부모님의 눈’으로 보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