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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청소년과의 상담에서 매번 듣는 질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는 많이 하지만 공부의 의미는 잘 모른다. 우리와 다른 교육선진국 사이에 가장 차이 나는 지점 역시 이것이다. 우리 사회는 자라는 세대들에게 공부를 하라는 강요를 멈추지 않지만,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지혜로운 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어제까지 열심히 공부를 하던 친구도, 문득 이 ‘왜 공부를 하는가’ 하는 의문에 직면하면 쉬이 공부의욕이 꺾이고 마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알지 못하면, 어떤 일도 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이다.
빅터 프랭클은 생의 의미와 사랑이 결핍된 삶이 인간을 내적 방황이나 정신병, 자살충동으로 몰고 가는 근본문제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에도 지금 의미상실의 병이 만연해있다. 공부나 인생, 일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무의미성이나 목적상실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난 세기 대개 공부는 욕망이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되었다. 사회는 공부의 의미를 잃게 하는 강한 자기장을 형성해왔다.
돈이나 소비, 쾌락과 같은 물질적 만족이나 명예, 권력을 갖기 위한 방편으로 공부의 가치는 사물화 되었다. 우리 꼴이 이럴진대, 아이들에게, 청년들에게 너는 왜 공부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이냐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교육이 공공의 영역에서, 공동체의 토대로서 잘 보존되어왔다면 이런 역전을 조금이라도 막았을 텐데, 우리 공교육 역시 시류를 따라 너무나 경쟁적이고 도구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사태가 이러하니 어쩌면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왜 공부하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돈, 명예, 권력 따위를 얻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끊임없이 설득하지만, 이 낡고 유치한 설득에 그들은 강하게 반박한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기를 치지는 않더라도, 그 따위 것이라면 얼마든 얻을 수 있는 일인데, 사실 세상에 그런 자들이 널려있고, 왜 골치 아프게 공부 따위를 하라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진실을 구하는 학문에는 관심이 없고, 그때그때 필요한 일회용 지식이나 정보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가 잘 먹고 잘 살려면 꼭 공부를 해야 한다고 우겨본들, 잘 먹고 잘 살려면 당장 나가 쓸 만한 돈벌이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낫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또 어른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얻어야 그것이 더 쉬워진다고 말하더라도, 이미 세상에 그렇지 않는 사례들이 너무나 많아져버려 이 말에도 코웃음을 칠뿐이다.
이미 우리 자녀의 학구열을 지켜줄 보호막이 사라졌다면 부모라도 나서 바른 공부에 대해 대화하고 모색하며 온전한 학문의 의미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자문해보라, 단 한 번이라도 자녀에게 왜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지혜로운 답을 알려준 적이 있는지. 자녀의 어리석음만 탓할 게 아니라, 사는 데 급급해 어른으로써 책무를 다하지 못한 자신부터 되돌아보길 바란다.
나의 학업상담은 크게 네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우선 떨어진 마음근력을 치유하고, 두 번째 충분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고, 세 번째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고, 마지막으로 진정한 공부의 의미와 가치를 새기며, 공부에 정진하는 자세와 습관을 익혀나가는 법을 터득하는 단계를 밟는다. 오랫동안 청소년, 청년들과 상담해오며 나는 H.O.P.E 상담 프로그램을 정립했다.
H.O.P.E 상담 프로그램은 치유(Healing), 자성(자기성찰, Perception), 정향(定向, 진로모색, Orientation), 공부(Education)의 단계를 밟으며 이루어진다. 특히 여느 심리상담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철학상담을 원용해, 자성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H.O.P.E 상담만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심리상담과 철학상담, 독서치료를 융합한 통합적 상담 방식이다(자세한 내용은 2주 전 나의 칼럼을 참조하기 바란다). 바른 생각 없이 좋은 심성을 만들기 어렵고, 심성을 가다듬지 않으면서 온전한 사유를 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통섭과 융합의 시대에는 상담 역시 이렇게 총체성과 간학문성을 지향해야 한다.
자성은 공부 단계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공부에 대한 정당한 의미와 가치를 깨달아야 공부 열정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상담에서 내담 학생들과 다양한 치유서와 철학서를 함께 읽는다. 그 중에는 공부의 뜻과 가치를 새로이 새기는 책도 여러 권 있다.
우선 나는 거의 모든 학업상담에서 공부의 바른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퇴계 선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자신의 몸과 마음, 공부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는 경(敬)의 태도를 깨닫게 하는 데 주력한다. 이때 퇴계 이황의《자성록》은 좋은 전범일 것이다. 직접《자성록》을 읽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신창호 교수의《함양과 체찰》이나 퇴계연구가 김병일의《퇴계처럼》을 참조한다.
물론 세계적인 교육전문가인 켄 베인 교수의《최고의 공부》에서 거론하는 심층적 학습자(다른 목적이 아닌 학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학습)에 대해 설명하며 공부의 의미와 정도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중요한 상담의 일환이다.
공부만 열심히 하는, 성적만 좋지 자기성찰은 턱없이 부족한 모범생들을 만날 때면 미국의 문화비평가 윌리엄 데레저위츠가 지은《공부의 배신》이라는 책을 권한다. 이 책은 마치 양떼처럼 몰리며 단지 지식기술자들로 전락한 엘리트의 우울한 자화상을 다루고 있다. 또 좀 더 근본적인 탐색을 위해 대철학자 칼 야스퍼스의《대학의 이념》을 읽으며 정당한 학문의 위상과 가치에 대해 되짚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공부가 과연 자신의 삶 어디에 소용이 되는가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 한학자 정민 교수의《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나 사라 베이크웰의《어떻게 살 것인가》같은 책을 함께 읽기도 한다.《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정약용 선생의 50가지 공부 자세를 통해 공부의 정도를 배울 수 있고,《어떻게 살 것인가》는 대사상가 몽테뉴의 사유를 따라가며 철학적 성찰과 학문이 어떻게 인생에 접목되는지를 밀도 있게 다룬 책이다.
공부법에 문제가 있는 친구들에게는 저명한 심리학자 헨리 뢰디거의《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기본으로 하여,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T. 윌링햄의《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나 황농문 교수의《공부하는 힘》등과 같은 믿을 만한 공부법 서적으로 공부법을 되짚어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킨다.
공부의 대상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성찰해본다. 전공이나 취업시험 공부 같은 편향된 공부만 하는 ‘공부의 왜곡’에 대해 자성해보고,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철학, 사회현실, 인간의 정서, 인간관계, 행복의 조건에 대한 공부에도 힘을 쏟기를 당부하고 그 지침을 공유한다.
중용과 평형이 깨어지면, 공부 역시 허물어지고 만다. 온전한 공부여야 지속가능한 것이다.
우선 부모나 어른 세대부터 내 자녀가 세속적 성공에 필요한 단편적 공부에만 몰두하는 공부기계처럼 살 수 있으리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그런 공부는 늘 봐왔듯이 모래 위의 성채와 같다. 곧 무너지고 만다.
이런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나는 부모들과 윌리엄 데이먼의《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나 아리아나 허핑턴의《제3의 성공》을 함께 읽기도 한다. 세계적인 언론인이자 허핑턴포스트의 창립자인 아리아나 허핑턴은 한때 일중독자로 살다가 심각한 삶의 위기에 봉착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제3의 성공》을 저술했다. 이 책은 진정한 성공에 필요한 웰빙, 지혜, 경이, 베풂이 한데 합쳐진,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룬 성공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부모에게 바른 성공의 길에 대한 혜안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공부에 싫증을 느낀 자녀에게 공부의욕과 학구열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좀 더 근원적인 모색과 지지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 십대와 20대를 용감하게 견딜 수 있다. 부모, 교사, 학생 모두가 공부의 정도에 대한 지혜를 회복할 때 학문에 대한 열정은 사회 안에 다시 꽃필 수 있을 것이다.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공부의 의미를 알려주고 학습의욕을 높여주는 독서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