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독서치료, 소설치료, 그리고 시치료에 대한 오해와 진실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8.31 13:46
  • 내게 독서치료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항상 당부하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독서치료는 심리치료나 심리상담의 한 부분,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감동을 주는 소설이나 시, 치유서를 발견하고, 그 내용들을 공감적인 언어로 이해하고 또 상대에게 잘 소화해서 설명하는 일이 주가 되는 독서치료에서 심리치료나 심리상담이 차지하는 역할은 오히려 작은 편이다.

    심리학이나 심리상담의 분야가 작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둘이 서로 공유하는 교집합은 생각보다는 훨씬 비율이 적다는 뜻이다. 

    심리와 생각을 헤아리는 일이다보니 심리학이나 심리치료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지만, 그것으로는 단지 큰 그림의 한 귀퉁이만 칠한 것일 따름이다(아마 경영학에서 심리학이 차지하는 비율보다 적을 것이다. 독서치료에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문이라면 단연 철학이나 철학상담이다).

    독서치료를 공부함에 있어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인간의 정서를 움직이고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책의 힘이 무엇이고, 그 작동원리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다.

    오히려 내가 가장 요청하는 덕목은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이다. 그리고 책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어울릴 만한 책을 권할 수 있는 감식력이다.

    비근하게 남에게 감동을 주는 베스트셀러라도 내게는 전혀 울림이 되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미국에서 발달한 독서치료는 해당 심리문제에 적합한 치유서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데 공을 들이지만(그래서 자신이 깊이 읽어보지도 않은 책을 권하는 독서치료사들을 흔히 보아왔다), 나는 독서치료가 필요한 이에게서 충분히 사연과 마음의 상황을 전해 듣고, 풍부한 독서경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내담자에게 어울릴만한 책을 찾아줄 수 있는 능력이 더 우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권해서는 안 된다. 내가 충분히 그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함부로 책을 권하는 것은 부당하고 위험한 일이다.   

    치유의 힘이 있는 책에 대한 안목과 심리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합쳐져 독서치료는 완성될 수 있다.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영매처럼 책과 내담자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독서치료사가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나 문학적 감식력 없이 독서치료를 행하는 것은 눈을 가리고 코끼리를 더듬는 것과 마찬가지 일인 것이다.

    체계화하고 분류하길 좋아하는 현대인은 독서치료라는 유서 깊은 인류 전통을 어딘가에 귀속시키려는 충동을 멈추지 못하지만, 실상 내가 이것이다 라고 말한다고 쉬이 그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에 대한 보편타당한 정황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이런 책이 있다. 올 초 가장 발달한 영국의 독서치료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 하나 번역되었다. 알랭 드 보통과 로먼 크르즈나릭이 함께 영국 런던에 설립한 ‘인생학교’에서 소설치료사로 일하는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이다.《소설이 필요할 때The Novel Cure》라는 책이다. 책에는 “문학 애호가들은 지난 수세기 동안 의식적이든 아니든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소설을 읽었다”고 하며 소설치료의 힘을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좋은 삶의 등대 하나를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소설 읽기나 시 읽기와 같은 문학 감상은 거센 파도 앞의 메마른 모래성처럼 미소한 인간을 내적으로 가장 단단하게 해줄 정신의 안식과 통찰을 제공하는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마트폰 게임이나 SNS 유희 같은 것에 빠져, 현대인의 일상에서 영적 울림을 전하는 문학 감상의 경험과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세태이기 때문이다.

    실제 독서치료를 하겠다는 사람인데, 좋은 소설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을 만날 때도 빈번하다. 이러다보니 풀어야 할 일은 태산처럼 많다.

    그럴 때 책 몇 권을 더 적어준다.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 데이비드 미킥스의《느리게 읽기》,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의《리리딩》같은 책에서 우선 빼어난 소설이나 시의 목록을 구해보라고 조언한다. 모두 영문학자들이 쓴 책 읽기에 관한 책인데, 뛰어난 감식력으로 기술된 좋은 소설에 대한 평가와 목록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 문학가들이 엄선하고 그 내용을 요약한《절대지식 세계문학》에서는 믿을만한 명작 목록을 접할 수 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팡타그뤼엘》에서 시작해 인류가 낳은 세계적인 문학작품 166편이 잘 정돈되어 소개되어 있다. 나는 새로 나온 판형보다는 예전의《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 세계명작 편》을 더 좋아하지만 이 책은 도서관에서나 만날 수 있다. 이 책에는 일본 원서 그대로 226편의 목록은 모두 만날 수 있다. 편향되지 않은 선정목록에다 뛰어난 축소술을 가진 일본인의 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나는 독서치료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어려운 과제를 내줄 때가 많다. 여러분도 도전해보라. 시를 읽고 시를 쓰는 연습을 해보라는 것이다.

    꼭 시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내 경험상 시를 쓰고 함께 읽는 행위는, 즉 독서치료 모임에서 공감할 만한 주제를 가지고 함께 시를 쓴 후 함께 감상하며 공유하는 활동은 어떤 다른 문학적 실천보다 내적 평정을 빠르게 가져오는 방법이었다.

    성급하게 독서치료부터 배워보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좋은 소설들을 읽어 감식력을 키우고, 시를 읽고 쓰는 행위를 자기 삶에서 생활화하는 것이 먼저라고 조언한다. 기능적, 기술적, 도구적 목표나 기술보다는 진정한 ‘차오름’이 우선인 것이다.

    그 다음 그것들이 차례로 내면에 차올라 풍부한 정신성을 형성하게 되면,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에게, 혹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책 읽기를 권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문학이 시작된 이래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웃에게 행해왔던 독서치료라고 할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문학비평가라고 존경받는 해럴드 블룸은 인간에게 문학이나 책 일기가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징하게 피력한다.

    “책을 잘 읽는 유일한 방법은 없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있다. 정보는 무한히 널려 있다. 그런데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운이 좋다면 선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혼자이며 남의 도움 없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잘 읽는 것은 고독이 제공하는 크나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치유의 효과가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나 친구, 또는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속에 있는 타자성(他者性)을 일깨워준다. 상상에 의한 허구의 문학인 순문학은 타자성이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고독을 경감시켜 준다. 우리가 읽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정이 너무 취약하고, 위축되거나 사라지기 쉬우며, 공간과 시간과 불완전한 연민, 그리고 가정과 애정 생활의 온갖 슬픔으로 짓눌리기 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