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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지만, 스스로는 진심으로 자살을 결심했던 선애는 살아오면서 아무에게도 위로 받지 못했다고 했다, 친구든, 선생님이든, 심지어 부모에게조차.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상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슬프다고 했다.
집안 거실에서 과도를 들고 자살소동을 벌이고 나서야 부모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급히 상담센터를 수소문해서, 선애를 데리고 나를 찾았다.
남녀공학에 다녔던 선애는 고1때 남자친구 문제로 같은 학교 여학생들로부터 왕따를 겪으면서 우울증이 심해졌다. 고2가 되면서는 등교거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대인기피증도 심해졌다. 그럴수록 부모는 선애 편을 들지 않고, 선애의 잘못과 실수만 질책하고 비난했다.
선애의 말대로 선애 주변에는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선애 부모에게 선애의 마음과 그간의 행동에 대해 설명했다. 부모들이 미처 공감하고 알아봐주지 못했던 마음 속 상처와 아픔을 느낄 수 있도록.
애초 선애에게는 애착 문제가 있었다. 선애 부모는 바쁘기도 했지만, 아이를 어른스럽게 키우겠다는 생각에 잘 안아주지도, 따뜻한 대화를 건네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다.
생애 초반 민감기에 형성되는 애착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무척 중요한 원천이자 바탕이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따뜻한 부모를 만날 수 없는 것이 비정한 현실이다.
인구 중 상당수는 안정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고 불안정 애착이나 회피 애착을 형성한다(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긴 하나 성인 중 안정 애착인 경우는 60%가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심리문제는 생애 초기 형성되는 부모나 주변 양육자들과의 부정적 애착 관계에서 비롯된다.
선애의 유전적 특성도 한몫했다. 그녀는 거절이나 인정에 민감한 기질적 특성을 갖고 태어났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인정받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거나 자신을 거절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유전과 양육이 절묘하게 합쳐져 선애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눈에 띄게 높은 애정욕구를 갖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이미 남자친구를 사귀고 깊은 관계를 갖기 시작한 선애는 또래에게 늘 평판이 좋지 않았고, 그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기 일쑤였다. 부모 역시 선애의 그런 품행을 지적하며 비난하기 일쑤였다.
역설적이게도 선애가 사랑을 갈구하고 좇을수록 사랑과 온정은 삶에서 사라져가는 것이었다.
결국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 누구도 자신을 환대하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깊어졌고, 결국 자살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선애에겐 “괜찮아, 잘 될 거야.” 하는 한 마디면 족했다. 실제로 선애는 그 말을 듣고서 급격히 회복했다.
선애와 상담하며 요즘 사회의 메마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선애가 기억하는 사소한 에피소드들은 한결같이 무정한 현대인을 떠올리게 했다.
자식에게 성공과 성취만을 요구하는 부모, 함께 공부하는 급우들에게조차 한없이 무심한 아이들, 늘 정신 차리라며 채찍질하기 급급한 선생님과 어른들. 비단 선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그 때문에 더욱 고독해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혹자는 힐링이나 위로가 되레 나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임시방편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를 핏대 높여 외치는 사람이 인기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지치고 힘들 때, “괜찮아”, “잘 될 거야”, “많이 힘들었지?” 하며 관심을 갖고 위로하는 존재가 단 한 사람도 없다면 어떻겠는가? 아마 당신 역시 곧 마음이 위태로워질 것이고, 자살을 택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지 모른다. 그것은 인간에게 가족과 친구가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며 ‘힐링’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힐링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작고 연약한 인간에게는 위로와 힐링이 꼭 필요하다. 영적인 심리학자 조지 베일런트는 “인간은 정교한 사회적 결속(무조건적인 애착, 용서, 감사, 다정한 시선 마주치기가 그 특징이다)에 의해 생존해왔다”고 설명한다. 따뜻한 마음이 없는 인간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위로받을 수 없다면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이다.
모두가 한가로이 철학을 연구하고 인생을 탐구하며 사는 것이 아니니, 보통 사람이 깊이 있고 진실한 위로의 말을 생각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상담가나 철학자의 의무 가운데 하나는 범인들에게 들려줄, 인생을 견딜 수 있는 위로와 이해의 말을 생각하고 알려주는 것이다. 세상이 이러하다는 인생의 진실 말고, 세상과 운명을 바꾸긴 힘드니 그렇게 하루를 소박하게 살아가도 괜찮다는 따사로운 위로의 말말이다.
그리스어로 이를 ‘테라피아(therapia)’라고 부른다.
테라피아의 대표라 할 철학자가 에픽테토스이고, 그의 유고인《엥케이리디온》은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금언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동시대 철학자의 위용에 묻혔지만, 쉬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잠언들은 힘든 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졌다. 노예로 태어난 에픽테토스는 절망적인 순간을 이겨내며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에픽테토스가 남긴 잠언 몇 구절을 외우며 인생의 굴곡을, 살아가는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다. 에픽테토스 속했던 철학유파인 스토아학파는 개인의 심적 평정을 간구했으며, 역경 속에서도 정념에 휩쓸리지 않는 지고의 정신을 소유하기 위해 정진했다. 그들은 자기 인생에서 단 한 발짝도 도피하지 않고서 주어진 여건에 성심껏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의무감, 정의, 인간애를 염원했던 철인들이었다. 선애에게 들려주어 큰 힘이 되었던 에픽테토스가 남긴 위로의 말은 이것이었다.
“너를 모욕하는 것은 너에게 욕을 퍼붓는 사람이나 너를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 모욕하고 있다고 하는, 이 사람들에 관한 너의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를 화나게 할 때 너의 머릿속의 생각이 너를 화나게 하는 것임을 알라. 그래서 먼저 외적 인상에 의해 사로잡히지 않도록 노력하라. 왜냐하면 일단 시간을 벌어 늦춘다면, 너는 손쉽게 너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김재홍 역)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아무도 당신을 위로하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