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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는 중학교 1학년까지는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전교 10등 안에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첫 번째 중간고사를 정점으로 민호의 성적은 점점 하락했다. 그리고 결국 고등학교에 입학하며(특목고나 자사고가 아닌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성적이 반에서도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애초 민호의 부모가 상담을 신청했지만, 본인 역시 공부를 나름 한다고 하는데 성적은 도무지 오르지 않는 것이 답답했던지라 흔쾌히 엄마를 따라 나섰다.
다양한 학습 검사를 통해 민호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다각적으로 살펴보았다. 성적이 많이 하락하긴 했지만, 민호의 심리적 문제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낙관성이나 회복탄력성, 자존감이나 효능감, 자기조절능력 등은 평균 수준 이상이었다. 마음근력이 약해 학습의욕이 떨어지는 일반적인 사례와는 차이가 있었다.
2시간 넘는 검사와 심층면담을 통해 민호가 성적이 떨어진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원인은 독서 부족이었다. 민호는 꾸준한 독서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언어지능이 낮아 책 읽기를 싫어하는 일반적인 사례와도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언어지능이 상위 지능군에 속해 책 읽기를 좋아할 만한 아이였는데도, 평소 책 읽기와는 담을 쌓고 살고 있었다.
당연히 후천적인 요인, 부정적 양육과 교육, 그리고 독서에 대한 무관심의 영향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민호 부모와 독서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그 원인은 분명해졌다. 민호 부모는 아이의 학습에는 지대한 관심을 쏟았지만, 정작 책 읽기나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관심이나 이해가 부족했다. 공부만 잘 한다면 책은 좀 읽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독서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독서를 막기까지 한 이력이 있었다.
나는 민호 부모에게 몇 가지 독서가 인류에게 미친 지대한 영향들에 대해 설명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는 공교육이 정착되며 일상적인 독서활동이 보편화되기 전 인류 대부분은 지금의 ADHD 아동 수준의 주의집중력과 교양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독서가 일상화되면서 현 인류의 고도의 집중력과 높은 상식 수준 역시 가능해졌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꾸준한 독서는 정서적인 안정에서부터, 풍부한 간접 경험을 통한 삶에 대한 목적의식 형성, 바른 인성, 풍부한 배경지식, 읽기능력과 언어이해력 증진, 그리고 사고력과 주의집중력 강화 등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은 긍정적 영향을 가져온다. 독서를 절대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에게 독서를 장려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특히 고등학교 수준의 학습에서는 독서 경험이나 독서능력이 직접적인 영향을 발휘한다. 풍부한 독서경험과 그로 인해 형성된 읽기능력은, 별다른 심리문제나 나쁜 공부습관의 문제가 없다면 학습능력과 학업성취에 직접적인 변수라고 단정할 수 있다.
물론 상당히 떨어지는 읽기능력이 문제인 경우이긴 하지만, 나는 어려워진 고등학교 수학문제가 단지 언어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풀이 방식을 뻔히 알면서도 잘 풀지 못하겠다고 호소하는 내담 학생들도 자주 접한다. 모두 부족한 독서에 그 원인이 있는 경우이다.
아마도 꾸준한 독서가 자라나는 아이들의 공부에 미치는 궁극적인 효과나 이득은 바로 학구열이나 독서애호감이 증대된다는 점일 것이다.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의욕이나 열의라고 할 수 있는 학구열은 그 바탕이 지적 호기심과 도덕적 각성에 있다. 나는 스스로 공부를 조절할 수 있는 자기조절학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부에 대한 도덕적 가치판단과 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자주 설명한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의지만 가지고 있다고 공부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꾸준한 학습을 통해 공부습관도 형성되어야지만, 학습 자체 대한 긍정적 관심과 열의 역시 자리 잡혀있어야 한다.
지난 칼럼에서 설명했던 심층적 학습자는 이런 일련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뒷받침될 때 만들어질 수 있는 최선의 학습유형이다.
중학생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아이들의 독서량이나 독서 열의가 심지어 성인들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자주 체감하곤 한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독서율은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중학교 이후부터는 다른 조사 대상국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으로 나타난다. 사실 한국 성인의 독서율은 자료를 제시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낮다. 우리 아이들의 독서율이 떨어지는 것은 학습에 대한 부담과 비중이 높은데다, 독서할 물리적, 시간적 환경이 열악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점점 늘면서 그들의 독서생태계 역시 조사할 때마다 더 나빠지고 있다. 상담해보면 초등학교 때 벌써 독서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잃어버린 아이들도 흔하게 만나곤 한다. 그런데 이는 단지 독서 부문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서가 뒷받침하지 않는 공부는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학업상담을 하다보면 민호처럼 중학교 때까지 성적이 좋았던 아이가 사고형 문제와 풍부한 배경지식을 요하는 문제가 많아지는 고등학교 입학 후에 급격하게 성적이 하락하는 일을 빈번하게 접한다. 그 핵심 원인은 사고형 문제를 풀어낼 만한 바탕지식이나 언어이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중학교 때까지는 독서가 공부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선진국처럼 독서가 학습의 바탕이 되는 교육제도가 마련되기 전에는 독서와 공부, 이중의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제대로 사고하고, 다양한 문제나 정보를 폭넓게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학습스키마가 형성될 수 있다. 그래서 부모들에게 오히려 중학교 시절의 풍부한 독서가 더 중요하다고, 한국의 입시에서 결정적 승패를 가르는 관건이 독서라고 힘주어 설명하곤 한다. 비근한 이야기지만 내가 상담했던 명문대 입학생들 가운데, 독서에 열의가 없거나 독서를 싫어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독서광이라고 불러야 할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아이들은 대단히 힘든 공부 상황에서도(하루 17시간 공부하는 것과 같은) 책을 손에서 오히려 놓지 않으려 했다.
독서열을 가진 아이들은 자연스레 학구열을 갖게 된다. 다소 재미없고 지루한 공부 앞에서도 재미와 열정을 품을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형성한다. 그래서 간혹 독서열을 가진 중학생 가운데, 여전히 책읽기에서 자주 몰입을 느낀다고 말하는 아이를 만나면, 그 아이가 단지 입시에서뿐만 아니라 장래와 직업적 성공 면에서도 무척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평가를 내려주곤 한다. 독서애호감을 유지하는 일은 단기적인 학습이나 성적을 위한 필수요소이기도 하지만, 긴 인생항로를 좀 더 윤택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게 하는 마음의 엔진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물려줄 가장 가치 있는 심성 가운데 하나가 책 읽기를 즐기는 독서애호감인 것이다. 독서애호감은 아이의 학구열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킬 것이다.
다음은 내가 부모들에게 통상적으로 알려주는 아이의 독서애호감을 높이는 방법이다.
● 매일 조금씩이라도 독서하라.
● 아이의 책 선택을 존중하라.
● 독서활동을 칭찬하고 격려하라.
● 독서친화활동(헌책서점 방문, 도서관 이용, 북페스티벌 참가)을 장려하라.
● 독후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라.(거실에서 TV치우기, 다양한 서적 진열하기)
● 독서와 관련된 대화를 자주 하라.
● 아이의 적성과 흥미를 안 후 연계된 도서를 권하라.
● 부모가 솔선수범하라.
● 독서수업에 참가시켜라.
(내용파악 중심의 독서토론이 아니라,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펼치는 독서대화에 가까워야 한다)
● 스스로 독서록이나 독서일기를 쓰게 하라.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아이의 공부가 자라는 학습심리학-독서와 공부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