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대형사고와 한국인의 안전불감증②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6.29 10:10
  • 우리를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확산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우리의 모습은 안전불감증이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이한 생각에 쉬이 진화될 수 있었을 메르스는 퍼져나가 희생자와 사망자를 만들고 있다.

    안전불감증의 이면에는 진짜 주범이 있다. 한국인의 안전불감증의 진범은 돈이다. 우리는 지난 시절 돈과 안전을 맞바꾸어왔다. 산업화 이후 팽배한 배금주의는 안전불감증이 만연하게 한 정신적 뿌리였다.

    교과서에도 실린 소설가 이범선의 수필 <도편수의 긍지>에는 우리의 이런 심리를 너무나 잘 빗댄 ‘서울담장이’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 담쟁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의 뜻인즉, ‘서울에서는 담을 쌓는 인부들이 꼭 둘이 함께 다니며 담쌓는 일을 하는데, 그 담은 일꾼들이 자리를 뜨자마자 곧 무너질 만큼 되는 대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꼭 두 사람씩 같이 다닌단다. 담을 다 쌓고는 한 사람은 담이 무너지지 않도록 등으로 받치고 있고, 한 사람은 집주인한테 가서 돈을 받는단다. 그렇게 돈만 받아 쥐면, 두 일꾼은 그대로 골목 밖으로 달아나고, 그와 동시에 쌓은 담은 와르르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혹 그 아래로 어린 아이라도 지나간다면 큰일이다. 배금주의가 키운 독버섯이 바로 안전불감증이고, 안전불감증이 대형사고를 낳는다. 배금주의, 부실공사, 부실운영, 대형참사는 꼬리를 무는 악순환의 고리이다. 숱하게 지켜봐온 안전불감증의 피라미드 조직이다.   

    세월호 사건도 그랬다. 조금 더 벌려고, 배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무리하게 증축했고,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들이 감지됐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운항을 강행했다. 돈 때문에 사람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는 야만성이 활개를 치며 만든 결과였다.

    메르스 사태를 지켜보며 또 한 번 우리의 안전불감증의 화마를 목격한다. 도대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데도 ‘감염 확진자가 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내 맘대로 나다니겠다’고 외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안전불감증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대형참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맘 편히 나다니기 힘든 세상이 될 것다. 아이를 낳기 싫은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수십 명의 어린 목숨을 집어삼켰던 씨랜드 참사 이후, 자신의 메달을 국가에 반납하고, 더는 “한국에선 살고 싶지 않다”며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한 하키국가대표 출신 엄마의 분노처럼, 우리는 이 사회의 불안에 분노한다. 점점 아이 기르기 힘든 세상이 되면서, 그 증명처럼 우리의 출산율도 곤두박질치고 있다(물론 다른 이유들이 더 있겠지만). 

    이런 사회라면 사람들은 서로를, 세상을 믿지 못할 것이다.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는 <2014년 관용과 신뢰에 관한 시민의식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조사대상 중 85.0%의 국민이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정치적 불안을 느낀다는 국민이 85.0%, 경제적 불안을 느낀다는 사람은 81.6%였다. 상호간의 신뢰 수준을 알아보기 위한 ‘처음 만난 사람을 어느 정도 믿는 편입니까’라는 질문에 ‘믿는다’고 답한 사람은 불과 31.4%에 지나지 않았다.

    대중들이 얼마나 세상과 타인에게 불안과 불신이 심한 지 느낄 수 있는 자료이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사회, 타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사람이 겪는 감정이 바로 불안이다. 불신은 불안의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심리질환 가운데 건강염려증이란 것이 있다.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건강염려증에 걸린 사람들은 몸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통증이나 이상에도 극심한 위협과 두려움을 느낀다. 가령 그들은 변에 피가 조금 섞여 나오면 혹 대장암이 아닐까 하며 걱정에 시달린다. 이들의 증상이 심해지면 의사조차 믿지 못하는 불신에 빠진다. 

    비유컨대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사회에, 점점 느는 것이 ‘사고염려증’ 심리이다. 사람들은 이제 어딜 가나 사고를 걱정한다. 바람 부는 날, 도시의 간판 하나조차 무서운 괴물이 되고, 지하철이 달리다가 갑자기 정차하면 심장이 내려앉는 두려움을 느낀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모든 타인들이 바이러스 보균자처럼 느껴진다. 주변에서 사고염려증에 빠진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건강염려증 환자처럼 사고염려증이 심해진 사람들은 세상 모든 사람과 사물, 사태를 불신한다. 이번 메르스 확산에서 우리의, 타인에 대한 불신감, 건강염려증, 사회불안은 극에 달했다. 

    이상한 나라 이야기 같지만, 부모들은 이제 아이들에게 바깥에서 누군가 다가오면 얼른 도망치라고 가르친다. 낯선 어른이 무엇을 부탁하면 단호히 거절하고 소리 지르라고 알려준다. 이것이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런 교육을 받으려 자란 다음 세대의 불신감 역시 하늘을 찌른다. 동아일보에서 서울 시내 중고등학생 129명에게 한국사회를 신뢰하는지 묻는 설문을 실시한 적이 있다. 결과는 끔찍하다. 조사 청소년 중 80명(62%)이 ‘불신하는 편이다’(64명) 혹은 ‘매우 불신한다’(16명)고 답했다. 반면 ‘한국사회를 신뢰한다’고 답한 청소년은 단지 16명(12.4%)에 그쳤다.

    우리는 안전불감증의 지뢰들이 놓인 위험한 사회에 살게 되었고, 그래서 점점 더 기이하리만치 사고를 걱정하는 사고염려증 환자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안전불감증과 사고염려증을 동시에 가진 야누스일 수 있다. 타인의 삶을 배려하는 일이란 내가 하는 일들에 안전을 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사려 깊은 안전들이 모여 사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믿음의 성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불감과 불신, 불안의 성에 가깝다. 헨리 그레이엄 그린은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를 탁월하게 묘사했던 소설가이다. 자신의 소설,《공포의 성The Ministry of Fear》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믿음 없는 삶을 지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신이라는 최악의 감옥에 갇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연하는 불감, 불안과 불신, 사고염려증은 우리 스스로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