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보다 성숙한 독서를 위하여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6.01 09:34
  • 책을 대단히 많이 읽었다거나, 자식에게 많은 책을 읽혔다며 자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물량중심 사회의 또 하나의 슬픈 자화상이다. 심지어 다독이 대단한 일인 듯 위세를 떨고 사람들에게 속독이나 다독을 권하는 사람들도 각종 매체마다 넘쳐난다. 자신이 책을 지금껏 몇 만 권을 읽었느니, 3년 만에 수 만권의 책을 읽고 도를 통했다느니 하는 허세꾼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하는 것이 독서의 정도일까?

    더 많은 것만을 욕망하는 어리석음은 우리가 대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게 하는 함정으로 이끈다. 적어도 독서에 관한 한 다독이나 속독, 남독은 어리석은 일이다.

    얼마 전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을 기회가 있었다. 책을 쓰느라 의도적으로 읽은 것이긴 했지만, 처음 이 책을 손에 쥐었던 사춘기 시절처럼 책에 깊이 빠져 진한 황홀을 맛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라는 헤세의 말이 한 번 더 나를 뜨겁게 했다.

    일 년에 만 권 이상의 책이 새로 출간된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꼭 읽어야 할 책도 있지만, 실은 그럴 필요 없는 책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일하고, 관계 맺고, 자녀와 가족을 돌보는 와중에 짬짬이 읽을 수 있는 책의 권수와 양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독서를 게을리 하라는 뜻은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내게 안중근 의사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나, 위편삼절(韋編三絶),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같은 독서에 관한 명언이나 고사를 자주 들려주셨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은 공자가 아끼던 책을 너무 자주 읽어,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뜻이다. 독서는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가부장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남아수독오거서도 사내는 평생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인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옛날 책의 형태를 고려하면 요즘으로 치면 몇 백 권 내지는 1, 2천 권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소박한 뜻이다.

    헤르만 헤세의《독서의 기술》은 진정한 애서가이며, 완벽에 가까운 독서를 행했던 대작가가 후세를 위해 간명하게 정리해놓은 독서의 정석들을 전한다.

    글의 초반에 요즘의 남독, 다독 열풍을 꼬집는 분명한 입장이 나온다. 헤세의, 온화한 평소 표현에 비하면 단호하기 이를 데 없다. 

    “남독(濫讀)은 결코 문학에 영예가 아닌 부당한 대접이라고 말이다. 책이란 무책임한 인간을 더 무책임하게 만들려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며, 삶에 무능한 사람에게 대리만족으로서의 허위의 삶을 헐값에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책은 오직 삶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구절을 내내 가슴에 새기고 있다. 그것은 신중히 책을 고르라는 권유와 삶이 없이 독서만 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진리에 대한 것이다.

    “인생은 짧고, 저세상에 갔을 때 책을 몇 권이나 읽고 왔느냐고 묻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미련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의 수준(양)이 아니라 독서의 질이다. 삶의 한 걸음 한 호흡마다 그러하듯, 우리는 독서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 …… 또한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일상을 잊고자 책을 읽어서도 안 된다. 이와는 반대로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우리의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 만약에 정말 이럴 수만 있다면, 지금 읽는 것의 한 10분의 1가량만 읽는다고 해도, 우리 모두 열 배는 더 행복하고 풍족해지리라.”

    우리가 기거하는 물질문명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욕망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이 거센 흙탕물에 휩쓸리며 사는 우리는 매사에 무언가를 더 갈망하는 노예근성에 길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마나 판도라의 상자 안 희망처럼 우리에게 독서라는 행위가 남아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자신의 노예근성을 깨닫고 여기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독서는 언제나 단단한 생각의 디딤돌, 돌계단이 되어준다. 

    적어도 책 읽기에 관해서라면 적게 읽어도 좋다. 너무 오래 읽지 않아도 좋다. 자기 전 하루에 단 몇 페이지만이라도 읽고, 다음 날 열심히 일을 하다 문득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떠올려보는 것이면 족하다. 그런 소박한 행동으로도 우리는 깨어있을 수 있으며, 삶의 조타를 놓치지 않고 온전한 삶을 지탱해갈 수 있다.

    신중하게 책을 고르라, 그리고 천천히 반복해 읽어보라. 삶이 지나치게 고단하지 않아 매일 몇 페이지라도 읽을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그러니 독서에 관해서만은 너무 갈망하지도, 너무 조급하지도 않길 바란다. 많이 읽는 것보다는 깊이, 신중하게, 천천히 읽을 때 삶의 진실에 더 닿기 쉬운 것이 독서의 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