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희망의 심리학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5.26 10:31
  • 절망부터 가르치는 시대. 20-30대와 상담하는 일이 많은 나는 그들이 느끼는 절망의 속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편이다. 우리 사회는 새로이 성장하고, 구성원이 되는 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수많은 억압을 가한다. 그 숨 막히는 요구에 시달리는 요즘 청춘들은 그래서 희망보다 먼저 절망을 말한다.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나 6무 세대(일, 소득, 집, 연애/결혼, 출산, 희망이 없는 세대)라는 말 역시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젊은이 스스로 희망이 없는 세대라고 자신을 칭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희망 없음은 비단 청춘들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지금은 희망에 앞서 절망을 부르짖는 시대이다.

    이설이 많지만, 그리스신화에서 판도라가 에피메테우스 집의 상자(항아리)에 봉인돼있던 인간을 해치는 숱한 해악들, 죽음, 병, 질투, 미움 등을 세상에 퍼뜨린 후, 오직 희망만은 상자 안에 남겨둔다는 이야기는,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인간은 희망이 남아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청춘에게서 그 상자를 깨뜨려 남겨둔 희망마저 빼앗아서는 안 될 것이다. 

    희망은 반드시 필요하다. 작고한 긍정심리학의 태두 릭 스나이더 교수는 인간이나 조직의 성장을 위해 정신의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 희망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소망하는 희망이 실체 없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목표를 현실화해나가려는 구체화된 심성이라고 했다. 몽상과 희망을 구분한 것이다. 그는 희망이 긍정적 동기부여의 마음가짐이자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질 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좋은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 희망 역시 얼마든지 학습하고 성장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에게 가장 중요한 과업이 희망을 배우는 일이라고도 했다.

    진정 희망적인 사람은 현실화가 가능한 꿈을 꾸며 희망적인 자기 암시와 유연한 해결전략을 펼쳐 난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희망 실현을 달성하는 사람이다.

    희망과 관련된 실험에서도 희망의 위력은 잘 드러난다. 보다 높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더 구체적인 방법과 실천적인 행동을 마련하고 시도한다. 반면 희망이 부족한 사람들은 도전을 멈추고 쉬이 포기하거나 절망한다. 희망은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목표달성을 이룰 수 있는 동기와 실천력의 합일인 것이다. 스나이더 교수는 대학신입생을 상대로 한 학업 성취도 연구에서 IQ나 SAT 점수보다는, 학생이 가진 희망의 수준이 보다 높은 상관성이 있음을 밝혀냈다. 건실한 희망을 가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현저히 높았기 때문이다. 희망은 자신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의지와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본인 스스로 믿는 것이다. 높은 희망을 가진 사람은 강한 자발성을 가지기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어진 과제를 이루기 위해 여러 방법과 책략을 펼치고, 세밀한 관리를 시도한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현실적인 실행력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결코 희망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절망은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다. 스나이더 교수의 제자이자, 희망에 관한 탁월한 연구들을 발표해온 셰인 J. 로페즈 교수는 저서《희망과 함께 가라》에서 실험을 통해 밝혀진 놀라운 사실들을 전한다. 거기에는 몇 년에 걸쳐 살펴본, 실험에 참여한 희망 그룹(설문지 응답에서 희망적인 관점을 많이 적은)과 절망 그룹(비관적인 관점을 시사한) 간의 사망률이 2배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 희망 그룹 환자들이 11% 사망한 것에 비해, 절망 그룹은 사망률이 29%에 달했다. 희망을 잃는 것은 때로 삶에서 멀어지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세찬 회오리바람이 우리의 희망을 꺾고 절망으로 내동댕이치는 시대이기에, 다시 희망을 배우고 연습하는 일이 더욱 더 중요하다.

    희망은 인간이 생의 의욕을 잃지 않고, 내일을 고대하며 현재를 힘차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리하여 희망이 우리 삶을 지속시킨다. 다소 길지만 감동적인, 조지 베일런트가《행복의 완성》에서 인간의 중요한 영성으로 지목한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희망은 인지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 않고, 진부하지 않다. 희망은 포유동물적 유산인 감정의 일부다.

    예술가, 아동정신과 의사, 성인발달 연구자인 에릭 에릭슨은 인생 초기에 희망의 가치는 “가장 시급하고 가장 필수부가결하다”고 표현했다. 에릭슨에게 희망은 인간 발달의 기초적인 토대였다. 희망은 에릭슨이 “기본적 신뢰”라 명명했고, 내가 믿음이라 부르는 것을 뒷받침하는 기본 동력이다. 뿐만 아니라 희망은 에릭슨의 8가지 발달단계의 대부분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희망은 주도성을 완성하는 데 필수적이고, 청소년기에는 성실성을 지지하고, 성년기에는 친밀성을 촉진한다. (각각 3단계, 4단계, 5단계에 해당한다.) 희망은 다음 세대를 향한 개인의 신뢰를 재확인하여 성숙한 생산성이 꽃피울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한다(7단계). 마지막으로 희망은, 에릭슨이 마지막 단계인 “통합”이라 부른 것을 뒷받침하여, 우리에게 또는 우리의 평화로운 죽음을 허락하는 생존자들에게 미래를 약속한다. 희망은 영원히 샘솟는다.

    희망은, 이것도 다 지나갈 거라는 확신, 내일이나 모래가 오면 좋아질 거라는 확신, 인내하면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올 거라는 깊은 본능적 확신이다. 그러므로 희망은 단순한 인지적 방어기제가 아닌 긍정적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