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도덕성이 부족한 아이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5.04 10:15
  • 21세기 들어 가장 빨리 번영하는 학문 중 하나가 긍정심리학이다. 나 역시 대학원 시절 처음 긍정심리학을 접하고서 크게 고무되었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은 심리학이나 심리치료에 있어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우울, 불안 같은 부정심리가 아니라 영성이나 공감능력과 같은 긍정심리에 집중하라.

    대학과 대학원 시절 내가 푹 빠져있던 것은 정신분석학이었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사춘기 이후 나를 지배했던 학문이다. 자신의 무의식에 문제가 많다고 여겼던 소년에게 프로이드는 유혹적인 대상이었다.

    그러나 긍정심리학을 접하며, 긍정심리학과 정신분석학, 둘이 내 안에서 일으킨 충돌은 어머어마했다. 적어도 내 안에서는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이질적인 대상이었다.
    하지만 서른 즈음 내게 우울증이 찾아오며 둘의 대결은 쉽게 결판이 났다. 고통스러워하던 내게 프로이드나 라캉의 정신분석 치료는 무용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적어도 정신분석치료가 내게 날개를 펴고 비상할 내적 에너지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긍정심리치료는 달랐다. 셀리그만의 낙관성 학습이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치료는 내가 커다란 내적 회복을 성취하고 외상 후 성장을 달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불교공부나 독서치료, 마음챙김 명상, 철학상담 방법도 적잖이 도움이 되었지만, 긍정심리치료만큼은 아니었다.

    가장 큰 효과가 있었던 것은 축복일기와 감사편지였다. 우울증이 심했을 때, 나는 세상 어느 것에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배신감과 증오심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심약해진 아들을 아낌없이 보살피는 늙은 부모의 치성을 감득치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그 후회스러움으로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축복일기는 매일 자신에게 일어났던 좋은 일 세 가지를 떠올려 일기로 적는 글쓰기치료 방법이다. 작년 내가 상담가로 참여했던 EBS 다큐멘터리 <공부 못하는 아이> 제작팀에게 꼭 아이들이 이를 실천하게 만들도록 당부했던 방법이다. 물론 함께 했던 아이들에게도 큰 효과가 있었다. 15년 전 아주 사소한 일, 가령 기르던 호박 한 덩이를 따서 맛있는 된장국을 해먹었다, 호숫가를 천천히 걸었더니 기분이 상쾌하고 활력이 솟았다 같은 축복일기 쓰기가 내게도 평정과 삶의 의욕을 가져다준 긍정적 실천이었다.

    얼마 전 상담했던 고1 지훈이 역시 부모에 대한 감사를 미처 깨닫지 못한 아이였다. 부모는  자식을 낳은 탓에 의당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라는 그릇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여자 친구 생일선물로 줄 가방을 사는 돈,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시는 데 필요한 돈, PC게임 아이템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부모가 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 단순함 때문에 철학자들의 반론이 만만치 않지만, 긍정심리학 연구는 인류가 가꾸어온 24가지 긍정적 성품을 정하고 그 증진법을 고민한다. 하지만 머리로 고민만 했지, 어떻게 현실의 삶을 긍정적인 성품으로 채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긍정심리학자들은 사랑, 끈기, 이타성, 진실성, 겸손, 자기조절, 감사, 영성 같은 도덕성과 관련 깊은 덕목들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긍정적 기여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심리치료 현장에서도 긍정적 성품 증진법을 적극 활용한다. 사실 이미 도덕적이지 않은 아이들은 공부를 못 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윤리지능이나 도덕성 지수는 적어도 아동이나 청소년의 학업발달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상담했던, 마음이 빈약한 아이들 역시 엄마가 없을 때, 게임이나 하지, 밀린 숙제를 스스로 하지는 않았다. 

    학습심리학자들은 이것이 결코 좋은 동기라고 말하지 않지만, 지난 수천 년간 유교사회에서 공부의 목적은 대개 연로하신, 또 자신을 위해 은덕을 베푼 부모에게 효를 실천하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나 역시 공부의 동기 전부는 아니었을지라도, 그러했다. 물론 비도덕적인 아이들도 더러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대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의 도덕성이 더 높다. 도덕성을 고양시키는 것은 아이의 학습을 성장시키는 또 다른 핵심 대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