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책이 십대들의 상처를 치유하다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5.01.12 10:17
  • 얼마 전 내가 심리상담가인 줄 모르는 십대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심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여고생이 털어놓는 이야기들과 언어습관, 표정 등을 미루어보건대, 필시 우울증을 앓고 있음이 분명했다.

    은근슬쩍 그 여고생에게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의향을 물었다. 그 여고생은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고, 여러 여건 탓에 그러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그 대답을 들으며 나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심리질환을 겪는 사람 가운데 10% 이하의 사람만이 병원이나 상담기관을 찾아 심리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나머지 90% 이상의 사람들은 심리문제를 감추거나 방치한 채 지낸다. 십대들은 아마 정도가 더 심할 것이다. 분명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번아웃증후군 등을 숱하게 겪으면서도 심리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번에 낸 책, ≪내가 공부를 못 하는 진짜 이유≫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지만 정작 심리상담을 받을 처지가 못 되는 십대들을 위해 쓴 책이다. 책에는 다양한 심리문제를 겪는 십대들의 이야기와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치유하는 방법을 독서치료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양한 심리문제에 도움이 되는 치유서와 치유서의 활용방법을 설명하는 책이다.

    지난해 나는 EBS다큐프라임 <공부 못하는 아이> 제작팀이 진행한, 중화고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 공부 상처 회복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참가신청을 한 아이들은 모두 공부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고등학교 1학년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공부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다양한 이유들로 생긴 마음의 상처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진짜 이유였다.

    공부는 물론이고, 어떤 일이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는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성적과 공부 성과만을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아이들이 마음을 다치는 상황이나 사건들을 강요하거나 모른 체 하고 있다. 어른이나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비인간적으로 공부를 강요하고 그 때문에 아이들은 마음을 다치고, 마음을 다친 탓에 아이들은 제대로 공부를 할 수도, 공부에 대한 열의를 가질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자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일 자체를 멈추는 것이 우선이지만, 아이들의 공부 상처나 심리적 고통을 어루만지는 일 역시 무척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공부 상처나 심리적 고통을 방치하는 십대들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 만났던 그 여고생과 헤어지며 나는 윤동주의 시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어보라고 조언했다. 전문 심리치료사를 만나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더 나을 테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된다니 차선책으로 책읽기를 시도해보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윤동주의 시는 겉으로는 한없이 유약해보이나 자신이 처한 삶의 어려움을 이겨나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서려있다. 그것은 조급하게 자신을 다잡으려 내뱉는 허언이 아니라 내면에서 길어 올린 단단한 보석 같은 말과 결의들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육첩방은 남의 나라/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등불처럼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공부 못하는 아이는 없다≫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