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왜 나는 쇼핑을 멈추지 못할까?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12.29 13:19
  • 얼마 전 상담한 40대 주부 연아씨는 심리적 허기를 쇼핑으로 푸는 여성이었다. 남편과 사이가 썩 좋지 않은데다, 아이들도 뜻대로 자라주지 않자 그녀는 점점 쇼핑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생활비를 넉넉히 주는 편이었지만, 그녀는 최근 카드빚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홈쇼핑 채널을 켜놓고, 쇼핑호스트의 구매독촉 멘트에 다시 전화다이얼을 누르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위안이 되고 만 탓이다. 

    그녀는 쇼핑중독이 심해지고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 우울증과 심하지는 않았지만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리석은 선택인 줄 알면서도 왜 우리는 지나친 소비나 쓸모없는 구매를 멈추지 못할까?

    진화소비심리학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개드 사드의 저서,《소비 본능》에서는 우리가 어리석은 소비와 사치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 안에 설계된 소비 본능에 기원한다고 말한다. 그는 소비 대상에 숨어 있는 스토리와 이미지를 비이성적으로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를 이끌어내는 인간의 소비 본능이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안의 소비 본능도 문제겠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역시 우리의 소비를 자극한다. 이미 반세기 전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의 사회’의 구조와 신화에 대해 파헤친 바 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에 의해 대량생산된 상품을 대중이 끊임없이 소비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가 대중스타나 각종 매체를 동원해 소비에 대한 욕망과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열성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 삶은 온통 소비와 광고로 도배되어 있다. 모든 관계가 소비와 구매로 이어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곤 한다.

    TV, 인터넷, 스마트폰, 빌딩, 거리와 지하철의 여기저기, 광고가 시야를 뒤덮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제발 나를 사라고 매번 손짓한다. 어쩌면 돈을 벌고, 물건을 사는 일이 지극히 일상적인 일인 만큼 소비와 구매를 배척하거나 터부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소비와 쇼핑 욕망이 정도를 넘어설 때 우리는 쉽사리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소비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기대면 기댈수록 우리 정신은 황폐해진다. 쇼핑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중독된, 쇼핑중독(shopping addiction)은 현대인이 흔히 겪는 정신질환 가운데 하나이다. 쇼핑중독은 강박적으로 불필요하거나 혹은 자신의 경제력을 넘어서는 물건을 구매하는 데 과도한 집착이나 충동을 보이는 중독 증상이다.

    1997년에 미국 P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어플루엔자(Affluenza)>는 쇼핑중독을 사회구조의 관점에서 흥미롭게 접근한 바 있다. ‘어플루엔자(Affluenza)’는 ‘풍요로운’을 의미하는 ‘어플루언트(Affluent)’와 ‘유행성 독감’을 가리키는 ‘인플루엔자(Influenza)’를 합친 신조어이다. <어플루엔자>에서는 개인의 쇼핑중독이 단지 비이성적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가 부추기고 구성원들에게 세뇌시켜 대규모로 확산시키는 전염병과도 같은 현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현대인은 통계적으로 가족과의 유대나 자녀와의 대화보다 소비에 더 골몰한다. 미국인들은 쇼핑에는 주당 6시간을 할애하면서도 아이와는 40분도 놀아주지 않는다. 미국 십대 소녀 93%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 쇼핑이라고 말한다.

    ‘어플루엔자’는 이제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문제이다. 사람들 간의 유대가 훼손되고 소비지상주의가 만연할수록 연아씨처럼 쇼핑을 통해 나를 느끼고 위안을 얻는, 쇼핑으로 얻는 물건으로 자신을 대신하려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질 것이다.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물건을 사느라 정력을 낭비하는 바람에 정작 꼭 해야 할 일, 꼭 나누어야 할 대화를 놓치는 일도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연아씨의 경우처럼 사회문제를 넘어 개인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마도 물건이나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서만 겨우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서글픈 현대인의 삶이 우울과 불안이 넘쳐흐르게 만드는 내밀한 원인일 것이다. 어쩌면 소비사회와 우울감은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마인드체인지 심리상담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