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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전, 혹은 서른을 좀 넘긴 이들을 만나면 자주 할 수밖에 없는 이야깃거리가 결혼과 독신에 대한 것이다. 아마도 어느 시대, 어느 연령이든 이는 지대한 관심사일 것이다. 며칠 전에도 나이 든 기혼자 몇 명과 결혼을 고민하는 몇 명이 둘러앉아 일대 격론을 벌였다.
“결혼을 하면 더 행복한가?”
늘 의문의 요지는 그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많은 관객이 몰리는 까닭은 분명 수십 년을 한결같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노부부의 부부애가 전하는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혼생활은 늘 감동의 원천이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결혼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는 선택이다. 청춘들이 결혼과 가정에 대해 더없이 고민이 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의 결혼이란 수많은 근심과 걱정, 난관을 짊어지는 참으로 지난한 선택이다. 결혼비용, 주거문제, 임신과 육아, 양육과 교육, 그리고 경제적 부양 등이 차차 밀어닥쳐 사면초가를 이루는 버겁기 그지없는 일이다.
행복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제시해온 소냐 류보머스키 교수는《행복의 신화》에서 결혼에 대한 여러 통계와 연구들을 제시하며 결혼이 과연 행복의 열쇠인지 따져본다. 이 책은 결혼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결혼을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고, 독신으로 산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행복은 무엇을 하느냐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말한다.
영국에서 이루어진 한 대규모 조사에서도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행복도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사실 영국보다 더 넘어야 할 인생의 험산준령이 많은 우리네 결혼생활에서라면 미혼자들보다 기혼자들이 조금 더 불행할는지 모른다. 마찬가지 미혼자에 대한 냉대와 편견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라면 독신자들이 겪어야 할 심리적 불편 역시 몹시 클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런 연구결과도 있다. 통계적으로 자녀를 키우는 동안 부부의 행복도는 말할 수 없이 낮아졌다가(자녀가 예닐곱 살 무렵이 최악이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면서 부부의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개선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결혼을 하더라도 자식을 낳아 기르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에 대한 간결한 해명이 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짝짓기와 자녀양육 본성이 인간이 가진 가장 심원한 본능이기에 우리 인간은 무한한 책임과 막중한 의무가 뒤따르는 결혼생활과 자식양육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단지 무모한 본능 때문에.
하지만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혼자 사는 게 더 경제적으로 유리하고, 자식을 안 낳는 것이 더 윤택한 삶을 보장하는데 우리는 왜 부득부득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분명한 답은 다소 상투적이지만, 유교에서 찾을 수 있다. 《詩經시경》에 이르길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셨으니 아아! 애달프다. 부모님이시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애쓰고 수고하셨구나. 그 깊고 넓은 은혜 갚고자 하나 드넓은 하늘 같이 끝이 없도다.” 하였다.
내 쪽에서 따지자면 결혼을 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은 오로지 힘든 일일 따름이다. 내 한 몸, 나 하나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자식을 기르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결혼을 하고 자식을 애써 길러보니 무슨 덕을 보자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
다만 자라나는 자식이 늘 한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부모를 은혜해주는 그 모습이 너무 갸륵해 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이나 양육은 자유로운 개인적 선택이기보다는 공동체와 내 자녀가 장차 가지게 될 생명과 인생을 보장하는 책임이나 의무에 가까운 일인 것이다.
결혼과 양육이 단지 쾌락과 개인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인류는 이제껏 이렇게 존속할 수 없었을는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 들어 점점 청춘들에게, 무슨 노인네처럼 결혼과 자녀양육은 덕의 실천일 따름이라고 충고할 때가 많아진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마인드체인지 심리상담센터 원장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결혼을 고민하는 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