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방황하는 십대에게 ‘데미안’을 권하다
맛있는공부
기사입력 2014.08.13 11:10
  • 상담실에서는 나는 방황하는 십대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을 건넨다. 십대, 방황의 시절이다. 방황하지 않았다면 십대를 제대로 보내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황이 방황으로 끝맺어서는 안 된다. 그 방황이 의미 있으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이 어느 정도 답을 찾아야만 한다. 방황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가진 자라면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누군가의 ‘자식’인 것이 싫어 방황을 하는 것이고, 내가 지금 학생인 것이 싫어 방황을 하며, 내가 무엇이 될 것인지 잘 알 수 없어, 방황은 시작된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런 질문들이 답을 찾을 때에야 비로소 방황도 끝난다. 그것을 자기성찰이라고 부른다. 어떤 때라도 자기성찰이 필요하지만, 십대에게 자기성찰은 거부할 수 없는 당면과제이다.

    십대 시절 나도 방황했었다. 어릴 적 내 꿈은 화가였다. 중3 무렵 간직해온 꿈을 접었다. 나이가 들어 현실에 눈뜨면서 예술이 열정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았다. 미술에는 돈이 필요했다. 집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화실을 다니는 건 꿈도 못 꿀 일이고, 미술용품조차 계속 사댈 처지가 아니었다. 하루는 더 이상 화가의 꿈을 꾸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림들을 눈에 띄지 않는 한 편으로 치우고, 마음에서 그 흔적을 지우려고 작정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꿈의 상실은 잿빛이었다. 16살의 겨울은 시지포스 신화에 나오는,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는, 가망 없는 언덕길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심리상담가가 된 지금, 당시를 떠올리면 내 증세는 퍽 위태로웠다.

    떨어지는 ‘시지포스’를 구한 은인이 있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끔찍했을 것이다. 계속 담배나 술에서 손을 떼지 못했을 것이고, 세상을 원망하는 그 친구들과 밤길을 헤매며 험한 일을 저질렀을 것이고, 학업에 대한 희망이나 책임 따윈 접고 말았을는지 모른다.

    바로 그 은인은 헤르만 헤세였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뒤바꾸는 찰나가 있음을 깨달았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왜 인간은 태어나고 하찮은 생(生)을 살아가는가를 반문하던 내게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속삭였다.

    “싱클레어. 어린아이로군요!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요. 언젠가 그것은 완전히 당신 것이 될 겁니다. 당신이 꿈꾼 대로요. 당신이 변함없이 충실하면요.”

    싱클레어의 성장을 돕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이 나를 찾는 여행을 하고 있던 싱클레어에게 전했던 말이다. ≪데미안≫이 없었다면 나는 그 겨울을 버티지 못했다. ≪데미안≫은 여전히 십대 시절 모두를 괴롭히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충실히 답하고 있다. 나온 지 100년이 다 된 책을 내가 십대들에게 지금까지도 권하는 까닭이다.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내적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은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몇 살 나이 많은 벗의 도움으로 정신착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나의 고유한 모습을 본다. 그것은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소설은 이렇게 나를 인도한 데미안과 내가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자기 자신 안에서 타자와 자기 자신,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비로소 싱클레어가 나 자신을 찾아내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데미안≫에서 헤세는 세상의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인생이란 이를테면 이런 자기만의 존재성을 찾고 확신해가는 일이기도 하다. 방황하는 십대들이 자기의 빛나는 존재성을 깨닫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오늘도 상담실에서 조금 어렵다고 손사래를 치는 십대들에게 ≪데미안≫을 권한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