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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차츰 사람들 뇌리에서 잊히는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때, 전에 없이 비관적인 생각이 들곤 한다. 철학자 사르트르의 표현대로 타인은 정말 지옥이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런 게 지옥인 거군. 정말 이럴 줄은 몰랐는데……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 사르트르, <닫힌 방>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을 낳는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은 다시 긍정적인 생각을 이끌어낸다.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는 102년을 산 20세기 철학의 증인이다. 그는 99세까지 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했으며, 그의 성찰은 인간의 사유를 한 단계 진보시킨 것으로 칭송받는다. 유럽철학계는 그를 ‘철학의 제왕’이라고 칭한다.
그는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으며 평생 장애인으로 살았다. 한때 극심한 척추통증에 시달렸고, 평생 좌골통증을 안고 살았다. 그는 ‘철인(哲人)’답게 장애에 굴하지 않았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다리를 절기는 했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 않던 그가 나이가 들어 결국 지팡이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때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이를 먹으니 다시 네 발로 걷는다”고 웃으며 화답하곤 했다.
가다머는 인간은 온전함(Ganzheit)을 지향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온전함은 전체성을 갖추되, 완벽이나 무결점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는 신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이 조화를 이룬 평형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인간에게 진정한 건강이란 삶의 리듬이고, 평형상태가 스스로의 균형을 잡아가는 지속적 대화이며, 자기 자신과의 조화라고 말했다. 어쩌면 인생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도 이 온전한 조화로움을 얻는 일일 터이다.
세월호를 떠올리며 사람들이 한없이 낙망했던 것은, 이런 인간의 길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괴물처럼 수면 위로 자신의 흉한 얼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경찰과 법관의 수를 늘리고 형량을 높이면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줄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효과가 불확실한 대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인간다운 조화, 균형, 온전함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프로이드 이후 최고의 심리학자라고도 평가되는 마틴 셀리그만은 우울증의 기저를 밝혀낸 학자로도 명성이 높다. 그는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우울증이 유발되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밝혀냈다. 소위 무기력을 학습한다는 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가 자신이 스스로 환경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 환경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를 포기하는 것 또한 학습 한다’는 심리개념이다.
개를 가죽 끈으로 묶은 뒤 전기충격을 주면 스스로 전기충격을 끌 수 있도록 해준 개는 전기충격을 받을 때 전원스위치를 끄려 하지만, 스스로 전기충격을 끌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었던 개는, 다시 전기충격을 가하면 무기력하게 우리 바닥에 엎드려만 있다.
우리가 실의에 빠지고, 좌절하고, 절망의 나락에서 뒹구는 것은 상당 부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분명 그것은 착각이지만, 한때 피하기 어려운 운명과 역경들이 겹치면 우리는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잃고, 무기력의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어쩌면 지금 국민 전체가 세월호와 그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며 무기력을 학습하고 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연구만을 계속 하던 셀리그만이 어느 날 ‘어마어마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셀리그만의 아들 니키는 심한 울보였다. 하지만 다섯 살 생일에 스스로 그 점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그리고 성공해낸다. 니키는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사소한 일에 짜증내고 화내는 일을 멈춘다면 자신도 오늘부터 징징거리는 바보짓은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냈다. 그 계기로 셀리그만은 자신 역시 부정적 심리를 연구하며, 그 부정심리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모른다는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셀리그만은 그것이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 탄생한 배경이라고 회고한다.
마틴 셀리그만의 최근작,『플로리시』에는 심리적 상처를 이겨내는 과학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과 사례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가 제안하는 ‘플로리시(Flourish, 번영)’는 삶의 만족도를 지속적으로 높여 행복이 풍성해지도록 하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긍정심리학자들이 이룬 그간의 성과는 우울감이나 불안이 학습되는 것처럼 긍정감이나 희망 또한 얼마든 훈련하고 연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희곡, <닫힌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지옥에서 만난 죽은 세 사람과 그들의 뒤엉킨 욕망과 비애감을 다룬 이 희곡은 사르트르의 인간 이해를 읽을 수 있는 뚜렷한 표정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타인들과 조화를 이루고, 그들과 온전한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우리가 지금 가장 우려하는 일은 우리가 그간 돈이나 명예, 사물화된 목적만을 좇다가 이런 온전한 인간성과 인간관계를 도모하는 노력을 놓쳐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플로리시』에서 셀리그만은 이 문제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피터슨에게 긍정심리학이 무엇인지 한 마디로 설명해달라고 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타인” 긍정적인 것이 홀로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마지막으로 큰소리로 웃었을 때가 언제인가? 말할 수 없이 기뻤던 순간은? 가장 최근에 심오한 의미와 목적을 감지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자신의 성취에 엄청난 자긍심을 느꼈던 때는 언제였나? 당신의 삶에서 이 절정의 순간들을 내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의 형태는 알고 있다. 그 모든 순간은 바로 타인을 중심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타인은 최고의 해독제이며 가장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나는 사르트르의 ‘타인은 곧 지옥’이라는 말이 아주 못마땅하다. 내 친구이자 스토니브룩 대학의 의료인문학 교수인 스티븐 포스트가 자기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기분이 언짢은 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스티븐, 골이 난 모양이구나.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을래?” 어머니의 말씀은 경험을 통해 엄격히 검증되어 왔으며, 과학자들은 친절한 행위는 우리가 검증해온 모든 웰빙 연습을 일시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헬로스마일 심리센터 원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
[박민근의 심리치료] 생각 치유 - 더 이상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