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생각 치유 - 부모의 무지가 때로 아이의 삶에 독이 되기도 한다.
맛있는공부
기사입력 2014.06.09 15:20
  • 당연한 이치겠지만, 옳지 못한 생각은 왜곡된 심리를 만든다. 그러니 생각을 고쳐야 마음이 낫는다. 혹은 옳지 못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 생각을 강요할 때, 서로가 상처 입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수연이는 부모의 강압적인 태도로 우울해진 아이였다. 아이는 자살충동까지 느낄 정도로 우울해졌다. 수연이 부모는 아이가 학습을 게을리 하면 자주 질책하고 비난했다. 올해 중2인 수연이는 내내 말 잘 듣고, 늘 모범생 소리를 듣던 아이였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말부터 아이는 공부를 놓아버렸다. 그동안 시키는 대로 공부를 했지만, 도무지 이 공부를 왜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공부에 대한 의욕이 완전히 사라졌다.

    다른 아이처럼 일탈이나 비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자기 방에 들어 앉아 내내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또 그 때문에 자주 부모와 마찰을 일으켰다. 수연이는 영어학원에도, 수학학원에도, 그리고 학습지나 과외도 모두 손을 놓았다. 과외선생이 오면 문을 잠그고 방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수연이의 부모님은 대한민국 대부분의 부모처럼 아이가 명문대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 비록 중학생이지만, 수연이가 반에서 적어도 3등 안에는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 그나마 전교 3등이 아닌 것은 아이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충분히 배려한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수연이는 별로 좋아하지도,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 수학 공부를 매일 끔찍할 만치 해내야 하는 자신의 현실이 너무나 싫었다고 했다.

    자신이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라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반항하진 않았을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물으면,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이유 같지 않은 답변밖에 들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수연이와 엄마는 날카로운 설전을 벌였고, 그럴수록 둘 사이의 골은 깊어만 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가장 큰 잘못은 20세기적인 사고로 새로운 21세기를 논하려는 수연이의 부모, 기성세대에게 있다. 교육학자 켄 로빈슨은 낡은 교육방식에 기댄 부모나 어른들의 강요가 자라나는 아이들의 소중한 꿈과 잠재성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을 자원의 고갈에 버금가는 위기라고 진단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제 ‘평평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석유를 태워 불을 뿜던 ‘레드’의 시대가 저물고,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감축을 위한 정책과 산업이 중심이 되는 ‘그린’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산업시대에 각광받던 직업은 더 이상 좋은 직업이 아니다. 이미 그 가치와 의미 자체가 사라진 일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니 부모부터 판검사나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이 여전히 미래의 중심 직업일 것이라는 도그마를 버려야 할 것이다.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21세기에 새로이 주목받을 직업군으로, 우리가 이미 목격하고 있듯 ‘연예산업’, ‘패션산업’ 같은, 과거에는 홀대받던 직업들을 꼽는다. 호르크스는 미래에는 개인의 창의적 손길이 필요한 일이 보다 유망하고, 부와 명성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단언한다. 호르크스 역시 미래에는 이전의 산업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자본과 잉여산물의 증식, 이전 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거의 모든 미래학자들은 미래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은, 학교에서의 영수 점수가 높은 아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다양한 지능과 재능들을 아우를 수 있고, 실전 경험이 풍부한 ‘창조적 인재’라고 말한다.

    지난 세기에는 수학이나 과학을 잘 하는 사람들이 주가를 올렸다. 그들의 학교 성적은 좋았으며, 회사에서 요구하는 인재도 이런 논리적 사고에 능한 사람들이었다. 상대적으로 수학과 과학에 취미가 없거나 재능이 부족한 이들은 이런 세상 구도에서 소외되었다. 주피해자들은 아무래도 여성들이었다. 우뇌형 인재들이었다. 나 역시 상담실에서 수학 성적 때문에 꿈을 접었다고 말하는 여성들을 자주 만난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이미 종언을 고하고 있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미래를 제대로 응시하라고 촉구한다. 그는 수 천 년 지속된 좌뇌 중심의 역사가 역전되고 있으며, 오히려 우뇌적 능력이 더 우대받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농경시대나 산업사회에서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능력을 요하는 일이 많았다. 따라서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더 많은 기회와 대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세상이 아니다. 

    다니엘 핑크는 미래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여섯 가지 능력으로 ‘디자인, 스토리, 조화, 공감, 놀이, 의미’를 꼽는다. 그런데 이런 능력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좌뇌 중심의 교육으로는 도저히 기르기 힘든 것들이다. 좌뇌적 사고는 논리적, 순차적, 언어적, 기능적, 분석적인 일을 주로 수행된다. 주어진 과제를 체계화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뇌적 사고에서는 동시적, 은유적, 심미적, 문맥적, 종합적 사고가 이루어진다. 더 많이 놀고, 더 자유롭게 대화하며, 더 많은 자유와 창작의 기회를 누릴 때 이 능력들은 신장된다. 아이의 수학성적이 떨어진다고 붙잡고 닦달할 것이 아니라, 아이의 다른 재능들이 꽃 필 수 있는 기회와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다니엘 핑크가 말하는 이상적인 인재는 이 두 가지 사고 모두에 능하고, 두 사고 작용이 조화를 이루는 인물이다. 나 역시 상담 받는 아이들에게 수학이나 영어 공부가 전혀 필요 없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부모라면 아이의 재능과 적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또한 세상의 변화를 앞서 감지해야 한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상식과 습관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이 인질범을 사랑하거나 신처럼 추앙하는 심리이다. 극한 상황에서 강자의 논리에 약자가 동화되는 심리를 나타낸 말이다. 한국은 여전히 교육경쟁이라는 거대한 인질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인질들 가운데 맨 앞에는 대개 부모들이 서있는데, 부모 역시 이 상황이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동시에 이 상황이 절대적인 진리인 양 떠받들기도 한다. 한국의 교육경쟁 구도가 마치 거대한 괴물신과 같아서 한 개인이 그 요구를 함부로 거부해서는 안 되며, 그랬다가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괴물을 믿든, 믿지 않던 나중에 벌어질 결과는 똑같다. 믿고 따른다고 더 행복해지지도, 거부하고 저항한다고 더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아니 부모가 현명해질 때 내 아이는 무지개를 잡을 수 있다. 그러니 틀린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수연이 사례의 경우, 수연이의 우울증 치료가 더 시급한 것이 아니었다. 수연이의 슬픈 마음을 틀어지고 있는 부모의 삐뚤어진 생각이 더 문제였다.

    나는 몇 시간 넘게 부모들과 수연이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생각도 어느 새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수연이 엄마는 어느 날, 지금까지 벌어졌던 일과, 아이의 고통과 자신의 독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긴 한숨과 함께 퍽 오랫동안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헬로스마일 심리센터 원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