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사람이 결혼해 설사 평생을 산다 해도, 결혼 기간이 내내 화평할 수는 없다. 때로 둘 모두든, 한 쪽이든 마음이 저만치 멀어질 때가 있고, 결혼생활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부부들은 잠시 떨어져 냉각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부부의 별거는 이혼에 비하면 조금은 신중한 선택일 것이다. 부부상담을 하다보면 별거 경험을 가진 이들을 자주 만난다. 하지만 다시 살아도 될 만큼 갈등이 줄었다고 판단해 다시 한집에서 살게 될 때 재결합 과정이 순탄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등이 단지 잠재했을 따름이지, 근본적으로 해소된 것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다.
2년 정도 별거하던 지예씨는 최근 다시 남편 성진씨와 살림을 합쳤다. 순전히 아이들 때문이었다. 어린 아들은 자신이 키웠고, 초등학교 다니던 첫째 딸아이는 남편, 정확히 말하면 시어머니 집에서 지냈다.
딸아이는, 가끔 만나긴 했지만 엄마를 몹시도 그리워했고, 아들 역시 한 달에 한 번 아빠가 놀아준 저녁에는 울며 아빠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예씨는 다시 한 번 같이 지내보자는 결심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시 살림을 합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둘의 갈등 역시 커졌고, 이러다가 이혼에 이르지 싶어 상담을 청했다.
별거하던 2년 간 지예씨는 남자친구가 없이 지냈지만,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성진씨는 몇 달에 걸쳐 한 여자와 교제했다. 그런데 흔한 스토리처럼 여자친구를 사궈 보니 아내의 소중함을 알겠더라는 것이었다.
재결합 결정은 지예씨가 내렸지만, 합칠 것을 종용한 쪽은 남편이었다. 재결합하며 지예씨가 가장 큰 고통스러웠던 점 역시 그랬던 남편을 다시 포용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네 사람이 다시 살게 되며 두 아이만은 너무나 행복했다. 매일 날 선 공방을 벌이면서도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지예씨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별거와 재결합 과정에서 부부만 마음을 다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심적 부담과 고통이 가해지는 쪽은 아이들이다. 딸 다솜이는 이미 소아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책을 무척 좋아하는 다솜이는 여러 권의 치유서를 나와 함께 읽었다.
원래 에리히 케스트너의『로테와 루이제』는 다솜이에게 읽혔던 치유서다. 정작 더 감동을 받은 쪽 오히려 지예씨였다. 에리히 케스트너는『하늘을 나는 교실』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독일의 아동문학가이다.
그는 살아생전, 나치의 박해와 같은 숱한 고난을 겪었지만 늘 희망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작품을 남기며 아동문학의 산맥을 이루었다. 내가 무척이나 아끼는 문학가기도 하다.
『로테와 루이제』의 원제는『두 사람의 로테』이다. 1949년 출간된 이래 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작품이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며 헤어졌던 쌍둥이 자매가 우연히 캠프에서 만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 바꾸어 엄마와 아빠의 집에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에피소드들을 담은 유쾌한 동화이다. 어린 린제이 로한이 쌍둥이 역할을 능청스레 연기한 영화『페어런트 트랩』의 원작 역시 이 작품이다.
캠프에서 만난 로테와 루이제는 서로의 눈을 의심한다. 세상에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다니.
캠프의 지도교사들은 두 아이가 쌍둥이일 것이라는 심증을 느끼고, 두 아이가 한 방에서 지내도록 한다. 처음에는 서로 다투던, 로테와 루이제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의 생년월일이 같은 것을 알고부터 차츰 두 사람이 쌍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부모가 이혼하며 독일 뮌헨과 오스트리아 빈에 각각 떨어져 살게 되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각자 신분을 바꾸어 엄마와 아빠에게 돌아가기로 공모한다. 그리하여 로테는 빈에 사는 아빠 팔피에게, 루이제는 뮌헨에 있는 엄마 쾨르너에게 돌아간다. 차분하고 여자 아이다운 로테에 비해 루이제는 말괄량이에다 씩씩한 성격이다. 루이제는 로테가 되면서 평소 로테를 괴롭히던 남자 아이를 혼내주기도 한다.
이야기 역시 이런 재밌는 에피소드를 많이 만드는 루이제의 관점에서 이끌어진다. 하지만 아빠 팔피씨에게는 결혼을 목적으로 쫓아다니는 겔라흐라는 여성이 있다. 아빠와 겔라흐 양이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에 신경성 열이 난 로테는 앓아눕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엄마와 루이제는 아빠가 사는 빈으로 찾아가고, 엄마와 아빠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재결합한다.
지예씨는 다음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로테 역할을 하며 지내던 루이제를, 점점 이 아이가 루이제일지 모른다고 의심하던 엄마가 알아채는 장면이다.
루이제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이제!” 쾨르너 부인은 부드럽게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한껏 팔을 벌렸다. “엄마!” 루이제는 달려들어 엄마의 목에 매달렸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쾨르너 부인은 무릎을 꿇고 앉아 떨리는 손으로 계속해서 루이제를 쓰다듬었다. “내 아기, 내 예쁜 아기!” 둘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2년 만에 다솜이가 다시 엄마와 살게 된 날, 다솜이 역시 한참을 엄마를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 부분을 읽으며 지예씨는 그때가 계속 떠올랐다고 했다.
지예씨와 성진씨는 아주 깊이 사랑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결혼을 하며 서로에게서 결혼 전에는 본 적 없던 단점들을 발견하고 차츰 실망해갔다.
가령 성진씨는 지나치게 꼼꼼한 지예씨의 성격이, 지예씨는 늘 남의 이야기에 좌지우지하는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못마땅했다. 첫째를 나은 후 둘의 기싸움은 점점 심해졌다. 그리고 좀 나아지려나 싶어 둘째를 낳은 후에도 갈등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결국 둘째 마루가 세 돌 될 무렵 두 사람은 조금 떨어져 지내자고 합의한 뒤, 별거에 들어갔다.
처음 상담실에 들어온 날도 둘의 기싸움은 팽팽했다.
나는 가족은 사랑의 공간이지, 세력 싸움의 링이 아님을 반복해서 상기시켰다. 노트에 커다랗게 음양의 태극 모양을 그려 보이고, 이런 아시아적 상징처럼 두 한없이 모자란 사람이 만나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것이 부부이고 가족이지,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자신의 세력 아래 두고자 애쓰는 파워게임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두 사람에게는 자신들의 열렬했던 사랑을 떠올리도록 하는 상담이 적잖은 효과를 보였다.
부부치료 기법 가운데 ‘이마고 부부관계치료(Imago Relationship Therapy)’라는 것이 있다. 부부 각자의 어린 시절의 상처나 부부가 풀지 못하는 미해결의 과제에 집중해 서로의 힘겨루기나 상호갈등을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풀어내는 부부치료법이다. 이마고 부부관계치료에서 자주 원용되는 것이 첫사랑 회복하기이다.
여기는 연애시절이나 신혼 때의 깊고 그윽한 사랑을 다시 찾는 활동들이 포함된다. 상담의 조력자는 눈을 감고 그때를 회상하고 하며, 서로 따뜻하게 안아주게 하고, 함께 바라보며 즐겁게 웃도록 이끌면서 첫사랑 회복을 돕는다.
두 사람은 서먹해하면서도 내가 이끄는 대로 잘 따라하며 둘에게 여전히 사랑이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랑이 있으니 난관은 없을 터이다.
나는 몇 가지 더 간단한 시범을 보인 후, 집에서 두 사람이서 다큐멘터리『이마고IMAGO - 신혼을 돌려드립니다』를 함께 본 뒤 몇 가지 절실한 상호작용을 실천해보라고 권했다. 가령 서로에 어린 시절에 대해 경청하고 깊이 공감해보기나 서로의 분노감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기 등이었다.
다솜이에게도 특명이 내려졌다. 다솜이는 두 사람이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며 열성을 보였다. 그 몇 가지는 엄마 아빠에게 함께 자신을 안아달라는 요청을 자주 할 것, 로테와 루이제처럼 엄마와 아빠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을 자주 만들 것, 엄마 아빠가 다툴 때 자신 역시 마음이 속상하다는 심정을 표현할 것 등이었다.
대미는『페어런트 트랩』이 장식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 영화 감상을 미루어왔던 가족은 상담이 무르익을 즈음 시청했다. 온 가족이 함께 거실에 둘러앉아 영화를 보며, 멋모르는 막내 마루만 빼고는 지예씨도 지환씨도, 딸 다솜이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다음 상담에서 기적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날 밤 그 집에서는 기적과 같은 사랑의 꽃이 피지 않았나요?”
순간, 지예씨와 지환씨는 서로를 바라보며 따뜻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둘을 일으켜 세우고 힘껏 껴안도록 했다. 둘은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
[박민근의 심리치료] 부부갈등과 자녀의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