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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윤서는 최근 집중적인 상담을 받고 있다. 유치원 시절부터 아이는 유치원 등원을 거부하거나 유치원 다니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유치원 담당 교사들로부터 자주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때로는 산만한 모습을 보여 초등학교 생활이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마다 윤서 어머니는 유치원에 비해 학급 인원도 많고, 스케줄도 빡빡한 초등학교에서 아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다. 윤서에 대한 종합적인 심리검사를 진행해보니, 아이의 사회성 발달이나 자기조절력, 실용지능의 측면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윤서는 사회성과 학교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
실제 매년 3, 4월이 되면 초등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람에 상담센터가 퍽이나 바빠진다. 이른바 ‘신입생증후군’ 때문이다. 신입생증후군을 겪는 아이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이런 마음을 감추거나 억제하다보니 구토나 두통, 복통과 같은 신체화 증상, 심리적 문제가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심리문제를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신입생증후군은 학교 입학이나 등교 자체가 스트레스 원인(stressor)이 되는 심리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을 상담해보면 아이들이 겪는 문제가 단순히 달라진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적응장애라고만은 볼 수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예전에 이미 형성된 불편한 심리나 경험들이 보다 본질적이고 더 큰 적응문제의 원인일 수 있으므로, 조금은 심도 있는 관찰과 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들을 꼽자면, 급격히 저하된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 문제, 과잉보호로 인한 스트레스 대응능력, 자기조절능력 저하 등과 같은 문제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 대응력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는 전반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의 미숙과 관련이 무척 깊다.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양육환경은 아이들의 사회성을 급격히 저하시키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아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변화에 따른 아이들의 희생과 소외라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네댓 살만 되면 동네 공터에서 하루 종일 지내던 예전 아이들(지금의 기성세대)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아파트와 같은 격리된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갇혀 지낼 때가 많다. 사실상, 우리가 아이의 사회성을 증진시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보육기관들도 제몫을 다하지는 못한다.
하버드대학에서 발간된,『사회성 발달 보고서』에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것만으로 진정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부모는 아이를 보육기관에 보낸다고 아이의 사회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이 보고서에서는 아이들을 자유놀이와 같은 놀이활동보다는 학습지, 교구놀이와 같은 학습 중심의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부모의 욕심 역시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그르치는 중대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부모의 과잉보호, 형제가 거의 없는 가족구성 등 다양한 원인이 아이의 사회성을 해치는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사회성 발달 미숙은 그 자체가 아이의 스트레스 대응력도 떨어지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된다.
폭넓은 대인관계의 경험과 시간은 아이의 스트레스 대처능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심리적으로 미숙한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소위 신입생증후군이라는 것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회성 문제와는 조금은 다른 또 한 가지 측면은 아이의 주의력 문제이다. 최근 스마트 기기에 대한 노출 빈도가 높아지며, 아이들의 주의력에도 상당한 문제가 생겼다.
이런 매체 사용의 증가는 초등학교 생활에 꼭 필요한 주의력인 소위 ‘초점성 주의력(goal-directed attention)’을 훼손하는 활동임에 틀림없다. 초점성 주의력이 미처 제 연령에 맞게 발달되지 않은 아이들은, 비록 학습활동 자체가 문제가 되는 ADHD와 같은 심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오랜 주의력을 요하는 학교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로서는 아이가 혹 이런 주의력 문제는 없는지 살피는 지혜도 꼭 필요하다. 물론 이에 앞서 사회구조적 측면에 대한 비판도 충분히 개진해볼 수 있다. 비슷한 수준의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들에 비해 우리의 교육 여건은 열악하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자면 갑자기 수십 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게 되는 초등학교 환경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닌 것이다. 반드시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교육공학자는 한 명의 교사에게 적정한 담당 학생 인원을 열대여섯 명 정도로 본다.
특히 올해 초등학교 신입생의 수는 전에 없이 많다고 하니,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한 교육적 지지와 도움의 손길은 더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가 발생한 후 아이를 이끌고 상담을 받는 것은 물론,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닐 것이다. 윤서는 우리 센터에서 이루어진, 인성발달 독서치료와 또래 아이들이 함께 즐기는 집단 미술치료 덕분에 불과 몇 주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이렇게 집단치료를 진행하면 큰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예전에는 낯선 사람이나 아이를 만나면 엄마 치마폭에 숨던 윤서는 조금은 자신 있게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부모의 이기심이나 사회의 압력이 우리 아이들의 제대로 된 성장과 발달을 저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좀 더 자유로운 놀이활동과 늘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들일는지 모른다. 아이들의 여러 가지 적응스트레스는 아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어른들의 문제인 것이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
[박민근의 심리치료] 신입생증후군은 내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