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화로 얼룩진 부모자녀 관계개선을 위한 스토리텔링심리상담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4.01.22 16:04
  • 아이는 상담실에 들어온 이후 줄곧 눈물을 흘렸다. 슬픈 눈물이 아니라, 분노에 겨운 눈물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시키는 공부를 하지 않고 미루는 성격을 고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아이는 자기를 끌고 온 엄마와 이 상황이 못내 분에 겨웠다.

    문제의 한 가운데에 화가 있었다. 아직 초등학교 4학년에 불과한 현아는 어른들에게나 있을 법한, 명치끝이 타오르는 듯한 작열감을 자주 느끼곤 했다. 현아의 스케줄은 좀 과장하자면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매일 여러 개의 학원 수업과 특별활동, 그리고 과외수업을 해내야만 하는 현아는 화에 휩싸여 있었다. 아이는 화가 난다, 너무 짜증이 난다는 말을 계속 내뱉었다. 아이 마음에는 구체적이거나 특별한 대상을 찾을 길 없는 화나 짜증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현아의 엄마, 영주씨도 어릴 적부터 원래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행동이 굼뜨거나 만족스럽지 않으면 지체 없이 화를 쏟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화는 이제 괴물이 되어 현아도, 그리고 화를 내뱉는 영주씨 자신도 마음들을 활활 불태우고, 아무렇게나 상처를 내는 날카로운 흉기처럼 변해있었다. 현아의 아빠 역시 화를 피해 심리적으로 가족의 울타리 저 밖으로 도피해 있었다.

    가끔 현아와 영주씨가 서로 화가 나 화를 뿜을 때면 고성과 폭언이 오가며 온 집안이 활활 타올랐고, 서로의 마음에는 새까만 그을음이 들어앉았다. 현아도, 영주씨도 화를 통해 상대방을 통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용한 도구이다.

    화 내는 이의 말을 곧이 들을 사람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서른 즈음, 나 역시 내면에 화가 켜켜이 쌓이던 때가 있었다. 누구도 성미를 돋우는 사람이 없건만 화는 끝 간 데 없이 차올랐다. 나는 분풀이 대상을 찾아다녔다. 그때 샘물처럼 화의 불씨를 꺼준 책이 있다.

    2002년 봄께 출간된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 종교지도자 틱낫한 스님의『화』라는 책이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불교의 가르침을 더 좇게 되었다. 틱낫한 스님은 화 내는 일은 몸의 아까운 정력과 에너지만 밖으로 쏟을 뿐 화의 근원과 실체는 여전히 자기 안에 남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화내기는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심신도 훼손하는 일이다. 지켜보는 이마저도 괴롭게 만든다. 화는 화가 드러나는 순간 관계한 모든 이를 심리적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일이다.  

    낡은 심리치료 기법 가운데 내재된 분노가 들어찼을 때, 대리물이나 대리 상황에서(가령 연극적인 형식으로) 화를 발산하라고 권고하던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는 현대적 치료에서는 이제 금기시된다.

    최신 뇌과학에서는 화를 참지 않고, 그대로 쏟아내면 화를 내는 뇌신경이나 영역이 활성화돼 화를 더욱 통제할 수 없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화 잘 내는 사람의 뇌는 일반인과 다르다. 화 내는 것이 뇌의, 마음의 습관이 되고 만 것이다.

    예전 우울증과 절망에 빠진 나머지, 나 역시 쓸데없이 아무데나 화를 배설하던 일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나름은 방법을 찾아다녔다. 가령 숲에서 작대기를 들고서 아무 덤불이나 마구 치며 화를 풀곤 했다. 하지만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서는 더는 그러지 않게 되었다. 조금 더 영적인 관점에서 스님은 화의 실체에 접근한다.

    “화의 실체를 파악해서 그것을 끌어안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자각의 에너지가 생성되게끔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호흡과 보행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자각이 없으면 그 무엇으로도 우리는 위안을 얻을 수 없다. 베개를 아무리 주먹으로 쳐도 소용없다.

    베개를 주먹으로 아무리 쳐봤자 화가 없어지지 않고, 화의 실체를 더욱 보지 못하게 될 따름이다. 아니, 베개의 실체조차도 보지 못하게 된다. 베개의 실체가 눈에 보이면, 그것이 단지 베개일 뿐 적이 아니란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베개를 주먹으로 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지금 내리치고 있는 것이 베개일 뿐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물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물과 진정으로 접촉을 해야 한다. 어떤 사람과 진정으로 접촉해보지 않고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진정으로 알 수 없다. 자각이 없으면 우리는 그 어떤 사물이나 사람과 진정으로 접촉을 할 수 없다. 자각이 없으면 화의 실체를 알 수 없고, 그리하여 화에게 잡아먹히고 마는 지경이 될 수 있다.”

    틱낫한 스님은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깨어있음’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폭력적 대응과 화해의 중요성, 용서의 우위를 강조한다. 화는 화해와 용서가 아니라면 치유하기 어렵다고 전언한다. 이 책과 더불어 비로소 나는 내 안의 화의 원인에 대한 긴 자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좌절이나 절망, 적개심, 허망함, 무기력과 같은 감정들이 생성된 처음의 사건들과 과정들을 떠올리면서, 그것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려고 정진했다. 마음을 깨웠다. 

    그러는 한두 해가 흐르면서, 내 안의 화는 차차 가라앉고, 정갈한 마음이 조금씩 샘솟았다. 영주씨에게도 똑같이 이 책을 권하며, 그때 내가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깨어있음을 따라가도록 도왔다.

    처음 그녀는 완강했다. 자기보다는 딸이 더 문제라며 딸의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틱낫한 스님은 이럴 때 “나는 곧 타인이다. 아들 때문에 화가 난 사람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아들이 곧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아들이 곧 나다”라고 가르친다. 화의 뿌리는 실은 영주씨 안에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과 부모와, 살아온 사연들 언저리에 있었다.  

    비로소 수용하기 시작한 영주씨는 그렇게 화를 내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좌절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고, 불행한 느낌을 받았던 많은 사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화(火)는 화(和)로 변했다. 영주씨가 화의 불씨를 끄자, 아이는 웃기 시작했고, 떠나 있던 남편도 솜털 같아진 그녀 곁으로 다시 다가올 수 있었다.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 달라이 라마,『용서』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