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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전이 돼버린 파스빈더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 우리는 ‘지속적인 불안이 만들어내는 커다란 심신의 구멍’이라는 상징과 암시를 만난다. 시종일관 등장인물들은 불안을 느끼고, 불안이 끝나는 순간이 도래했을 때 주인공의 몸에서는 위궤양으로 인한 커다란 구멍이 발견된다.
우리는 불안과 맞닥뜨리며 살아간다. 인생에서 고통과 좌절은 찰나지만 불안은 영구적이다. 우리는 아주 긴 시간을 불안과 동거한다. 그 동거는 평생을 걸쳐 지속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20살 현아씨는 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 상담실에 들어섰을 때 미처 꺼두지 않은 방안 닥트의 회전음에 적잖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가끔 환청이 들리고, 눈을 뜬 대낮에도 무서운 이미지와 기분이 밀물처럼 밀려들곤 했다.
그녀는 처음 들어와 자신이 무서워하는 대상들을 쭉 늘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공포감이 깊어진 여러 계기와 사건이 마치 계산된 것처럼 놓인 불행의 징검다리라고 믿고 있었다. 가장 치명적인 징검다리는 가고 싶지 않았던 대학에 입학한 후의 사건이었다. 금방 그만 둘 생각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 학교에 한 남자가 있었다. 이미 애인이 있는 남자 동기였다. 그는 잘 생겼고, 언변이 좋았다. 두 사람 다 과일을 맡으면서 평소 접촉할 일이 많았고, 갈수록 서로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기와 함께 MT를 갔다가 일은 벌어졌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스스로 기억하기에 자신이 술에 취해 그 남자 동기에게 “너, 나랑 자고 싶냐?” 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몇몇 동기와 선배가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었다. 현아씨는 술에 취해 바로 잠들었고, 자는 내내 잠꼬대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여자 동기의 증언이었다. 얼마 후 그녀는 자퇴했고, 그때 그 일 때문에 자신을 자책하며 점점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녀의 강박적인 생각은 깊어졌고, 나중에는 대중 공간에 나가는 일이 힘든 대인공포증이 찾아왔다.
그녀의 성장에는 불안이 깊어지는 여러 계기들이 있었다. 자기혐오나 완벽주의가 깊어질 만한 성장 과정을 겪었으며, 성적 문제에 대한 심한 거부감 역시 다소 불행했던 부모의 결혼생활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개인마다 그 원인이 다르기에 불안의 구체적 실체를 찾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일면 우리의 불안감은 공통성을 띠기도 한다. 이미 현대인의 불안을 해석하고 원인을 찾는 여러 이론이나 주장들이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바보상자가 유혈의 장면을 곧바로 내보내며, 이에 따라 아무리 보잘것없고 하찮은 테러 행위라도 공포를 한껏 유발할 수 있다”고 직설화법으로 공포의 전달과정을 기술한다. 급증하는 새로운 매체들은 공포를 마치 자신들의 가장 신뢰하는 자원 가운데 하나로 삼는 듯하다. 금세기 초반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로 우리는 나와는 거리가 먼 공포를 더 즉각적으로 배달받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다만 직접적인 공포자극의 공급만이 문제는 아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바스 카스트는 불안의 근원을 자유의 증대에서 찾는다.
“자유는 그 자체로 독을 가지고 있다. 많은 가능성은 우리를 해방시키지만 동시에 압박하기도 한다. 많은 가능성은 우리에게 그 가능성들을 이용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를 따르지 않는 자, 너무 일찍 인생행로나 짝을 결정해버려 많은 대안을 내팽개친 자는 기회비용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카스트의 견해는 우리 시대가 가진 좀 더 근본적인 불안에 대한 이해로 여겨진다. 자유가 팽창하는 것은 인류의 선한 투쟁과 노력 덕분이지만, 그로 인해 더 많고 다양한 불안 역시 옵션으로 지급받고 말았다는 것이 바스트의 견해이다.
프랑스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커리어에 대한 기대감이 현대인의 불안감을 증대시키는 첫 번째 요인이라고 꼽는다. 공고했던 삶의 체계들이 선택과 자유로 채워지는 동안, 자기 삶에 대한 더 높은 기대심리가 우리를 불안의 감옥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성공에 대한 강요가 심하다. 하향식 비교는 순진한 것이며, 언제나 사람들에게 별과 저 높은 곳을 꿈꿔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런 성취 중심의 사회에서 성취의 힘이 부족한 이들은 일상적으로 불안을 체험한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한국인의 불안을 조금 더 사회학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그는 IMF 사태 이후 한국사회에는 사회가 촉발시키는 부정적 감정이 가족이나 유전자에서 비롯되는 부정적 감정을 능가하고 말았다고 진단한다. 무한경쟁 구도나 지독한 성과주의 등, 문제는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문화와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현아씨의 불안감에도 이런 일반적인 불안 요인들이 더불어 작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성공이나 완벽주의에 대한 압박이 유달리 심했다. 공부가 잘 안 되는 것이나, 지방대학을 간 일, 좋은 학교를 선망하는 마음들로 마음의 교통정리가 힘들었다.
하지만 현아씨에게 좀 더 본질적인 공포의 원인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 헌신적이지는 않은 분이었지만, 16살에 맞이한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가 삶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심적 바탕을 형성했다. 그 이후 그녀는 실패나 실수, 허점, 결핍, 미완성과 같은 소멸과 죽음을 상기시키는 단어들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상처받은 유년시절, 가난, 힘든 직업생활, 술, 신세 한탄, 그리고 암과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인생스토리를 마치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일처럼 현재화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꿈과 환각이 비록 무의식적 성충동과 관련 있을는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염결성을 훼손당하게 한 그날의 실수가 그녀를 오랫동안 강력하게 옥죄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애증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인생교과서였다. 나는 현아씨가 아버지에 대한 편협한 이해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느꼈고, 또 설명했다.
다섯 번째 만남에서 현아씨와 <아버지와 딸>이라는 만화영화를 봤다. 오스카상 수상작이기도 한, 단편 애니메이션 <아버지와 딸>은 헤어짐을 깊이 있게 생각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10분 남짓의 짧은 이 애니메이션에는 어린 시절 헤어진 아버지를 영원히 그리워하는 순진한 여성이 등장한다.
소녀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작은 배를 타고 타지로 떠난다. 소녀는 비가 올 때나 바람이 불 때나 아빠와 헤어진 강둑에 서서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그리움은 이 작품을 지배하는 정서이다. 숙녀가 되어서도, 중년이 되어서도, 그리고 할머니가 될 때까지 그 그리움은 이어진다. 한없는 그리움은 죽음 너머의 환상지대까지 이어진다. 노인이 된 소녀는 죽는 순간, 혹은 환상 속에서 아버지와 재회한다.
이 소녀처럼 현아씨 역시 이별로 인한 상처나 그로 인한 불안감을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승화하기를 기대하면서, 애니메이션을 함께 감상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동안 현아씨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나는 현아씨에게 아버지의 삶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아내로 맞이하고, 사랑스런 아이를 낳고, 자식들이 잘 성장하도록 열심히 일했던 삶이었다고 다시 적어보자고 권유했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
[박민근의 심리치료] 불안한 사람을 위한 스토리텔링 심리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