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소아청소년들에게 독서치료가 더 효과적인 까닭은?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3.10.22 16:34
  • 소아청소년에게 여러 심리치료를 진행해보지만, 그 중에서도 독서치료는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는 어떤 치료가 더 좋은지 우열을 가리기 위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상담센터를 찾는 어린이들의 경우, 센터에서는 미술치료나 놀이치료를 진행하더라도 나는 거의 예외 없이 어머니들에게 아이에게 집에서 직접 행할 수 있는 독서치료 방법을 전수한다. 독서치료 방법을 알려주는 몇 권의 참고서를 정해주고, 적당한 치유서를 함께 읽어가도록 독려한다. 그러니 센터에서 미술치료만 하더라도 가정에서도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시간이나 양 면에서 더 오래 엄마표 독서치료에 노출되기 때문에 더 주도적인 기여를 하는 치료 역시 독서치료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부모에 대한 양육코칭과 대화법 교정, 가족의 생활개선 프로그램이 함께 이루어져 보다 통합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 센터를 찾는 소아청소년들의 예후나 치료 효과가 두드러진 까닭이 단지 산술적으로 두 가지 치료를 병행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비록 아마추어이긴 하나 엄마가 진행하는 독서치료의 효과가 제몫을 톡톡히 발휘하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지만 엄마는 힘이 세다. 늘 목격하는 바이지만, 마음 아픈 아이를 둔 엄마는 누구보다도 큰 능동성과 에너지를 발휘해 아이를 좀 더 긍정적인 사고와 감성 지대로 이끌어간다. 독서치료는 이런 엄마의 열정을 가장 멋지게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원동력을 성장 서사를 배워나가는 아이들의 내적 능력에서 찾는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서구에는 의학적 치료에 서사나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의사이자 영문학자인 컬럼비아대 리타 샤론(Rita Charon)은 ‘내러티브 의학(Narrative Medicine)’을 내세우며 의사에게는 질병과 관련된 환자의 얘기를 이끌어내고 풀어낼 줄 아는 서사 능력(narrative competence)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의사의 덕목으로 환자에게서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이를 서사화하는 능력을 꼽는다. 샤론 박사는 수치화되고 계량화된 차트만 보유한 환자들에 비해, 자신의 증상과 호전 상태를 스토리로 풀어놓은 병상일지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더 빨리 쾌유하는 이유를 여러 요인들로 설명한다.

    우선 그녀는 그 이유로 서사 능력을 갖춘 의사들은 환자와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더 명쾌하게 환자들의 질병에 가닿을 수 있고, 이런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질병 스토리를 인지한 환자들은 더 능동적인 치료적 실천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즉 자기 병에 대해 주도적인 이야기하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치료 효과가 더 좋은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극복의 서사, 성장의 서사를 자신의 삶에 고스란히 대입하고 싶어 한다. 자기 삶이 멋진 스토리가 되길 기원하는 것이다. 결국 환자에게 이야기를 통한 심리적 동기부여나 면역력 증대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이야기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심리적 개선을 유도하고 능동적 실천에 이르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

    이야기에 치유의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니 인간은 이야기가 요구하는 능동적 변화에 적응하려고 한다. 서사학자들은 흔히 ‘프로이트’식으로 인간의 무의식은 이야기를 욕망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야기와 인간의 친밀성은 보다 본성적인 차원이 존재한다.

    금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언어학자로 지목되는 스티븐 핑거는 인간에게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유전적 기제와 함께 그로 인해 부과된 언어본능이 잠재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진화가 언어능력을 배양하기도 했지만, 언어본능이 인간의 진화를 도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영문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브라이언 보이드는 그의 책 <이야기의 기원>에서 인류는 생존과 진화를 위해 문화와 이야기를 끌어안았으며, 이야기는 인간을 존속시키고, 변화시키는 가장 핵심적인 촉매제였다고 말한다. 특히 진화의 바탕인 인간의 놀이본능은 언어본능과 결합해 인간에게 이야기본능을 심고, 확장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인간의 이야기본능, 혹은 이야기와 인간은 함께 ‘공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생 인류에게는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이야기에 깊은 영향을 받는 이야기의 본능과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이드의 주장대로라면 인간의 이야기본능은 이성적 수준, 무의식의 수준이 아닌 유전적 차원의 문제일는지 모른다.

    독서치료, 특히 스토리텔링 치료가 유독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을 증진하는 데 유용한 까닭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원하는 이야기는 비극이 아니라 삶이나 희망과 관련이 깊다. 특히 낙관적인 사람,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연관된, 내면화된 긍정적 서사를 가지고 있다. 

    긍정심리학의 구루 가운데 한 명인 릭 스나이더 교수는 행복한 삶을 위해 희망 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희망을 관철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가령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경을 극복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가르치는 일은 이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담 소아청소년의 부모들에게 독서치료를 알려주며 자녀가 이런 내면화된 긍정 서사를 고스란히 품을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캐롤 드웩 교수의 성장형 사고에 대한 설명을 잊지 않는다. 아이가 노력과 열성을 통해 자신이 늘 성장하고 있다고 믿도록 성장형 사고를 가르쳐야 완벽주의나 선택의 불안, 과업에 대한 공포감을 없앨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즉 성장형 사고 훈련이란 자신의 지능이나 재능, 외모와 같은 타고난 고정적 부분보다는 노력과 변화를 통해 늘 새롭게 변하고 성장해가는 자아상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은 아이들에게 성장형 사고를 가르치는 가장 좋은 참고서이다. 조금 어렵지만 도로시 허먼의 <헬렌 켈러 A Life>와 같은 전기나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은 성장형 사고를 증진하기 위해 내가 자주 아이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