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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심리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심리치료나 상담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얼마 전 심리상담이나 심리치료가 필요한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10분의 1 정도만이 실질적인 치료에 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마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들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심리상담이 필요한 아이들 가운데 10-20% 정도의 아이만이 실질적인 치료를 받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스트레스지수나 아동의 불행감, 자살자수 등 우리의 심리건강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국가별 스트레스지수를 조사해보면 상대국가가 따라올 수 없는 높은 수치를 보인다. 우리 어린이들의 주관적 행복감은 언제나 비교 대상국 가운데 꼴찌를 차지한다. 당연히 한국인의 자살률은 다른 국가가 범접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심리복지 정책은 때로는 후진국보다 더 못할 때가 많다. 아동의 심리상담이나 치료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적 지원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인성과 감성능력을 형성하는 아동청소년기의 심리문제는 나중에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문제가 방치되는 것이 지금의 애석한 현실이다. 아이들이 내적 건강을 유지하며 자라야 사회의 유대와 안정도 보다 견고하게 지속될 수 있는 이치지만 이런 기본적인 일에 우리 사회가 힘을 쓸 여력이 모자라 보인다.
부모가 나서서 아동의 심리문제를 해결하기 나설 때라도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치료에 임하는 대부분의 부모나 가족들 역시 치료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을 호소한다. 심리센터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자주 이런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과 대면한다. 오히려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서 더 아동의 심리문제가 빈발하므로, 부모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선 경우 만만치 않는 치료비용은 한층 감당하기 어려운 중압감을 가져다준다. 얼마 전 상담을 받기 위해 온 복희네도 마찬가지였다.
복희의 부모는 복희가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를 하며 아이의 양육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일을 하는 엄마의 귀가는 대개 자정에 가까워야 하고 날품 일을 하는 아빠 역시 잦은 야근이나 출장으로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아이는 갈수록 산만해지고, 우울해지고, 불안해졌다.
학교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복희 문제로 어머니와 잦은 상담을 했고, 복희의 부모들은 아이를 더 방치했다가는 큰일이 나겠다는 걱정과 우려에 결국 상담센터를 찾았다. 검사를 해보니 복희는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복희 부모들은 막상 상담비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눈이 캄캄해졌다. 아이가 적어도 6개월은 상담치료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 비용을 대는 일이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상담 비용을 선납할 경우 상당 정도 비용을 할인해드릴 것을 제안했지만, 부모들은 목돈을 낼 형편이 못되는 처지라 매회 방문할 때마다 비용 처리를 하겠노라고 했다.
얼마 후 방문하겠다던 기일에 오지 않아, 직원이 전화를 걸었더니 비용이 부담이 되어 다음 기회에 받겠노라 하며 치료를 미루고 말았다.
심리센터를 운영하다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복희네와 달리 상담과 치료에 임하더라도 부모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치료가 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치료비용에 대한 현실적인 부담감이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심리센터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찾기 위해 더욱 매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동심리 상담과 치료에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분들을 초빙하고, 상담진끼리도 늘 의견을 개진하며 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모색하게 된다. 당연히 때로는 협진이나 교차 진료를 도모하기도 한다. 또 아동의 치료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가족치료나 양육코칭을 접목하고, 아이들에게도 가정에서 자구적으로 할 수 있는 독서치료적 접근이나 인문철학치료적인 개입을 시도한다.
가령 어린이에게 바른 가치관과 삶의 목표를 되살려주는, 독서치료에 접목된 인문철학치료는 매우 좋은 치료효과를 가져다준다. 또한 긍정심리치료나 생활개선치료와 같은 외국에서 이미 검증된 질 높은 첨단치료법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되고, 때로는 드라마치료나 영화치료 같은 효과적면서도 극적인 치료법을 단기적으로 개입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모 개인이 막상 책임져야 하는 경제 부담은 여전히 가족구성원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개인이 겪는 어려움 모두를 국가가 도울 수 없다 하더라도 개인적 판단으로는 적어도 아동과 청소년의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돕는 일은 시급하면서도 공동체의 힘이 반드시 동원되어야 하는 중대한 일로 여겨진다.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대안이 마련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단언컨대 이는 국가가 금연이나 출산정책에 신경 쓰듯 반드시 필요하고 중대한 일일 줄 믿는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
[박민근의 심리치료] 아동심리상담의 현실과 제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