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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이 심리상담에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책만큼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매체는 드물다. 임상에서 책, 혹은 독서치료는 미술치료나 놀이치료가 가닿기 힘든 깊은 영감의 영역으로 아이를 인도한다.
예를 들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볼프 에를브루흐의 『내가 함께 있을게』는 근사한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부모의 온정과 사랑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권정생 선생의 『엄마 까투리』가 뭉클한 감동과 여운을 전한다.
이렇게 책은 좋은 심리치료 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심리적 상처로 아파하는 아동에게 지속적으로 책을 읽히는 일은 근원적인 치유와 궁극의 성장을 얻어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보면 이미 책에서 멀어지거나 책을 기피하는 아이를 만날 때가 많다.
다른 기관에서 ADHD 판정을 받은 7살 지후는 꽤 오랫동안 책과 멀어진 채 지내온 아이였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탓에 할머니 손에 자랐고, 아이는 자연스럽게 TV, 컴퓨터, 스마트폰에 길들여져 버렸다. 가끔 엄마가 여유가 생길 때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 하지만, 아이는 짜증을 부리거나 싫증을 내며 거부하곤 한다. 엄마도 독서가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만, 완강하게 거부하는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힘들 때가 많다.
나는 지후 엄마에게 지후가 전형적인 기질적 ADHD보다는 동영상 시청 과잉 때문에, 또 주의력 향상 활동이 부족해서 형성된 후천적인 주의력 부족 증상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전문가와 부모가 함께 6개월 정도 독서친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아이가 변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자극도가 낮은 책에는 벌써 흥미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늘고 있다.
통계상으로도 우리 어린이들의 독서율은 갈수록 낮아지는 실정이다. 부모의 열성이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의 독서의 질 또한 점점 나빠지는 여건에 처해있다. 이미 동영상에 길들어져 책 읽기를 싫어하게 된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끈기 있게 책 읽는 훈련을 하지 않아 책 읽기를 회피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책을 읽어 책에 대한 염증이 커진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학습스트레스 탓에 책 또한 멀리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학습만화에 빠져 활자가 많고, 생각할 것이 많은 책 읽기가 귀찮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상담을 해보면 이런 경우 어떻게 다시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엄마들이 무척 많다. 꼭 치료적 차원이 아니라도 아이에게 책의 소중함과 가치를 심어주는 방법을 고민하는 부모나 어른들이 많을 줄 안다. 아이의 독서애호감을 높이려면 우선 아이들이 가진, 책과 독서에 대한 흐트러진 생각과 관심을 바로잡아야 한다.
나는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를 만났을 때 상당 기간 아이가 다시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독서 친화 자극을 시도한다. 그러는 이유에는 상담이 끝난 후에도 아이가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내적 성장을 이어갈 수 있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책 가운데는 독서의 긍정적 의미를 깨닫지 못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들이 있다. 다음은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내가 많이 사용하는 독서처방전과 독서목록이다. 이 책들을 상담 어린이의 엄마들에게 적어주기도 하고, 내 독서치료 프로그램에 직접 조금씩 적용하기도 한다. 모두 책 읽기의 의미와 가치, 재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도서들이다.
『도서관』(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시공주니어)
『아름다운 책』(클로드 부종, 비룡소)
『책 읽기 좋아하는 할머니』(존 윈치, 물구나무)
『내가 책이라면』(쥬제 죠르즈 레트리아 글, 안드레 레트리아 그림, 국민서관)
『책 먹는 여우』(프란치스카 비어만, 주니어김영사)
『도서관이 정말 좋아요』(마르타 아빌레스, 파란자전거)
『책 읽어주세요, 아빠!』(니콜라 스미, 한국프뢰벨)
『체피토, 뭐하니?』(엘리사 아마도 글, 마누엘 몬로이 그림, 북스토리아이)
『도서관에 간 사자』(미셸 누드슨 글, 케빈 호크스 그림, 웅진주니어)
『책만 읽고 싶어하는 아이』(소냐 홀트 글, 안나-클라라 티드홀름 그림, 아래ᄋᆞ)
『멋진 책이 될래요』(스기야마 가나요, 국민서관)
『그래, 책이야!』(레인 스미스, 문학동네)
『책벌레 피요 』(비비안 만소우르 만수르 글, 정희경 그림, 하얀풍차)
『세계 명문가의 공부습관 』(최효찬 글, 천현정 그림, 스콜라)
이 중에서 책을 너무 좋아해 여러 일을 겪고, 결국 멋진 작가가 되는 여우의 이야기를 다룬『책 먹는 여우』는 독서친화 자극을 제공했을 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 가운데 하나이다. 상징과 비유들이 많아 아이들이 스스로 그 숨은 뜻을 찾아내며 읽다 보면 독서에 대한 좋은 생각들에 다가가기도 그만큼 좋다.
반면 독서나 공부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는 책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책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책도 있다. 책이 싫은 아이조차도 끌어당기는 마법 같은 책들이 존재한다.
데이빗 섀논의『안돼, 데이빗!』의 경우 학년을 불구하고, 주의가 산만하거나 책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에게서 좋은 호응을 얻는다. 노먼 메신저의 『상상하는 책』 역시 재밌는 그림과 창의적 자극으로 채워져 있어 아이들이 반기는 책이다. 또 월트 윅의 『너도 보이니?』시리즈도 아이가 책을 즐겁고 유쾌한 대상으로 느끼게 하는 책들이다. 월트 윅의 책들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독서여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이가 책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이런 책의 가치를 되새기는 책 읽기와 더불어 집안 환경을 보다 독서 중심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일단 거실의 TV나 공부방의 컴퓨터를 구석방으로 치우고 이들을 사용하기 힘들거나 불편한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인 조언일지는 의문이지만, 스마트폰 역시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이라면 손에 쥐어주기에는 지나친 물건이다. 대개 집의 중심공간이 되는 거실은 아이들이 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는 공간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만약 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라면 처음에는 함께 거실에 가족들이 모여 보드게임이나 재밌는 집단놀이를 규칙적으로 해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모가 먼저 거실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자주 노출하기 바란다. 그리고 아이가 볼만한 책들을 몇 권씩 거실에 마련한 아이 전용 책장에 꽂아주기 바란다. 아이 스스로 책을 손에 쥐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가급적 자신이 볼 책은 직접 구매하도록 도우면 더 강력한 독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너무 많은 책은 오히려 아이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잘 읽지 않는 책, 이미 흥미를 잃은 책은 다른 공간으로 치워두는 것이 낫다.
아이와 함께 독서관련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도서관 가기, 서점 가기, 북페스티벌이나 북카페 가기, 책 관련 전시회 관람 등이 아이의 독서애호감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활동이다.
부모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가운데는 책 읽기를 좋아하게 하려고 학습만화나 만화책을 사주는 경우가 있다. 스티븐 크라센 같은 언어학자는 만화책 역시 독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적 상황이다. 이미 우리 어린이들의 독서생태계는 학습만화가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단 학습만화에 발을 담그면 아이들은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리고 만다. 아이들이 읽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나 벅찬 어마어마한 학습만화 군단이 내 아이의 독서생태계를 휩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만화나 만화책의 경우, 컴퓨터나 TV 사용시간처럼 시간과 양을 정해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 단번에 아이스크림을 여러 개 사주지 않는 것처럼 소중한 독서시간을 학습만화로만 채우는 것은 아이의 심성과 지성 발달에 있어 합당하지 않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의 독서에 질적으로 깊숙이 관여하는 것이다. 아이가 읽는 책이라면 부모 역시 눈여겨보고 함께 공감하며 읽어나갈 필요가 있다.
때로는 부모가 이미 잘 알고 또 이해하고 있는 고전이나 걸작을 아이에게 권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독서만큼이나 가족 간의 독후 대화에 관심을 갖기 바란다. 가능하다면 또래들을 묶어 독서대화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도 좋다. 반드시 전문가가 동석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의 엄마들이 돌아가며 독서대화 도우미가 되면 된다. 핀란드는 이런 형식의 독서토론 모임이 생활화되어 있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묻어나는 독서대화는 아이를 독서의 세계로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이다. 처음 상담실에 찾았을 때 책을 마치 인생의 적쯤으로 생각했던 아이들이, 어느 새 책 없이는 한시도 지내기 힘든 아이로 바뀌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 감동과 보람을 느낀다.
아직 주변에 책을 낯설어하거나 책읽기를 불편해하는 아이가 있다면 위에 열거한 방법들을 조심스레 시도해보기 바란다. 부모의 정성과 지혜가 있다면 결국 아이들은 책과 다시 친해지게 될 것이다. 맘껏 논 아이들이 튼튼한 몸을 얻듯이, 책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다.
아이의 내적 건강을 걱정하는 부모라면 맨 먼저 아이가 다시 책을 사랑하게 이끌어야 할 것이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
[박민근의 심리치료] 내 아이가 책과 가까워지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