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퇴계 이황은 자녀를 어떻게 키웠을까?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3.08.16 14:18
  • 누구나 자녀를 어떻게 키울까 고민한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이다 보니 무수한 정보들에 의존할 때가 많다. 거기서 아이는 이렇게 키우라는 숱한 권고를 만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는 되레 갈피를 잃게 한다.

    가령 아이를 따로 재우라고 해서 유명해진 양육서가 있지만, 어릴 때 아이를 따로 재우면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잃게 한다는 내용을 다룬 TV다큐멘터리도 있다. 최근의 애착 연구는 후자에 손을 들어주는 쪽이다. 아이를 너무 일찍 부모의 품에서 떼어내는 서구식 육아에는 허점이 있다. 이렇게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 하나하나가 부모 된 입장에서는 큰 고민거리인 것이다.

    일의 특성상 나는 서점에 들러 새로 나온 양육서들을 빼놓지 않고 살핀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들이 머리를 어지럽힐 때면, 버릇처럼 퇴계의 사상이나 행적이 담긴 책을 다시 펴든다. 오랫동안 양육에 대해 연구했지만,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입장들 앞에서 나 역시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럴 때 퇴계의 가르침은 작은 의혹들까지 풀어주는 샘물 같은 지혜를 전한다.

    인간은 책을 통해 완전성에 다가가는 존재이다. 퇴계가 이르길, ‘하처 불가독 하시 불가학(何處 不可讀 何時 不可學)’이라 했다. 책을 읽지 못할 곳은 없고, 공부하지 못하는 시간 또한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책 읽기나 공부는 우리 생각하는 내신이나 입시 공부는 아니다. 대개 삶의 근본 뜻과 원리를 다루는 진짜배기 공부이다.

    이는 동시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말할 때의 즐거운 공부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 할 당위는 인간성이란 달성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매일의 수양을 통해 다듬어가는 과정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퇴계는 자녀를 책으로 키웠다. 마흔이 다 된 자식의 시와 글까지도 꼼꼼히 읽고 느낀 바를 상세히 달아주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퇴계 이황은 자녀 사랑이 남달랐다. 자손들에게 무려 1300통이나 되는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퇴계의 자식 사랑법은 지금 세태와는 달랐다.

    “너희들은 내가 없다고 학업을 게을리 하거나 그만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혼신을 다해 분발하여 부지런히 공부하고 뜻을 이루는 것에 밤낮 최선을 다해야 한다. 뜻이 있는 선비들을 보거라. 어찌 부모 형제가 옆에서 지켜보고 꾸짖은 후에 공부를 하겠느냐?”

    퇴계는 이미 장성해 결혼까지 한 자녀에게조차도 이렇게 공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전해지는 그의 편지에는 자식에게 시험을 치도록 당부하는 글이 많다. 하지만 이는 입신양명을 하라는 권유보다는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자기 수양에 힘쓰라는 연유에서 비롯된 훈계이다.

    퇴계는 뛰어난 학자이지만,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다. 과거에도 여러 번 낙방했고, 다른 조선의 대유들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벼슬에 올랐다. 그는 소위 노력파였다. 퇴계가 다른 천재 유학자들에 비해 남달랐던 점은 바로 끝없는 자기수양에 있다. 그가 소중하게 여겼던 공부는 자기조절력을 다루는 심학(心學)이란 것이었는데, 이는 현대심리학의 충동조절과 자기통제력과 관련된 학문이다. 퇴계는 심학의 경전인 ‘심경(心經)’이라는 책을 평생 존숭하며 떠받들었다.

    최근 아동발달 연구에서는 IQ보다는 만족지연 능력이나 자기조절 능력이 학업 성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많다. 머리가 좋은 아이보다는 꾸준히 노력하는 아이가 더 공부를 잘 하고 또 성공한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 역시 이 자기조절, 혹은 수양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우리 선인들은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의 조화로운 심리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을 ‘신독(愼獨)’이라고 일컬었다. 신독이란 홀로 있음을 삼간다는 뜻이다. 이는 ‘홀로 있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남이 있는 곳에서든, 없는 곳에서든 자기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지킨다는 의미이다.

    퇴계 역시 과거에 두 차례 떨어진 후 홀로 산사에 들어가 공부를 이어갔다. 3년간 신독하며 공부를 행한 끝에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오른다. 

    신독은 단순히 어떤 일을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도덕적 결단과 선택에 따라 자신의 행위 전반을 살피는 능력을 가진 상태를 의미한다. 신독에 관한 경구 가운데 ‘행불괴영(行弗愧影)’이란 말이 있다. 이는 혼자 다녀도 자기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엄격해야 신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자기를 흐트러짐 없이 지키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조절 훈련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퇴계가 독서와 편지 통해, 자녀에게 심어주고 일깨워주고자 했던 바 역시 이 신독할 수 있는 자기조절의 힘이었을 것이다. 독서의 가치는 신독을 함양하는 일에서 더 빛을 발한다. 자기조절 능력을 심리적 측면이나 뇌력 측면에서 성장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책 읽기이기 때문이다.

    책은 스스로를 제어하는 마음가짐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주어진 과업에 집중할 수 있는 뇌력 자체도 성장시킨다. 최근 ADHD 때문에(실제 뇌 이상의 ADHD인 경우는 거의 없다. 과도한 스크린 접촉이나 독서 부족으로 인한 후천적인 소인이 더 많다)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나는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적용한다. 산만한 아이에게 독서만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자기조절 능력을 기르고, 자기조절의 힘이 늘면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다. 독서의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처음 월터 미셸의 마시멜로 실험의 결과가 발표되고, 충격적인 결과가 연이어 나오면서 사람들은 자기조절 능력이 타고난 것일 거라고 추측하며 실의에 빠졌다.

    600명이 넘는 유아들 가운데, 15분 동안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는 고작 30명에 불과했다. 물론 그 30명의 이후 행적은 마시멜로를 참지 못한 아이들과는 큰 차이가 났다. 그리고 이는 한때 선천적인 자기조절 능력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실험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실험들에서 아이의 조절능력이 결코 선천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마시멜로가 보이지 않게 뚜껑을 닫아주자 아이들은 훨씬 잘 참았다. 아이들에게 멋진 생각이나 재미난 상상을 떠올리게 했더니 더 유혹을 잘 참아냈다. 아이에게 어떤 조건을 만들어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자기조절력에는 적잖은 차이가 발생했다. 부모의 양육이 아이의 자기조절 능력을 성장시키는 열쇠인 것이다. 

    만족지연 능력과 관련해, 이와는 다른 차원의 연구도 존재한다. 이 역시 부모, 특히 엄마의 역할과 관련이 깊다. 초기 애착 형성이 잘 된 아이, 부모가 부지런히 아이의 눈을 맞추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눴던 아이들이 감정조절이나 자기조절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이다.

    애착 형성의 측면에서도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가장 효과적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꾸준히 독서 양육을 했던 아이들의 만족지연 능력은 그렇지 못한 아이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영국에서는 일명 ‘북스타트’라고도 불리는 독서양육이 존재한다. 미처 돌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책을 쥐어주고, 책과 놀게 하고, 부모가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양육이다.

    책은 부모와 아이를 이어주는 매우 풍부한 연결고리이다. 아이를 엄마의 가슴에 딱 붙이고서 엄마의 따뜻한 음성으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자극은 인류가 발견한 전인적 성장 도구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생명력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동기에 부모가 자녀와 함께 책 읽는 것 만한 가치 있는 활동은 있을 수 없다.

    나 역시 저녁에 아이들과 책을 읽을 때마다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열락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마다 자주 나는 자녀를 앞에 앉히고 책을 읽혔을 퇴계를 떠올린다. 책을 읽는 아이는 바르게 자란다. 그리고 끈기 있는 아이로 자란다.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세상의 가치와 능력들을 책 읽기를 통해 물려줄 수 있다. 나는 이런 바람과 열망을 담아 이번에 《아이를 바꾸는 책읽기》라는 책을 썼다. 독서 양육의 정도를 찾아가는 데 있어 미력하나마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