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자연결핍과 어린이의 인성 발달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3.04.01 15:59
  • 또랑또랑한 눈망울의 승우라는 아이가 있었다. 승우 엄마는 아이의 적성을 알아보기 위해 심리센터를 찾았다가 내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고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승우 나이 때 나도 아파트에 살았지만, 승우의 사정과는 달랐다. 승우의 집은 강남의 아파트 대단지 안에 있었다. 올해 3학년인 승우는 학교가 파하면 집으로 와 학습지 선생님을 기다렸다. 안 오는 날도 있지만, 거의 매일 학습지 선생님이 방문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오기 전에 미리 숙제를 하는 것이 주요한 일과였다.

    집에는 관절염 때문에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만 있었다. 할아버지가 잘 움직이지 못해 승우가 바깥에서 놀기는 어려웠다. 엄마가 오는 시간은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 야근이 있는 날은 더 늦었다. IT회사에 다니는 아빠는 일이 많아 대개 10시가 넘어야 귀가했다. 새로 이사 온 승우는 아파트 친구가 없었다. 놀이터에 나가도 유치원생 몇 명이 노는 것이 전부였다. 

    매일 승우는 놀아줄 엄마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학습지나 과외 선생님, 피아노레슨 선생님이 오지 않는 날에는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승우 표현을 빌리면 선생님들은 가르칠 것만 가르치면 ‘쏜살 같이 도망가’ 버렸다. 최근 엄마가 새로 스마트폰을 사줘 친구들이랑 가끔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친구들도 낮에는 바빠 문자를 나누다가도 자주 대화가 끊겼다.
    승우는 무척 외로웠다.  

    내 고향은 부산의 영도라는 곳이다. 내가 승우 나이 때 부산은 대도시다운 면모를 이미 갖추고 있었지만, 섬이라 다소 격리된 영도 산꼭대기의 아파트 근처는 도시의 느낌이라곤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뒷산에 올라가 산(山)아이처럼 살았다. 뒷산에는 작은 계곡과 시내가 있었는데, 항상 맑은 시냇물이 흘러내렸다. 산은 제법 깊어 토끼나 꿩이 수시로 출물하고, 산딸기를 따먹거나 진달래꽃을 꺾으며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지만, 또래 공동체가 워낙 강성해 언제나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가끔 호젓한 기분을 즐기려 혼자 산길을 걷는 일을 즐겼지만, 승우처럼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해질 무렵 실컷 바깥에서 놀다 돌아오면 언제나 따뜻한 밥을 차려놓고서 웃으며 기다리는 엄마가 있었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 또래와 놀 수 없는 아이들, 야외생활로부터 차단된 아이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보편적인 대한민국 아이의 생활에 가까울 승우의 삶은 실은 아이들이 본질적으로 누려야 할 온당한 대접과 조건들에서 멀어진 삶이다.

    이런 삶의 환경, 생활은 아이의 심성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리처드 루브는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에서 요즘 아이들이 ‘자연결핍장애’를 앓는다고 밝힌다. TV를 보거나 인터넷게임을 하는 것은 편안히 여기면서, 자연에서 동식물과 더불어 뛰노는 것은 어쩐지 두렵고 낯설게 여기는 아이들이 많다. 이는 아이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주어진 환경 탓에 빚어진 왜곡된 심성이다.

    의학적 용어는 아니나, 자연결핍장애는 인간이 자연에서 멀어지며 생긴 여러 심리적, 육체적 문제로 감각의 둔화, 집중력결핍, 신체적, 심리적 질병의 증가 등을 가리키는 용어다. 리처드 루브는 ADHD로 진단받은 아이들이 늘고, 소아비만, 소아우울증, 소아스트레스가 급증하는 현실이 자연결핍장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진단한다.

    리처드 루브의 진단은 현재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 아이들의 상황과 합치한다. 우리 아이들 대부분이 ‘자연결핍장애’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공간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문제는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이다. 요즘 아이들은 또래가 없다. 건강하게 오후 내내 함께 뛰어놀 놀이친구가 없다. 또래와의 놀이에서 사회를 처음 경험하고 배우는 법인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살아볼 하나의 사회가 막혀있는 셈이다.

    게다가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들의 면모도 달라졌다. 이모, 삼촌, 고모, 동네어른, 옆집 아저씨들, 그리고 조부모들이 공동으로 키우던 예전과는 다른 인간관계에서 요즘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과외선생, 학원선생, 학습지교사나 한 명의 부모 혹은 한두 명의 조부모 손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감성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승우는 할아버지를 잘 모시는 아이였다. 가끔 간식을 챙겨 할아버지를 대접하기도 하는 효성스런 아이였다. 물론 부쩍 외로워하며 최근에는 이런 일도 조금씩 뜸해졌다고 한다. 어쨌든 승우의 효심이 낡은 가치처럼 느껴지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한국인 대부분의, 수직사회, 상명하달 식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급격한 세대 간의 단절로 나타나고 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별 것 아닌 고부간의 갈등이나 부모자식간의 의견차를 커다란 사회문제나 골칫덩이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당연히 요즘 아이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자라기 쉽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전통적으로 담당하던 도덕성, 인성 교육 역시 그 의미나 가치가 퇴색하고 있다. 아니 할아버지나 할머니 세대부터가 도덕적 가르침의 가치를 의심하며 자녀나 손자에게 마냥 ‘허용적’인 입장을 취하려 든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이 사라진 세상을 살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 공동체는 조부모 세대의 도덕교육을 근간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사회가 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의 도덕성이나 영성도 희박해지고 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 야만적 심성이 판치는 이유에는 분명 이런 사회 흐름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을 터이다.

    만약 효성을 배워 실천하는 승우의 모습이 낯설었다면 당신 역시 이상한 나라에 온 ‘이방인’에 가까울 것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는 나중에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자연결핍장애의 아이들, 도덕성이나 영성을 체화하지 못한 아이들이 느는 것은 결코 간단하고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아이들 개인의 영달에도 문제가 된다. 편안한 심성이 없는 아이, 남을 아낄 줄 모르는 아이는 공부나 주어진 성취과제들도 잘 할 수 없다. 더 근본적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행복을 찾아내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적 흐름은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걱정하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